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중간첩>에서 적대적 타자로 만난 남·북. 치밀한 구성에 한석규의 정교한 연기·로맨스는 지리멸렬
일본의 한 영화사가 <이중간첩>(1월23일 개봉·감독 김현정)을 150만달러(약 18억원)에 선구매했다. 시나리오만 보고 ‘제2의 쉬리 열풍’을 기대한다며 영화가 완성되기도 전에 거래를 성사시켰다. 47억원가량 들어간 순제작비의 3분의 1이 단 한건의 계약으로 보충됐다. <이중간첩>에 쏟아지는 다채로운 기대감의 한 풍경이다. 흥행성의 강도나 분단 이데올로기에 대한 접근방식, 그리고 무엇보다 <텔미썸딩> 이후 4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한석규의 건재 여부 등이 궁금증의 출처다.
남과 북을 넘나들며 첩보전 치러
남과 북은 모두 적대적인 ‘타자’로 설정됐다. 인민군 소좌 림병호(한석규)의 기본 선택은 북이지만, 남과 북 어느 곳도 안식처로 삼을 수 없는 이중의 자물쇠가 채워지고 만다. 여기에는 1%의 타협도 가능해보이지 않는다. 남이든 북이든 권력게임의 한복판에서 인간적으로 살아간다는 게, 이념을 구현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아주 빨리 알아채더라도, 그래서 제3의 길을 선택하더라도 그건 애초 출구 없는 외통수가 돼버린다. 이 때문에 영화를 아주 무겁게 시작하고 그 톤을 유지하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림병호와 영화의 눈길은 하나이기에 남쪽은 더욱더 끔찍한 ‘타자’가 된다. 1980년 림병호가 총상까지 입으며 동베를린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뒤, 남쪽 요원들은 “자유 대한의 품에 안긴 걸 환영한다”고 말한다. 불과 일주일 뒤, 림병호는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생사를 오간다. “내려온 목적이 뭐야”라며 물고문·전기고문을 가하는 장면은 흥미로 넘쳐나는 심기를 쿡쿡 찔러댈 만큼 냉혹하다. 간신히 ‘심사’를 통과한 림병호는 2년간 북파 공작원의 교관으로 일하게 되고, 정보부의 정식 본부요원으로 입성하기에 이른다. 이제 영화는 첩보전이라는 장르의 규칙 속으로 서서히 진입한다. 첫 번째 지령이 떨어진다. 고정간첩인 라디오 아나운서 윤수미(고소영)와의 접선이다.
림병호에게는 남과 북을 대리하는 두명의 ‘아버지’가 생겨난다. 남한 지하조직의 총책인 조선노동당 서열 56위의 송경식(송재호)과 중앙정보부 국장 백승철(천호진). 외견상 후견인은 백승철이며 그는 림병호를 언제부턴가 양아들처럼 다정하게 대한다. 스파이물이 깔아놓게 마련인 몇 가지 반전은 다시 한번 ‘역사적 사실’과 합류한다.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조작해 크게 한건 올리려는 백승철의 계략이 착착 진행되고, 여기에 림병호가 개입하는 과정은 ‘재현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계기로 간교한 아버지는 아들을 제물로 삼으려 하고 아들은 준비된 반역의 칼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더이상 분단구도의 속박은 없다
<이중간첩>은 한국영화가 분단구도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걸 새삼 진지한 방식으로 증명한다. <쉬리>의 화끈한 장르화나 <공동경비구역 JSA>의 유머 같은 우회로 없이 정색하고 말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런 진전에 덧붙여 이 영화는 <쉬리>와 <…JSA>의 ‘신화’를 이어갈 것인가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행사를 실제 촬영한 필름에 림병호의 행진장면을 합성한 부분이나 림병호의 동베를린 탈출장면은 ‘스펙터클’하다. 기계적으로 말한다면, <쉬리>와 <…JSA>에선 감동적인 로맨스가 결정적 장면을 연출했다. <쉬리>에서는 남북 요원 사이의 비극적 사랑이, <…JSA>에선 (제작 초기에 잠시나마 거론된) ‘동성애 코드’를 제거한 남북 병사 사이의 순수한 우정이 짠한 감동을 만들어냈다. 치밀하게 짜인 구성에서 림병호와 윤수미의 로맨스가 힘을 받지 못하는 건 미스터리적이다. 한석규 나체로까지 열연해서가 아니라 그의 정교한 연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사진/ 영화 <이중간첩>은 분단구도에 정면으로 접근한다. 첩보 로맨스를 엮어가는 윤수미와 림병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