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경연미
버스는 젖소 키우는 은경언니네 집을 지나치고 보리들판 너른 백수하사리를 지나 염전 어디메쯤에서야 멈추어 설 것이다. 점점이 마을 어귀에 내려준 사람들은 메주 띄우는 자기 집들로 종종걸음칠 것이고….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발자국 찍으며 동네 개들을 죄다 깨운다. 가로등이 휘황히 비추는 마을회관 앞은 눈부신 조명발이다. 그곳에 발자국으로 하트를 찍어놓는다. 사랑이 넘치는 한해를 빌면서 말이다. 동네 안길 아래뜰 아제네집 앞은 발목까지 눈이 차오른다. 역시 미정이 아빠는 부지런하다. 금방 눈을 치웠는지 싸리비 자국이 뚜렷하다. 여전히 눈은 흩뿌리고 군데군데 별은 총총하다. 집주인도 못 알아보는 우리집 큰개는 사납게 짖어대고 야인시대 조연의 이름을 따 둘째놈이 지은 ‘번개’는 애교스러운 몸짓으로 분주하다. 오늘 하루 고구마 쪄내고 동치미 국물 내온 죽림댁이 화투판에서 500원이나 따갔다며 잔돈푼 만지는 어머니의 손끝도 느려져 있다. “농사꾼은 이때가 질 좋은겨. 출근걱정이 있나 식량걱정이 있나 이때만치 농사꾼 부러울 때가 없을 거이다. 그나저나 서울 아그덜이 걱정인디.” 일찌감치 이불 밑에 자리잡은 어머니는 괜한 걱정을 보태는 눈치다. 시골마을엔 어려운 살림살이를 덮어볼 요량으로 수북수북 눈이 쌓인다. 환히 불 밝힌 수일이 아저씨네 딸기 하우스가 걱정스러워도 푸근한 밤이다. 이태옥 ㅣ 영광 여성의전화 사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