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면평가로는 빵점인 김치찌개집 ‘장호왕곱창’이 단면평가로 백점인 사연
한 인물을 놓고 동료·부하·상관 등이 평가한 것을 종합해 인사에 반영하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식 다면평가제가 요즈음 화제가 되고 있다. 몇해 전 나도 어느 기관의 간부로 일하면서 부하직원들의 업무수행 고가를 매겨본 적이 있는데, 평가항목의 애매모호함과 각자가 담당한 업무내용의 이질성으로 인해 점수화해 평가를 내리기가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상관 혼자 주관적으로 판단해 부하의 운명을 결정하는 종래의 평가제보다 다면평가제는 더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다. 그러나 나는 다면평가보다는 단면평가를 더 좋아한다. 그렇다면 나는 다면평가제를 반대하는 개혁 저항세력인가 노 당선자의 생각과 말, 행동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수구언론들이라면 쾌재를 부를 일이지만 좋아하지 마시라. 내가 평가하고자 하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음식점이다.
음식점 평가항목으로는 먼저 맛이 첫째일 것이고, 다음으로 청결도·교통·주차시설·인테리어·인심·친절도·값·양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모두 고려해 평가하면 이것이 음식점 다면평가제일 것인데, 내가 <한겨레21>의 음식이야기에서 소개하는 집들은 맛과 인심 이외에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으니, 나는 음식점 단면평가제를 고수하는 것이다.
어쩌다 서소문 네거리 부근에 있는 김치찌개집 ‘장호왕곱창’에를 들르다 보면 어떤 때는 참 ‘그렇다’는 느낌이 든다. 여기서 그렇다는 것은 이 집의 환경 모두 그러하지만, 어렵게 짬을 내 찾아가 기다리다 가까스로 김치찌개를 시켜 허겁지겁 먹고 나오는 전 과정이 좀 ‘그렇다’는 것이니, 다음 이야기를 잘 읽어보시라.
‘장호왕곱창’집은 문이 두개 있다. 하나는 줄 서서 기다리다가 입장하는 문이고, 다른 하나는 밥을 먹고 난 뒤 퇴장하는 문이다. 실내가 너무나 비좁아 영하의 칼바람이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문 밖에 서서 종업원의 ‘입장 허락’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서소문 부근의 회사 사람들은 꾀를 내어 11시30분쯤 한 사람이 먼저 와서 찌개를 시켜놓고 자리를 확보한 뒤 끓을 때쯤 휴대전화로 일행들을 불러들인다.
줄만 잘 선다고 모두 김치찌개를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시40분 이후에는 줄을 섰더라도 손님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도 이 규칙에 걸려 입장을 거절당했는데, 패가망신을 각오하고 주인에게 청탁을 넣어보았지만 괜히 속만 보이고 말았다. 전에는 이렇게 아주 엄격했는데, 요즘은 좀 완화돼 1시40분까지 줄을 선 사람은 모두 입장시킨다. 선택의 다양성 그건 딴 데 가서 알아보시라. 그냥 주는 대로 1인분에 5천원짜리 김치찌개 한 가지고, 손님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산’이냐 ‘참이슬’이냐의 ‘소주 선택권’과 라면 사리를 넣어먹을 수 있는 ‘자유’뿐이다. 손님들이 빨리 먹고 가기를 재촉하지는 않지만, 밥이 몇 숟갈 남지 않고 찌개국물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면 다음 손님을 입장시켜 뒤에서 기다리게 하니 무언의 압력에 마지막 몇 숟갈은 그야말로 허겁지겁이다. ‘공급자가 왕’인 장호왕곱창집. 주차장 없음, 예약 안 됨, 환경 열악, 메뉴 선택권 없음 등, 다면평가제라면 이 집이 어디 좋은 음식점이라고 감히 명함을 내밀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개운하고 시원하면서도 새콤매콤한 이 집의 김치찌개 맛과 주인 김재하(60)씨의 넉넉한 인심은 나로 하여금 하늘이 두쪽 나더라도 음식점 단면평가제를 고집하게 한다.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사진/ 주차장 없음, 예약 안 됨, 환경 열악, 메뉴 선택권 없음…. 그러나 시원하면서도 새콤매콤한 장호왕곱창의 김치찌개 맛과 주인의 넉넉한 인심은 모든 것을 감수하게 한다.

줄만 잘 선다고 모두 김치찌개를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시40분 이후에는 줄을 섰더라도 손님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도 이 규칙에 걸려 입장을 거절당했는데, 패가망신을 각오하고 주인에게 청탁을 넣어보았지만 괜히 속만 보이고 말았다. 전에는 이렇게 아주 엄격했는데, 요즘은 좀 완화돼 1시40분까지 줄을 선 사람은 모두 입장시킨다. 선택의 다양성 그건 딴 데 가서 알아보시라. 그냥 주는 대로 1인분에 5천원짜리 김치찌개 한 가지고, 손님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산’이냐 ‘참이슬’이냐의 ‘소주 선택권’과 라면 사리를 넣어먹을 수 있는 ‘자유’뿐이다. 손님들이 빨리 먹고 가기를 재촉하지는 않지만, 밥이 몇 숟갈 남지 않고 찌개국물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면 다음 손님을 입장시켜 뒤에서 기다리게 하니 무언의 압력에 마지막 몇 숟갈은 그야말로 허겁지겁이다. ‘공급자가 왕’인 장호왕곱창집. 주차장 없음, 예약 안 됨, 환경 열악, 메뉴 선택권 없음 등, 다면평가제라면 이 집이 어디 좋은 음식점이라고 감히 명함을 내밀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개운하고 시원하면서도 새콤매콤한 이 집의 김치찌개 맛과 주인 김재하(60)씨의 넉넉한 인심은 나로 하여금 하늘이 두쪽 나더라도 음식점 단면평가제를 고집하게 한다.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