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권력에 맞서는 전략적 매체로 떠올라… 지배 집단의 이미지 메이킹 도구로도 쓰여
호메이니가 샐먼 루시디의 <악마의 시>를 보고 루시디에 대한 암살 명령을 공개적으로 내린 것은 유명한 일화다. 루시디의 생명은 위험해졌지만 덕분에 그와 그의 책은 세계적 명성을 누렸다. <미디어 바이러스>는 ‘뉴욕의 <세븐 데이스>라는 잡지가 옳다면’이란 전제를 달고 이를 미디어 바이러스가 작동한 사례로 들었다. 루시디의 대리인이 초기의 낮은 판매율에 대해 걱정한 끝에 호메이니에게 책을 한권 보내면서 뭔가 일어나기를 바랐고, 실제로 뭔가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폭동으로 번진 로드니 킹 구타사건도 미디어 바이러스의 한 사례다. 백인경찰이 한 흑인용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증오어린 폭력을 행사했고, 이는 2분 정도의 홈비디오에 흐릿하게 녹화됐다. 이 장면은 미디어 공간을 통해 ‘피드백’되고 되풀이돼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폭력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LA 폭동)를 초래했다.
미디어를 다루는 사람들의 전략
뉴욕대 교수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미디어 바이러스>에서 텔레비전이 더 이상 바보상자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마셜 맥루언이나 노엄 촘스키 같은 ‘선배’ 학자들은 텔레비전과 활자화된 뉴스가 자신들을 만들고 관리하는 기업과 정치집단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는 권력 유지수단이라고 보았다. 러시코프는 미디어의 애초 전략이 사람들의 감각을 무디게 하고, 시청자들의 감정과 지성에 포장된 이데올로기를 주입시켜 그들의 정신세계를 통제하려는 것이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전략은 미디어 바이러스 때문에 실패했다는 게 러시코프의 주장이다.
왜 하필 바이러스일까 바이러스가 세포를 공격하는 방식은 이렇다. 바이러스는 살아 있는 생물인 박테리아나 세균과는 달리 단순히 유전자 물질을 담고 있는 단백질 껍질일 뿐이다. 바이러스는 이 껍질을 이용해 건강한 세포에 들러붙은 다음, 자신의 유전자 코드를 세포 내부에 주입해 세포의 기능과 재생산 방법을 영구히 바꿔버린다. 이 세포는 바이러스를 복제하는 공장이 돼버린 것이다. 하나의 트로이의 목마인 셈이다. 미디어와 함께 성장한 세대는 생물학적 바이러스가 인체나 공동체를 통해 퍼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미디어 공간을 통해 미디어 바이러스를 전파한다. 굳이 어떤 음모가 있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트로이의 목마처럼 미디어 바이러스에 담긴 유전자 코드는 기존권력에 대한 도전과 전복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러시코프는 기존문화를 공격하기에 가장 쉬운 도구로 어린이 프로그램과 MTV를 예로 든다. <피위의 플레이하우스> 같이 인기 있는 어린이 프로그램이 동성연애자 생활양식을 은연중에 가르쳐준다거나 <심슨 가족> 등이 (마리화나의 작용이라 할) 환각적 세계관을 표현하리라고는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정 정치세력이 미디어 바이러스를 의도적으로 퍼뜨리기도 한다. 일명 순이 스캔들이라는 우디 앨런과 미아 패로 스캔들이 터지자 대중들은 충격받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미디어의 인물이 자기 연인의 딸과 성교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이를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한 바이러스로 활용했다. “이 스캔들이 터질 무렵 빌 클린턴과 앨 고어는 뉴욕에서 민주당 전당대회를 개최했고, 공화당은 상대 후보자들과 그들이 장악한 도시(뉴욕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성격이 강한 도시다)를 우디 앨런과 미아 패로의 변태적 성욕과 연결지을 기회로 삼았다.” 공화당은 이렇게 해서 클린턴의 뉴욕에서의 인기와, 그의 가족의 가치와, 그의 성적인 난잡함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공화당의 공격은 계속됐다. 클린턴이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팬이라면서 그의 노래 가운데 하나를 부르기까지 하자, 부시는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그를 엘비스 프레슬리보다 더 많은 장소에서 볼 수 있다. 미국은 ‘하트브레이크 호텔’(엘비스의 노래 제목)에 투숙하게 될 것이다. 그는 무대에 오르면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유의 공격은 부시에게 경쟁자의 남성다움이나 성적 능력을 공격하는 방법밖에 없는, 신경질적이고 무기력한 후보자의 이미지로 부메랑처럼 되돌아갔다는 게 러시코프의 분석이다. 물론 미디어 바이러스의 예상치 못한 작용방향 때문이다.
부시의 무식함 덮고, 고어의 명석함 과장
미디어 바이러스가 늘 긍정적인 기능만 수행할까 또 다른 뉴욕대 교수인 마크 크리스핀 밀러가 지은 <부시의 언어장애>는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준다. 이 책의 본래 목적은 “(부시 대통령이 이끄는) 공화당과 주요 언론이 행하는 민주주의 파괴나 호전성에 반대하는 것”이다. 밀러는 부시가 “원고 없이 말한다든가 또는 말하기 전에 철저히 내용을 생각하지 않고 말하면 전혀 논리가 없는 말이 되는 수준의 문맹”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부시 같은 솔직한 멍청이”가 어떻게 앨 고어를 제치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밀러는 미디어를 통한 반지식인 전략이 먹혀들어간 탓으로 본다. 부시가 1998년 대통령 예비선거에 나오자 처음에 텔레비전은 그를 냉혹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닉슨 밑에서 더러운 잔재주를 부린” 칼 로브의 지휘 아래 부시의 선거전략이 바뀐다. 부시의 무식함을 청렴한 인격으로 보이게 하는 반면, 고어의 명석함을 과장해 거부감을 일으키게 하는 전략이었다. 부시의 촌스러움은 의도적으로 노출됐다. “아주 날카로운 완벽주의자로 텔레비전에 비친 고어는 강하게 자신의 의도를 청중들에게 심으려고 했다. 이것이 대중에게 불편함을 주었다. 대조적으로 부시가 보인 모습은 그냥 평범해 부시 집안의 막강한 재력이 상대방 후보인 고어를 힘들게 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게 할 정도로 서민적으로 보였다.”
밀러가 텔레비전을 보는 시각은 러시코프와 달리 ‘마셜 맥루언’적이다. “부시는 텔레비전이 지배하는 문화에 속한다. 부시의 결점은 텔레비전의 천박한 견해에 흠뻑 빠져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문제는 텔레비전이 이성적으로 작동하느냐 문제가 아니라 호감이 가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을 선별해 말하는 텔레비전 화면의 언론인들이 문제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미디어 바이러스> 더글러스 러시코프 지음, 방재희 옮김, 황금가지 펴냄, 1만5천원
왜 하필 바이러스일까 바이러스가 세포를 공격하는 방식은 이렇다. 바이러스는 살아 있는 생물인 박테리아나 세균과는 달리 단순히 유전자 물질을 담고 있는 단백질 껍질일 뿐이다. 바이러스는 이 껍질을 이용해 건강한 세포에 들러붙은 다음, 자신의 유전자 코드를 세포 내부에 주입해 세포의 기능과 재생산 방법을 영구히 바꿔버린다. 이 세포는 바이러스를 복제하는 공장이 돼버린 것이다. 하나의 트로이의 목마인 셈이다. 미디어와 함께 성장한 세대는 생물학적 바이러스가 인체나 공동체를 통해 퍼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미디어 공간을 통해 미디어 바이러스를 전파한다. 굳이 어떤 음모가 있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트로이의 목마처럼 미디어 바이러스에 담긴 유전자 코드는 기존권력에 대한 도전과 전복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러시코프는 기존문화를 공격하기에 가장 쉬운 도구로 어린이 프로그램과 MTV를 예로 든다. <피위의 플레이하우스> 같이 인기 있는 어린이 프로그램이 동성연애자 생활양식을 은연중에 가르쳐준다거나 <심슨 가족> 등이 (마리화나의 작용이라 할) 환각적 세계관을 표현하리라고는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정 정치세력이 미디어 바이러스를 의도적으로 퍼뜨리기도 한다. 일명 순이 스캔들이라는 우디 앨런과 미아 패로 스캔들이 터지자 대중들은 충격받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미디어의 인물이 자기 연인의 딸과 성교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이를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한 바이러스로 활용했다. “이 스캔들이 터질 무렵 빌 클린턴과 앨 고어는 뉴욕에서 민주당 전당대회를 개최했고, 공화당은 상대 후보자들과 그들이 장악한 도시(뉴욕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성격이 강한 도시다)를 우디 앨런과 미아 패로의 변태적 성욕과 연결지을 기회로 삼았다.” 공화당은 이렇게 해서 클린턴의 뉴욕에서의 인기와, 그의 가족의 가치와, 그의 성적인 난잡함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공화당의 공격은 계속됐다. 클린턴이

<부시의 언어장애> 마크 크리스핀 밀러 지음, 김태항 옮김, 한국방송출판 펴냄, 1만25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