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엿보는 작품들… 그들의 죽음에 이르는 행위를 어떻게 볼 건가
지독하리만큼 고요하고 평화로운 봄날,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가 다소 신경질적으로 펜을 긁어댄다.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하고, 집중할 수가 없어요. 나는 더 이상 그것과 싸울 수 없어요. 우린 행복했어요.”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를 완성한 울프는 황금빛 태양과 싱그러운 연초록빛으로 어우러진 숲을 가로질러 양쪽 호주머니에 돌을 넣고 강물로 걸어 들어간다.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2월14일 개봉 예정)는 ‘의식의 흐름’ 소설과 페미니즘으로 유명한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 장면으로 시작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영화 <디 아워스>
<디 아워스>는 별난 영화다. 영국의 중견 연극연출가 스티븐 달드리는 탄광촌 소년이 권투나 축구가 아닌 발레로 새 인생을 시작하는 영화 <빌리 엘리어트>로 감독에 데뷔해 갑자기 유명해졌다. 그리고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 수 있어’ 하는 주위의 의구심을 물리치고 니콜 키드먼·메릴 스트립·줄리언 무어 등 할리우드의 쟁쟁한 여배우들과 함께 <디 아워스>를 만들었다. 전미비평가협회는 지난해 말 이 영화를 ‘올해 최고의 영화’로 뽑았고, 지금은 골든글로브 7개 부문 후보에 오른 상태다. <디 아워스>는 마이클 커닝햄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의 내용을 바탕으로 두명의 허구적 인물과 실제 울프의 삶, 그리고 그의 작품을 ‘혼성모방’ 방식으로 절묘하게 엮어놓았다. 1999년 퓰리처상과 펜포크너상을 받았고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올랐다.
영화가 특이하다는 건 이런 유명세 때문이 아니다. 1920년대, 1950년대, 2000년대라는 세 가지 시간 축과 세명의 인물을 교차편집으로 이어가는데 그들의 내면은 한 가지 떨림으로 이어져 있다. 불안스레 흔들리는 그들의 내면은 서사적 설명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말이 필요 없는’ 느낌으로 다가올 뿐이다. 불안감은 두번의 자살 장면과 한번의 자살기도 장면으로 현실화된다. 울프는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 관한 구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렇지만 그의 눈빛은 허공을 짚는 듯 금방 무너져내릴 것 같다. 195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있는 로라(줄리안 무어)는 어린 아들 리처드와 함께 남편의 생일 파티를 준비한다. 너무나 평온한 그의 일상이지만 로라는 참을 수 없는 갑갑증과 무력감에 휩싸인다. 어린 리처드는 어머니의 이상한 기운을 직감한다. 울부짖는 리처드를 떼어놓고 로라는 잠깐 외출한다. 호텔방에 누운 그는 자살을 생각한다. 2001년 미국 뉴욕,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클래리사(메릴 스트립)는 옛 애인 리처드(애드 해리스, 로라의 어린 아들)의 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파티를 준비한다. 몸과 정신을 동시에 괴롭히는 병마와 싸우는 리처드는 자신을 위한 파티에 데려가기 위해 찾아온 클래리사의 눈앞에서 “이제 그만 끝내고 싶다”며 아파트 창 밖으로 뛰어내린다. 리처드의 자살 장면은 1995년 불현듯 자신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철학자 질 들뢰즈를 떠올리게 한다. ‘니체 이후의 첫 철학자’, ‘지성과 반역을 동일시한 사람’ 등의 수사적 평가를 얻은 그의 자살은 자신의 의지가 실린 또 하나의 ‘선택’으로 볼 수밖에 없다. 파괴적 환상, 그 내면의 통증을 아는가
자살을 생각해봤거나 염두에 둔 이들과 자살이란 낱말을 잊은 듯 살고 있는 보통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단절적이다. 그들은 서로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우리나라가 1990년대 이후 10만명당 자살 사망자 수가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고, 자살 증가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거나, 이웃 중국에서 청소년 제1 사망요인이 자살이라는 뉴스가 아주 낯설게 다가온다면 당신은 후자에 속할 것이다.
독일의 정신과 전문의이자 심리치료 전문의인 토마스 브로니쉬가 지은 <자살>(이재원 옮김, 이끌리오 펴냄)이 우리말로 옮겨져나왔다. ‘인간만의 파괴적 환상’이란 부제가 달려 있지만 자살에 대한 문화적 규명보다는 자살에 관한 논의를 출발시키는 데 필요한 갖가지 논의와 정보를 간략하게 정리한 ‘자살학 개론서’다. 누가 자살하고 왜 자살하는지에 대한 역학연구와 임상연구를 비롯해 자살 발생이론, 자살의 예방과 치료 등을 소개하고 있다.
자살 기도나 미수율은 여성이 남성보다 높으나 실제 자살자는 남성이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많거나 사회가 덜 억압적이고 개혁이 진행 중일 때 자살률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등의 통계적 수치는 흥미롭다. 더 눈여겨볼 것은 자살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아주는 대목들이다. 흔히 자살과 자살 기도는 똑같은 부류의 행동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자살은 보통 죽고 싶어하는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지만, 자살 기도는 살고자 하는 약간의 욕망을 갖고 있는 이들이 실행한다. 자살 기도의 본질은 인간적 애착에의 호소라는 것이다. 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80%는 행동으로 옮기기 전 자신의 의향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 자신의 심장을 진짜로 멈추게 하기 이전에 어떤 방식이건 ‘구조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또 자살은 유전된다거나 자살은 특정한 사람들의 문제라는 시각도 잘못됐다. 가족 가운데 자살을 한 사례가 있다면 위력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는 있을지언정 유전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자살은 부유한 자의 저주도 가난한 자의 질병도 아니다.
실존적 선택은 자기살해인가 자유죽음인가
<디 아워스>에서 울프와 리처드는 우울증이 있지만, 영화에서 그들의 자살이 실존적 선택으로 비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토마스 브로니쉬의 <자살>은 자살을 우울증과 같은 뜻으로 보는 시각을 거부한다. 우울증이 곧 자살에 대한 신호는 아니다. 다만 그의 자살 가능성에 대해 경계해야 할 뿐이다. 자살이란 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실존철학자 사르트르와 카뮈는 모두 자살을 부정적으로 봤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자살은 내 삶의 마지막이기에 미래를 부정한다. 따라서 자살은 완전히 불확정적인 것으로 남게 되며, 자살은 내 삶을 부조리 속에서 몰락하게 하는 부조리”라고 했다. 카뮈는 <시지프의 신화>에서 “나는 부조리에 세 가지 귀결을 이끌어낸다. 나의 반항, 나의 자유, 나의 열정이다. 오직 의식의 활동만을 통해서 나는 죽음으로의 초대였던 것을 삶의 법칙으로 바꿔놓는다. 그래서 나는 자살을 거부한다”고 했다. <자살하기: 자유죽음론>(1976)을 쓴 장 아메리는 ‘자기살해’, ‘자살’ 대신 ‘자유죽음’이라는 개념을 썼다. 아메리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과 병적인 것의 경계선은 언제나 자의적이며 그때그때 통용되는 사회의 기본체계에 따라 달라진다고 봤다. 휴머니즘과 존엄성을 새롭게 적용한 그의 결론은 이렇다. “존엄성과 자유가 삶을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삶을 파멸로 이르게 하는, 자연을 거스르는 괴물과도 같은 상태를 금할 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명령이 된다. …자유죽음은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이며 마지막 형태의 자유다.” 아메리는 책을 출간하고 난 2년 뒤에 자살했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독일의 심리치료 전문의 토마스 브로니쉬가 지은 <자살>은 일종의 ‘자살학 개론서’다.

사진/ 별난 영화 <디 아워스>에서 자살은 당사자들의 실존적 선택으로 그려졌다. 매부리코를 덧붙여 버지니아 울프로 변신한 니콜 키드먼.
영화가 특이하다는 건 이런 유명세 때문이 아니다. 1920년대, 1950년대, 2000년대라는 세 가지 시간 축과 세명의 인물을 교차편집으로 이어가는데 그들의 내면은 한 가지 떨림으로 이어져 있다. 불안스레 흔들리는 그들의 내면은 서사적 설명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말이 필요 없는’ 느낌으로 다가올 뿐이다. 불안감은 두번의 자살 장면과 한번의 자살기도 장면으로 현실화된다. 울프는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 관한 구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렇지만 그의 눈빛은 허공을 짚는 듯 금방 무너져내릴 것 같다. 195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있는 로라(줄리안 무어)는 어린 아들 리처드와 함께 남편의 생일 파티를 준비한다. 너무나 평온한 그의 일상이지만 로라는 참을 수 없는 갑갑증과 무력감에 휩싸인다. 어린 리처드는 어머니의 이상한 기운을 직감한다. 울부짖는 리처드를 떼어놓고 로라는 잠깐 외출한다. 호텔방에 누운 그는 자살을 생각한다. 2001년 미국 뉴욕,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클래리사(메릴 스트립)는 옛 애인 리처드(애드 해리스, 로라의 어린 아들)의 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파티를 준비한다. 몸과 정신을 동시에 괴롭히는 병마와 싸우는 리처드는 자신을 위한 파티에 데려가기 위해 찾아온 클래리사의 눈앞에서 “이제 그만 끝내고 싶다”며 아파트 창 밖으로 뛰어내린다. 리처드의 자살 장면은 1995년 불현듯 자신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철학자 질 들뢰즈를 떠올리게 한다. ‘니체 이후의 첫 철학자’, ‘지성과 반역을 동일시한 사람’ 등의 수사적 평가를 얻은 그의 자살은 자신의 의지가 실린 또 하나의 ‘선택’으로 볼 수밖에 없다. 파괴적 환상, 그 내면의 통증을 아는가

<디 아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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