소작농 설움
등록 : 2003-02-12 00:00 수정 :
“쌀 생산조정젠가 뭔가 땜시 그나마 벌어먹던 땅덩어리 띄이게 됐당께.” 아침밥상을 앞에 두고 아버님은 근심어린 속내를 털어놓는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내 표정에 아버님은 “3년간 땅을 묵히는 대가로 3천평(15마지기)당 일년에 300만원씩 정부가 보상해준다”는 골자의 쌀 생산조정제에 대해 설명하며 시름겹게 아침밥상을 물리신다.
내땅이라고는 논 닷마지기(1천여평)와 집터, 텃밭이 전부인 아버님은 남의 논 15마지기를 빌려 11마지기는 모를 심고 4마지기는 고추농사를 짓는 소작농민이다. 올해 바로 옆의 논을 벌던(짓던) 논주인이 내놓은 땅 5마지기까지 합치고 보니 3천평이 넘는 규모가 되자 논주인은 쌀생산 조정제를 신청한다고 입소문부터 내기 시작한다.
전국적으로 임차농지가 44.3%에 이르고 소작농이 10명 가운데 7명이 넘는다니 우리집만 속타는 일이 아니지 싶다. 전국평균 소작료가 250만원인데 땅임자 입장에서야 당장 50만원 더 얹어준다는 말에 솔깃해 앞뒤 없이 땅을 묵힌다고 배짱부릴 일이고 자연히 몸이 단 소작농은 소작료를 한두섬이라도 올리게 된다.
우리 동네에서도 땅 많은 몇몇 사람은 생산조정제를 신청 하네마네 하더니 결국 소작료만 올려놓고 만다. “1년만 농사 안 지어봐라. 논둑 어그러지고 피야, 풀이야 말도 못하게 나서 땅 못 쓰게 돼야. 자기 땅만 못 쓴 거이 아니라 넘의 땅까지 풀씨가 넘어가면 그동네 논임자덜 좋아하겠느냐.” 쌀농사 짓지 말자고 말리는 어머니를 구슬리며 아버님은 기어이 소작료 올려줘 가며 쌀농사를 포기하지 못한다.
수맷값까지 2% 내린다는데 올 쌀농사 계산은 해보나마나 헛농사다. “그려도 농사꾼이 쌀농사 안 지으면 뭣해 먹는다냐” 우리 식구 양식하고 곡간에 쌀이라도 채워넣야 든든하다는 생각은 아버님만의 지론이 아닌 듯해 더욱 답답하다. 소작농의 비애다. 농토를 줄이고 농민을 줄이고 주식인 식량까지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 어떤 재앙을 부를지 모를 일이다.
지난 한해 벼재배면적의 자연감소로 400만석 정도가 줄었고 태풍 루사라는 자연재해는 400만석 이상의 쌀생산을 감소시켰다. 올해는 쌀 생산조정제로 얼마나 많은 논이 풀밭이 될지 모르겠다. 읍내에는 또다시 농민단체의 “쌀농사 포기, 수입개방 음모 쌀 생산조정제 철회하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정부는 이대로 쌀과 농업을 포기할 것인가 그 뒤의 식량과 환경재앙을 어떻게 떠안으려는지 답답할 뿐이다.
이태옥 ㅣ 영광 여성의전화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