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방정식 깨뜨리고 선전하는 <눈사람>. 화려한 영상미·스타시스템의 <올인>에 맞서
SBS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에 이런 장면이 있었다. 극중 탤런트로 나오는 노주현이 오랜만에 드라마 주연을 맡게 되었다. ‘초짜’인 작가와 연출자에게 베테랑 배우인 노주현은 인기 드라마의 비결을 이렇게 강의한다. “<명랑소녀 성공기>처럼 사투리에 코믹한 요소를 가미하고, <야인시대>처럼 액션 장면을 많이 집어넣고, <대망>과 <인어아가씨>처럼 출생의 비밀에 이복형제 간에 얽힌 삼각관계 등으로 갈등구조를 만들어주면 된다. 마지막으로 주연배우가 한번 벗어주면 게임 끝”이라며 자신 있게 말한다.
이 장면을 보고 포복절도하지 않은 시청자가 있었을까 언급된 특정 드라마에 악감정이 없더라도 그동안 시청률 올리기 방편으로 고이 전수되어 신물나게 이용된 비법들을 비꼬는 이 장면은 무척이나 통쾌했다. 하지만 동시에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곧 시청자들이 그동안 이런 것을 원하지 않았느냐고 조롱하는 것 아닌가 요즘은 드라마도 시청자들도 많이 세련되어진 것 같은데 아니었는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문화방송 드라마 <눈사람>과 SBS의 <올인>을 보면 요즘 어떤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아끄는지 가늠할 수 있다.
<네 멋대로 해라>에 열광한 시청자 다시 모여
지난해 방영되어 급속도로 마니아층을 양산한 <네 멋대로 해라>가 종영되었을 때 문화방송 게시판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이제 무슨 낙으로 살죠 향후 10년 안에 이런 드라마를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아마 어려울 것 같은데….” <네 멋대로 해라>가 시청자들의 가슴속에 얼마나 깊이 파고들었는지를 대변하는 말이다. 실제로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네 멋대로 해라>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있다. 각종 포털사이트에 만들어진 40여개의 팬클럽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접속해 <네 멋대로 해라>에 대한 애정을 쏟아놓고 있다. 출연배우인 공효진조차 살가운 성격이 아닌 탓에 함께 출연한 배우들과 연락하며 지내진 않지만 가끔 드라마 속 주인공이던 ‘복수’ 와 ‘전경’이 보고 싶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그런데 10년은커녕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제2의 <네 멋대로 해라>’라고 불리는 드라마가 등장했으니 그게 <눈사람>이다. <눈사람>은 여러모로 <네 멋대로 해라>와 닮았다. 일단 주연배우들의 외모가 좀 떨어진다()는 점이 그렇고 주제가 신선하고 이야기 전개가 소박하다는 점이 그렇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닮았다. 방영 초기임에도 열혈 마니아층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방송 2회 만에 <눈사람> 팬클럽이 생겼고, 문화방송 게시판에는 방송 2주 만에 2만여건의 글이 올라왔다. “<네 멋대로 해라> 이후 이런 드라마를 다시 만난 건 행운이다. 다른 드라마는 너무 전형적이라 화가 나서 못 보겠다”(QUFB612), “눈물 없기로 소문난 제가 <눈사람>을 보면서 펑펑 눈물을 쏟았어요. ‘요즘은 역시 눈사람이야~’하며 소문내고 다닌답니다”(FILITE) 등 대부분의 내용이 찬사일색이다. 2회 방송 가운데 15초 가량 같은 장면이 되풀이되는 치명적인 방송사고가 있었음에도 오히려 시청자들은 “대박나기 위한 액땜이다”, “방송사고마저 사랑스럽다”는 위로의 글을 올렸다. 시청자들이 <눈사람>에 열광하는 까닭은 뭘까 먼저 형부와 처제 간의 사랑이라는 소재가 신선하다. 지난해 <고백> <위기의 남자> <로망스> 등에서 그려온 이른바 불륜 또는 도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극중 처제인 연욱(공효진)과 형부 필승(조재현)의 사랑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기가 민망할 만큼 아름답게 그려진다. 형부를 향한 사랑에 너무나 아파하는 처제를 “난 안 돼. 난 아니야. 나한텐 언니가 있잖니. 너 언니 사랑하지”라며 다독거리는 장면에는 어떠한 감정의 과잉도, 선정성도 없다. 그저 가슴만 시려올 뿐. 물론 이 사랑을 설득력 있게 만드는 주연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하다. “순수하게 연기로 승부를 거는 드라마입니다. 공효진·조재현의 열연을 보노라면 금지된 사랑 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집니다”(JOB2683) 등 한층 농익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가슴 시리는 사랑도 자본에 꺾이는가
<눈사람>과 격돌하고 있는 SBS의 <올인>은 어떤가. <올인>도 시청자들의 지지가 만만치 않다. “역시 제작비 56억원이 아깝지 않네요. 화면이 너무 훌륭합니다”(ejlee9070), “이병헌씨, 송혜교씨 너무 멋져요. 두분의 사랑은 운명입니다”(eyeae94) 등 거액의 제작비를 들인 화려한 영상과 톱스타들에 대한 애정공세가 줄을 잇고 있다.
<올인>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역시 이병헌-송혜교라는 빅스타를 기용한 스타시스템에 있다. 아역배우들이 출연한 1, 2회가 시청률에서 <눈사람>에 뒤진 것과는 달리 두 배우가 본격적으로 출연하기 시작한 3, 4회에 이르러서는 시청률이 6% 가량 올라 <눈사람>을 7% 정도 앞선 것만 보아도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 어깨의 힘이 빠지며 더욱 매력적인 배우가 된 이병헌과 화사한 미소만으로도 시청자들을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한 송혜교가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연인으로 출연하는 드라마를 마다하기는 쉽지 않다.
두 드라마의 격돌을 지켜보면 양감이 교차한다. <네 멋대로 해라>가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한 것과는 달리 <눈사람>이 방영 초기부터 폭발적 반응을 얻는 것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출연 배우의 외모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선정성에 기대지 않고 드라마의 작품성에 대해 평가하는 성숙된 풍토가 조성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올인>과 <눈사람>이 보여준 시청률 역전극은 역시 기존의 스타시스템에 대적할 것은 없구나 하는 회의를 들게 한다.
시청자들은 냉정하고 변덕스럽다. 김종학-송지나 콤비의 명성을 걸고 <모래시계>를 잇는 대작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대망>은 퓨전사극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시청자들에게 끝내 이해시키지 못했다(출연 배우들의 연기가 미흡한 탓도 있었지만). 드라마 사상 최초로 동호회가 결성된 컬트 드라마 원조인 <거짓말>의 콤비 노희경-표민수의 <고독> 또한 40대 여자와 20대 남자의 사랑을 아릿하게 그릴 것이라는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사랑을 어둡고 주눅든 모습으로 묘사해 답답함을 느끼게 함으로써 외면받았다. 반면 짜임새 있는 구성, 분명한 주제 의식 등 어느 것 하나 갖추지 못한 <별을 쏘다>는 전도연-조인성이라는 인기배우의 힘만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퓨전사극 외면… 시청자 기호 주목
‘미디어 세상 열린 사람들’의 윤혜란 사무국장은 “<네 멋대로 해라> 이후 시청자들이 수동적으로 드라마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자신이 바라는 드라마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기호가 분명해졌다”고 말한다. 일반 대중을 시청자로 상정한 채 ‘시청자들이 어떤 드라마를 원하는가’라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공은 다시 제작진에게 돌아갔다. 시청률이라는 객관적 수치보다는 어떤 기호를 가진 시청자들을 공략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강혜란 사무국장은 “아직도 드라마의 인기는 홍보전략과 언론보도 등 외부적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시청자들의 합리성을 너무 믿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다만 시청자들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가 드라마 제작 풍토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는 어렵다. 여전히 시청률 1, 2위는 폭력성 짙은 <야인시대>와 배신과 복수의 드라마 <인어아가씨>가 차지하고 있으니까.
피소현/ <스카이라이프> 기자 plavel@hani.co.kr

<눈사람>
지난해 방영되어 급속도로 마니아층을 양산한 <네 멋대로 해라>가 종영되었을 때 문화방송 게시판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이제 무슨 낙으로 살죠 향후 10년 안에 이런 드라마를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아마 어려울 것 같은데….” <네 멋대로 해라>가 시청자들의 가슴속에 얼마나 깊이 파고들었는지를 대변하는 말이다. 실제로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네 멋대로 해라>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있다. 각종 포털사이트에 만들어진 40여개의 팬클럽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접속해 <네 멋대로 해라>에 대한 애정을 쏟아놓고 있다. 출연배우인 공효진조차 살가운 성격이 아닌 탓에 함께 출연한 배우들과 연락하며 지내진 않지만 가끔 드라마 속 주인공이던 ‘복수’ 와 ‘전경’이 보고 싶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그런데 10년은커녕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제2의 <네 멋대로 해라>’라고 불리는 드라마가 등장했으니 그게 <눈사람>이다. <눈사람>은 여러모로 <네 멋대로 해라>와 닮았다. 일단 주연배우들의 외모가 좀 떨어진다()는 점이 그렇고 주제가 신선하고 이야기 전개가 소박하다는 점이 그렇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닮았다. 방영 초기임에도 열혈 마니아층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방송 2회 만에 <눈사람> 팬클럽이 생겼고, 문화방송 게시판에는 방송 2주 만에 2만여건의 글이 올라왔다. “<네 멋대로 해라> 이후 이런 드라마를 다시 만난 건 행운이다. 다른 드라마는 너무 전형적이라 화가 나서 못 보겠다”(QUFB612), “눈물 없기로 소문난 제가 <눈사람>을 보면서 펑펑 눈물을 쏟았어요. ‘요즘은 역시 눈사람이야~’하며 소문내고 다닌답니다”(FILITE) 등 대부분의 내용이 찬사일색이다. 2회 방송 가운데 15초 가량 같은 장면이 되풀이되는 치명적인 방송사고가 있었음에도 오히려 시청자들은 “대박나기 위한 액땜이다”, “방송사고마저 사랑스럽다”는 위로의 글을 올렸다. 시청자들이 <눈사람>에 열광하는 까닭은 뭘까 먼저 형부와 처제 간의 사랑이라는 소재가 신선하다. 지난해 <고백> <위기의 남자> <로망스> 등에서 그려온 이른바 불륜 또는 도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극중 처제인 연욱(공효진)과 형부 필승(조재현)의 사랑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기가 민망할 만큼 아름답게 그려진다. 형부를 향한 사랑에 너무나 아파하는 처제를 “난 안 돼. 난 아니야. 나한텐 언니가 있잖니. 너 언니 사랑하지”라며 다독거리는 장면에는 어떠한 감정의 과잉도, 선정성도 없다. 그저 가슴만 시려올 뿐. 물론 이 사랑을 설득력 있게 만드는 주연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하다. “순수하게 연기로 승부를 거는 드라마입니다. 공효진·조재현의 열연을 보노라면 금지된 사랑 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집니다”(JOB2683) 등 한층 농익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가슴 시리는 사랑도 자본에 꺾이는가

<올인>

<고독>, <별을 쏘다>, <대망>(왼쪽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