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기엔 너무 순수하고 아이라기엔 너무 심오한 ‘아홉살짜리 천재소년’ 김창완
초등학교 6학년 내 마지막 어린이날 선물은 대학생 사촌오빠로부터 받은 산울림의 <개구장이> 엘피(LP)판이었다. 난 그 동요스러운 가요, 가요스러운 동요를 듣고 또 들었다. 고등학교 땐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어떻게 세상에 이런 노래가 있나 신기해했다. 사랑 노래가 판치는 시절, 엄마가 해주는 고등어 반찬이니 비닐장판 위에 있는 딱정벌레가 어떻다느니 하는 가사도 그렇고 노래도 마치 자면서 부르는 것처럼 심드렁하기 짝이 없었으니 말이다. 헌데 내 10대의 감성은 그의 어정쩡하면서도 심드렁한 노래에 ‘꽂혀’ 있었다. 그랬다. 그는 내 어린 시절의 아이콘 가운데 하나였다.
아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배우란 직업은 참 매력 있는 직업인 것 같다. 배우생활 10년 남짓된 올해 난 내 10대를 노래로 키워준 그를 상대역으로 만났다. 배우로 살아간다는 건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걸 맘껏 해 볼 수 있어 좋은 점도 있지만 이렇게 배우가 아니었으면 결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으니 참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난 얼마 전 드라마 속에서 그를 다른 여자에게 빼앗겼다. 원래 나와 결혼하기로 돼 있었건만…. 극중인데도 속이 상했다. 마음의 정리()를 하고 나서 차분한 마음으로 분장실에서 만난 그가 난 갑자기 ‘사회학적으로’ 궁금해졌다.
인터뷰 허락을 단번에 해주긴 했지만 <한겨레21>이라는 얘길 정말 10번도 더 했는데 계속 “어디라고” 하고 묻는다. 그러고 보니 그를 인터뷰 기사에서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우리나라 대중가요사에 빠질 수 없는 사람이고 요즘 텔레비전 광고 10개 가운데 하나는 그를 모델로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술도 몇번 마셔보고 작업도 같이 해봤는데도 그의 개인사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대뜸 가족 얘기부터 물었다. 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간 외아들 신화는 이제 대학 졸업을 앞두었는데 그의 전공이 ‘원거리통신’이라는 걸 그는 최근에 와서야 알았다. 대화가 없었느냐고 했더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많이 놀고 오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공부를 하고 왔더군” 하면서 예의 싱거운 미소를 짓는다. 신화는 한번도 속을 썩인 적이 없고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목에 핏대 세우며 싸워본 적도 한번도 없단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아들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신기하다. 어떻게 단 한번도 속을 안 썩이는 자식이 있을까 한데 그 정도 신기함은 부인 얘기를 들으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여기서 잠깐. 부인 얘기를 하기 전에 술 얘기를 먼저 해야겠다. 그의 음주생활은 가히 알코올 중독에 가까운 수준이다. 낮술은 기본이고 앞에 앉은 사람이 그리 맘에 들지 않아도 그냥 기분만 조금 좋으면 술자리를 벌인다. 그리고 거의 하루를 넘긴다. 그런 그가 아침방송을 하는 게 신기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음주방송을 하다가 청취자한테 지적을 당한 적도 몇번 있다. 난 당연히 아내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의 아내는 그에게 자유의 날개를 달아줬다. 아내 얘기는 아들 얘기보다 신기했다. 우리 부부도 참 ‘쿨’하게 사는 부부라고 자부해왔지만 그의 부부 얘길 들으니 우리 부부 쿨한 건 새 발의 피였다. 단 한번의 부부싸움도 없었고 서로의 생활을 전혀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강한 유대관계를 갖고 살아가는 부부인 것 같았다. 아직 결혼 3년 차인 나는 ‘공동 가사분담’이 어쩌고 하면서 잘난 척했다가 그의 ‘큰사랑론’ 앞에서 슬쩍 꼬리를 내렸다. 라디오 예찬과 ‘대중을 읽는 힘’
아닌게 아니라 인터뷰 내내 대화가 자꾸 꼬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든 수다 떠는 걸로는 뒤지지 않는 나였는데 이상하다 싶었다. 조금 있다가 이유를 알았다. 가수·배우·디스크자키(DJ)·광고모델 등이 아닌 자연인 김창완은 마치 아홉살짜리 천재소년 같았다. 그냥 천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소년도 아닌 꼭 아홉살짜리 천재 말이다. 어른이라기엔 너무 순수하고 아이라기엔 너무 심오한 아홉살짜리 천재소년!
<한겨레21>을 본 적이 있느냐니까 <한겨레21>뿐만이 아니라 어떤 시사잡지에도 관심이 없다고 한다. 유일하게 관심 있는 잡지는 자연다큐에 관한 것 정도. 신문도 안 보고 텔레비전도 보지 않는다는 그에게 살면서 가장 궁금한 건 뭐냐니까 인간은 어디서 왔을까라고 진지하게 대답한다(이러니 내가 그를 천재소년이라고 볼 수밖에…). 그리고 정말 자연스러운 CF 연기의 노하우를 물었더니 ‘대중을 읽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니 잡지도 신문도 텔레비전도 안 보면서 어떻게 ‘대중’을 읽느냐고 했더니 라디오 DJ를 오래 하면 대중으로 향하는 다른 통로는 전혀 필요가 없다며 라디오를 예찬한다(그는 자신의 아침방송 오프닝 멘트를 오랫동안 직접 쓰고 있다.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
몇년 전 어느 술자리에서 들은 얘기. 그는 자신이 하는 일보다 세상이 돈을 너무 많이 주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당시 그 얘긴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땅의 어느 누가 자기 능력보다 대우가 후하다고 불평()하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조금 주저하다가 이젠 그렇지 않단다. 까닭은 그때보다 자신의 씀씀이가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이라나
먹물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서울대 출신의 가수 겸, 탤런트 겸, MC 겸, DJ 겸, CF 모델인 그의 얘길 종합해보면 이렇다. 가장 큰 관심사는 자연환경이 보존돼야 한다는 것(그의 라디오 오프닝 멘트 대부분은 하늘·구름·벌레·물에 대해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건 부인을 만난 것이라는 것, 영화는 집에서 DVD로 보고 책을 많이 봤는데 요샌 골프에 빠져서 많이 못 보고 있고, 투표는 ‘난리’가 안 났으면 하는 맘으로 했고, 날마다 술 먹는 게 행복하다는 것이다.
모르는 건 알려고 노력하지 말라…
사회에 대한 환원 얘기가 나왔을 때 그는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세상에 대한 가장 큰 시혜는 용서라고 했다. 개인에 대한 용서에서 시작해 사회적 용서가 자신이 세상에게 베푸는 배려고 그것은 곧 망각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인터뷰 내내 이런 유의 얘길 자주 했다. “모르는 건 모르는 채로 가슴에 담아둬라. 알려고 노력한다고 사물의 본질을 알 수 없다.” 흠… 이건 필시 허연 머리 허연 수염에 허연 도포를 입은 도사 할아버지들이 하는 말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도사 같은 말만 했다. 내가 아주 흉측한 속물로 느껴질 정도로. 신문도 안 보고 텔레비전도 안 보고 그저 술만 먹는데도 그렇게 노래도 잘 만들고 DJ도 잘 하고 연기도 잘 하는 그와 만나고 돌아오는 내 느낌은 꼭 도사님을 만나고 오는 느낌이었다. 아니지. 이런 대도시에 사는 도사가 어딨어 것도 자전거 타고 다니는 도사라…. 그렇담 그는 혹시 외계인이 아닐까

사진/ 오지혜씨의 10대를 노래로 키워준 김창완. 이제 드라마에서 상대역이 된 그는 극중에서 오씨를 물먹였다. (김종수 기자)
인터뷰 허락을 단번에 해주긴 했지만 <한겨레21>이라는 얘길 정말 10번도 더 했는데 계속 “어디라고” 하고 묻는다. 그러고 보니 그를 인터뷰 기사에서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우리나라 대중가요사에 빠질 수 없는 사람이고 요즘 텔레비전 광고 10개 가운데 하나는 그를 모델로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술도 몇번 마셔보고 작업도 같이 해봤는데도 그의 개인사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대뜸 가족 얘기부터 물었다. 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간 외아들 신화는 이제 대학 졸업을 앞두었는데 그의 전공이 ‘원거리통신’이라는 걸 그는 최근에 와서야 알았다. 대화가 없었느냐고 했더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많이 놀고 오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공부를 하고 왔더군” 하면서 예의 싱거운 미소를 짓는다. 신화는 한번도 속을 썩인 적이 없고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목에 핏대 세우며 싸워본 적도 한번도 없단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아들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신기하다. 어떻게 단 한번도 속을 안 썩이는 자식이 있을까 한데 그 정도 신기함은 부인 얘기를 들으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여기서 잠깐. 부인 얘기를 하기 전에 술 얘기를 먼저 해야겠다. 그의 음주생활은 가히 알코올 중독에 가까운 수준이다. 낮술은 기본이고 앞에 앉은 사람이 그리 맘에 들지 않아도 그냥 기분만 조금 좋으면 술자리를 벌인다. 그리고 거의 하루를 넘긴다. 그런 그가 아침방송을 하는 게 신기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음주방송을 하다가 청취자한테 지적을 당한 적도 몇번 있다. 난 당연히 아내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의 아내는 그에게 자유의 날개를 달아줬다. 아내 얘기는 아들 얘기보다 신기했다. 우리 부부도 참 ‘쿨’하게 사는 부부라고 자부해왔지만 그의 부부 얘길 들으니 우리 부부 쿨한 건 새 발의 피였다. 단 한번의 부부싸움도 없었고 서로의 생활을 전혀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강한 유대관계를 갖고 살아가는 부부인 것 같았다. 아직 결혼 3년 차인 나는 ‘공동 가사분담’이 어쩌고 하면서 잘난 척했다가 그의 ‘큰사랑론’ 앞에서 슬쩍 꼬리를 내렸다. 라디오 예찬과 ‘대중을 읽는 힘’

사진/ 가수 겸 탤런트 겸 MC 겸 DJ 겸 모델인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도사 같은 말만 했다. (김종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