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가수 윤도현의 신인가수같은 새가슴, 상처받기 쉬운 맑은 영혼을 지녔기 때문일까
윤도현과 난 이래저래 인연이 좀 있다. 97년 극단 학전에서 록오페라 <개똥이>에 함께 출연했고 그의 아내 이미옥과는 96, 97년에 역시 극단 학전의 <지하철 1호선>에서 걸레(?)와 선녀로 함께 공연을 했다. 그리고 이 부부는 현재 우리집 맞은편 아파트에 산다. 안부전화가 아닌 섭외전화를 했더니 아내 이미옥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조심스러워한다. 이유인즉슨 그가 요즘 인터뷰 기사들이나 오해로 인한 소문들 때문에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져 있다는 거다.
<오! 필승코리아> 오해부터 풉시다
인터뷰 기사 때문에 상처받은 거라면 내가 충분히 위로해줄 수 있겠다 싶었다. 별로 유명한 배우는 아니지만 프라이버시를 강간당하고 사실이 왜곡돼서 상처받은 적이 나 역시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척 예민해져 있다는 그를 어떡하면 편안히 만날까 생각하다 우리집에 초대하는 게 좋겠다 생각했고 그도 편안해했다. 마침 마실와라 마실가마 하던 참이어서 그도 좋아라 한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후배 남편이자 누나동생 사이라지만 그는 ‘국민가수’ 아닌가. 신혼을 즐길 시간도 없이 바쁜 그가 시간을 내준 게 고마워서 어떻게 대접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화려한 요리보단 시집간 친누나네서 밥 한끼 먹는 것처럼 대접해야겠다 싶어서 우거지갈비탕을 푸짐하게 끓여놓고 그를 기다렸다. 약속시간에서 1초도 지나지 않아 벨이 울려 나가보니 동네 고삐리 알바생이 쭈뼛거리며 들어선다. 덜렁 혼자서 동네 빵집서 사왔다며 곰보빵이랑 팥빵 등을 가득 들고 어제도 그제도 이 시간에 왔다는 듯 내 집에 들어서는 그가 낯이 익어 다시 보니 이게 누군가 국민가수 윤도현이 아닌가 시대에 한 획을 긋는 대스타는 어딘가 남다른 데가 있게 마련이다. 실력이 엄청나게 좋든가 아님 아주 영특하게 대중이 자신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재빨리 그리고 정확히 잡아내서 항상 가면을 쓰고 다니는(그게 뭐 꼭 나쁘단 뜻은 아니다. 내가 싫어하는 표현이긴 하지만 ‘공인’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거니까) 사람이 있다. 윤도현이 대스타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은 오로지 엄청나게 좋은 노래실력뿐이라는 걸 그가 내 집에 머문 3시간 내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그가 오늘날 이 자리에 있게 된 게 신기할 정도로 자신이 대중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김기덕과 이문세가 쌓아놓은 아우라를 겁도 없이 들어차고 앉았다가 버벅댄다고 흠뻑 욕을 얻어먹던 그의 디제이 초년생 시절이 불과 2년 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지금은 너무나 능글맞은 ‘선수’가 되어 있어서, 난 그가 이제 더 이상 옛날의 그 촌스런 윤도현은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어느 정도 여우가 됐을 거라고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정글과도 같은 연예계의 정상자리를 차지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한데 이게 웬걸. 무대매너와 디제이 솜씨가 ‘프로’로 업그레이드된 거에 비해 인간 윤도현은 내가 처음 봤던 6년 전 그 촌스런 파주 촌놈 그대로였다. 보기 아슬아슬할 정도로 그는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그대로였다. 우선 그는 <오! 필승 코리아>에 관한 오해 얘기부터 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나라에 축구 기적이 일어날 때 정작 그 기적을 더 환상적으로 꾸며준 노래 <오! 필승 코리아>의 주인공인 그는 아내와 함께 외국의 어느 섬에서 느긋하게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었다. 안부전화를 통해 축구가 의외로 승승장구한단 소식만 들었을 뿐 라디오도 TV도 없고 휴대폰은 당연히 안 터지는 그곳에서 그는 우리나라 축구가 4강에 들고 덩달아 자신이 부른 그 노래가 국민의 응원가가 돼서 대한민국 땅 전체를 들썩거리게 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팬들의 말 하나하나에도 파르르~
신혼여행을 월드컵 기간으로 정한 것도 다들 축구에 정신이 팔렸을 테니 콘서트 스케줄이 널널할 거란 계산이었단다. 그런데 신혼여행에서 돌아와보니 그야말로 ‘난리’가 나 있었고 자신은 자신도 모르게 ‘국민가수’란 호칭으로 불리더라는 거다. 인기가 치솟고 CF로 돈을 버니 얼떨떨하지만 신은 났다. 하지만 음반제작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한 회사가 부탁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응원가 한 소절을 녹음했을 뿐인 그 노래가 제작권이 자신한테 있다고 소문이 나는 바람에 난처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노래의 여파가 선거바람에까지 미쳐서 각 당에서 <오! 필승 코리아>에서 ‘코리아’ 대신 자기들 당에서 나온 후보의 이름을 넣어 노래해달라고 부탁해왔는데 그걸 거절했더니 “윤도현이 돈독이 올랐다”는 소문이 돌아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한숨을 쉬며 말한다. 내가 묻는다. “어느 당이 제일 조르던” “한나라당이오. 아휴, 말도 마요. 제일 끈질겼어요.”
노무현의 열혈 지지자처럼 보여지는 것에도 불만을 토로했다. 어느 기자가 이번 대선에서 누굴 찍을 거냐고 묻기에 “노무현이오”라고 딱 한마디, 것도 딱 한번밖에 얘기한 적이 없고 자신은 노사모도 아니고 선거운동을 한 것도 아니며 어느 날 공연장에 노무현씨가 찾아와서 악수를 청하기에 얼떨결에 악수를 했을 뿐인데 마치 ‘열성분자’인 것처럼 보도가 돼서 당황스럽다는 거다. 월드컵 이전에도 이미 그는 스타였다. TV쇼 진행자에 라디오 진행자로도 상당히 인정받고 있는 지금의 위치면 이 정도의 매스컴 플레이에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을 만한데 그는 꼭 신곡 낸 지 얼마 안 된 신인가수처럼 새가슴을 갖고 있었다.
6년 된 연예인 생활은 아직도 미숙해 보이기만 하는 반면 이제 1년도 채 안 된 결혼생활은 아주 의젓하게 해내고 있었다. 오랜 연애를 거치기도 했지만 같은 딴따라의 길을 걷는 아내 이미옥을 그는 참 예쁘고 착하다고 칭찬한다. 바쁜 부부지만 파출부 안 쓰고 아내는 쇼핑과 요리, 자신은 청소와 빨래로 가사를 분담하며 안 싸우고 잘 지낸다.
그는 홈페이지에 팬들이 남기는 말 하나하나에도 상처를 받는다. 내가 보기에 무시해도 되는 말들조차 그는 파르르 떨며 섭섭해한다. 라디오 진행 솜씨나 노래하는 폼을 봐서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지만 그는 정말 새가슴이다. 그는 자신이 대중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아직 깨닫지 못한 것 같다. 그의 노래가 아무런 기교나 양념이 쳐지지 않은 통짜 살코기 그대로인 건 그가 상처받기 쉬운 맑은 영혼을 가졌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그에게 남들 다 알고 그만 모르는 사실(그가 대중들에게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알려주려다 만다. 그가 그 사실을 알아버리면 노래에 기교와 양념이 쳐질 것 같아서다.
언제나 쭈글쭈글한 <한겨레21>
올 봄 그는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다. 학생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일을 좀 줄일 생각이라는 얘길 하다가 공연이 끝났을 아내를 데리러 가야 한다고 일어난다(그녀는 현재 <지하철 1호선>에 다시 출연하고 있다). 주섬주섬 일어나 신발을 신으러 가다 말고 돌아서서 인터뷰 같지 않고 신나게 수다떨다 가는 것 같아서 기분 좋고, 또 글이 실릴 잡지가 자기가 좋아하는 <한겨레21>이어서 좋다고 씩 웃는다. 자긴 <한겨레21>을 항상 ‘볼일’을 보면서 봐서 화장실 습기로 책이 다 쭈글쭈글하다면서 킬킬거리며 신발을 신는 그를 보면서 노무현을 지지한 거나 북한공연 때 흘린 눈물의 이데올로기가 아무런 ‘배후’ 없이 ‘자생’된 것임이 느껴져서 그가 더 예뻐 보였다. 인사를 꾸벅 하고 나가는데 그의 모습은 좀전의 그 ‘동네 고삐리 알바생’이 되어 있었다.
오지혜/ 영화배우

사진/ 강재훈 기자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후배 남편이자 누나동생 사이라지만 그는 ‘국민가수’ 아닌가. 신혼을 즐길 시간도 없이 바쁜 그가 시간을 내준 게 고마워서 어떻게 대접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화려한 요리보단 시집간 친누나네서 밥 한끼 먹는 것처럼 대접해야겠다 싶어서 우거지갈비탕을 푸짐하게 끓여놓고 그를 기다렸다. 약속시간에서 1초도 지나지 않아 벨이 울려 나가보니 동네 고삐리 알바생이 쭈뼛거리며 들어선다. 덜렁 혼자서 동네 빵집서 사왔다며 곰보빵이랑 팥빵 등을 가득 들고 어제도 그제도 이 시간에 왔다는 듯 내 집에 들어서는 그가 낯이 익어 다시 보니 이게 누군가 국민가수 윤도현이 아닌가 시대에 한 획을 긋는 대스타는 어딘가 남다른 데가 있게 마련이다. 실력이 엄청나게 좋든가 아님 아주 영특하게 대중이 자신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재빨리 그리고 정확히 잡아내서 항상 가면을 쓰고 다니는(그게 뭐 꼭 나쁘단 뜻은 아니다. 내가 싫어하는 표현이긴 하지만 ‘공인’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거니까) 사람이 있다. 윤도현이 대스타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은 오로지 엄청나게 좋은 노래실력뿐이라는 걸 그가 내 집에 머문 3시간 내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그가 오늘날 이 자리에 있게 된 게 신기할 정도로 자신이 대중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김기덕과 이문세가 쌓아놓은 아우라를 겁도 없이 들어차고 앉았다가 버벅댄다고 흠뻑 욕을 얻어먹던 그의 디제이 초년생 시절이 불과 2년 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지금은 너무나 능글맞은 ‘선수’가 되어 있어서, 난 그가 이제 더 이상 옛날의 그 촌스런 윤도현은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어느 정도 여우가 됐을 거라고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정글과도 같은 연예계의 정상자리를 차지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한데 이게 웬걸. 무대매너와 디제이 솜씨가 ‘프로’로 업그레이드된 거에 비해 인간 윤도현은 내가 처음 봤던 6년 전 그 촌스런 파주 촌놈 그대로였다. 보기 아슬아슬할 정도로 그는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그대로였다. 우선 그는 <오! 필승 코리아>에 관한 오해 얘기부터 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나라에 축구 기적이 일어날 때 정작 그 기적을 더 환상적으로 꾸며준 노래 <오! 필승 코리아>의 주인공인 그는 아내와 함께 외국의 어느 섬에서 느긋하게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었다. 안부전화를 통해 축구가 의외로 승승장구한단 소식만 들었을 뿐 라디오도 TV도 없고 휴대폰은 당연히 안 터지는 그곳에서 그는 우리나라 축구가 4강에 들고 덩달아 자신이 부른 그 노래가 국민의 응원가가 돼서 대한민국 땅 전체를 들썩거리게 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팬들의 말 하나하나에도 파르르~

사진/ 오지혜씨 딸의 ‘놀이시설’을 점거한 윤도현의 표정이 앙증맞다. (강재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