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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희망의 외길, 연대의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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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1-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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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지식인의 버팀목 김진균 교수 정년퇴임… 근대화론을 화두로 학문·실천적 지평 넓혀, 노동·지식인 운동사 집필

이맘때 제자들이 정년퇴임을 앞둔 교수의 ‘출판기념회’를 연다. 대학가의 ‘미풍양속’이다. 주로 해당 교수로부터 석·박사 논문을 지도받은 대학원 제자들이 행사를 준비한다. 제자들은 스승과 자신들의 글을 모아 정년퇴임논문집을 만들어 봉정한다. 여기에 대학 교수 등으로 자리잡은 30~40대 제자들이 정장을 하고 참석한다. 대부분 출판기념회는 품위 있고 우아한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운동가들 한자리에 모인 축하 행사

‘청정 김진균 교수 정년 및 출판기념회’가 1월22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서울대 동문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분위기는 여느 출판기념회와 매우 달랐다. 먼저 유덕상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이수호 전 전교조 위원장,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고 박종철군 아버지인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등 ‘운동가’들이 축사를 했다. 이들은 1980~90년대 실천 영역에서 김진균 교수와 맺은 소중한 인연과 기억을 털어놓았다.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있으면서 가야 할 앞길을 알려주는 사람”(유덕상 직무대행),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마음을 털어놓고 상의한 몇 사람 가운데 한명”(이수호 전 위원장).

통기타 반주와 함께 부른 축가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 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 양복 차림 제자들과 점퍼 차림 운동가들은 나직하고 그윽하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마지막으로 김진균 교수 제자들이 일어나 스승의 애창곡 <불나비>를 함께 불렀다. “불을 찾아 헤매는 불나비처럼/ 밤이면 밤마다 자유 그리워/ 하얀 꽃들을 수레에 싣고/ 앞만 보고 걸어가는 우린 불나비….”

남다른 출판기념회 분위기에서 알 수 있듯 김진균 교수는 1980~90년대 진보적 지식인들의 맏형과 버팀목 구실을 했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니며 현실에 대한 고민을 한 사람들은 한번쯤 ‘김진균’이란 이름과 그가 쓴 글을 접해봤을 것이다. 김 교수는 1980년 4월 말 ‘서울의 봄’ 때 지식인 134인 성명 발표와 5월 서울대 교수 시국선언문 사건으로 4년 동안 해직되는 아픔을 겪었다. 해직 교수로 있던 1984년 그는 ‘산업사회연구회’(현 한국산업사회학회)를 만들어 사회과학적 인식과 실천의 관계를 다시 세우는 학술운동을 이끌었다. 김 교수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 사월혁명연구소 소장, 사회진보연대 대표, 진보네트워크(참세상) 대표 등을 지냈다. 이 같은 활동에 대해 김 교수는 “교수가 사회의 민주화에 헌신할 책무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68년 정월 초하루에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아 서울대 상과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한 그는 1975년 사회학과로 옮겼다. 비정규직 문제 대책 마련에 관심이 많은 그는 “2월 말이면 35년 2개월의 장기적인 정규직 교수는 끝을 맺는다. 이것은 현재 비정규직의 확대정세로 보면 ‘장기적인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폭넓은 사회활동… 노동계에 깊은 영향

사진/ 출판기념회에는 일본 리쓰메이칸대 서승 교수, 오종렬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의장, 유덕상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등 운동가들이 많이 참석했다.
그는 젊은 시절 사회학을 택한 이유와 지적 탐구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960년대 학계 화두는 자주적 경제 자립을 통한 공업화와 근대화, 식민지 극복, 통일, 민주화 문제였다. 그는 사회발전에 관심을 두고 산업사회학을 주요 전공으로 삼았고 ‘근대화론’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다가 ‘근대화론’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조직사회학·사회변동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현대 사회론, 즉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제3세계론을 연구했다.

“1985년 대우자동차노조의 파업과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맞아 운동론적 전략으로서의 ‘민중’ 개념을 도입하게 되었다. 1990년 이후로는 ‘근대 주체 형성’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사회학, 1994년부터 영상과 정보에 관한 영상사회학, 1980년대부터 계속 연구해온 한국사회운동 형태 분석을 위한 사회운동론, 자본주의의 쌍둥이인 군산복합체연구 등을 해왔다.”

김진균 교수가 펴낸 최근 펴낸 <진보에서 희망을 꿈꾼다>의 책 날개에는 지은이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민주노총 지도위원’이라고 소개했다. 사회 통념에 비춰볼 때, 국립 서울대 교수와 민주노총 지도위원이란 이력은 안 어울림이다.

“서울대학교 김진균 교수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백서 초고를 일일이 다 읽어주시고 꼼꼼하게 교정까지 봐주신 노고에 대해서는 뭐라고 고마움을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학문적 관심을 넘어 노동자들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없었다면 그런 정성은 어림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1999년 7월에 나온 <내 사랑 마창노련>의 글쓴이가 밝힌 인사말 가운데 일부다. 1987년 12월 해방 이후 전국에서 처음으로 노동자의 지역연대조직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마창노련)이 만들어졌다. 마창노련 8년 동안의 ‘투쟁정신과 연대정신’을 담은 이 책 분량은 800쪽이 넘는다. 김진균 교수는 이 책 제작에 참여한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가 달아나버린다. 기억만으로 역사의 감격이 살아 숨쉴 수 없다….”

그는 정년퇴임 뒤 “갖고 있는 자료를 분류하는 데만도 몇달이 걸릴지 몇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노동운동사·지식인운동사에 대한 책을 쓰려고 한다. 김 교수의 서울대 연구실에는 1980년대와 90년대 각종 사회단체에서 낸 성명서와 자료들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1970~80년대는 자료가 있으면 수사기관에 의해 조직사건으로 엮이기 때문에 당시 운동을 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동기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 기록으로 남기길 꺼렸다. 신문보도가 있지만 겉으로 나타난 것만으로 내밀한 동인을 파악할 수 있는가.” 김 교수는 자신의 강의계획서, 학생들의 시험답안지, 학교 외부에서 활동할 때 얻은 자료나 경험 등을 중심으로 자료정리를 할 생각이다. 이 가운데 흥미로운 게 서울대 학생들의 시험답안지다.

진보적 삶이 그의 학문적 관심 영역

사진/ 출판기념회에서 김진균 교수가 흐뭇한 표정으로 참석자들의 축사를 듣고 있다.
“85년 1학기 때부터 사회변동론 등을 강의했는데 학기마다 600명 넘는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했다. 80년대는 학교 분위기가 운동적인 분위기였다. 시험답안지에 어떤 학생들은 강의 내용과 무관하게 자기들이 동아리나 학회에서 공부한 내용 등을 적었다. 마오쩌둥의 모순론를 이야기한 학생도 있었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고민들을 답안에 가득 채우기도 했다.”

그는 “누군지는 밝히기 어렵지만 지금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의 재학시절 답안지도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시험답안지들도 80년대 대학생들의 의식을 알 수 있는 자료기 때문에 데이터베이스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크린쿼터제, 붉은악마, 재벌문제, 인터넷상의 검열문제, 21세기 민주노동운동 등을 넘나들며 다양한 주제와 일상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가 최근 주목하는 것은 남북통일의 전망이다. 그는 남북통일 과정은 남북한 민족·민중에게 ‘진보적 삶의 바탕’을 가져다줘야 한다고 본다. “북한이 외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1960~70년대 남한이 그런 것처럼 장시간 저임금 고강도 노동형태가 이식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자본에게는 민족과 동포의 낭만적 통합은 없다. 최소한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이라도 남북한에서 어느 때쯤 본격적으로 거론될 것이다. 민주노동운동진영은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장기적이고 민중적인 대처전략을 짜야 한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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