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리기
질병은 지구상에 처음 생물체가 출현했을 때부터 있었다. 질병에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의 노력도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됐다. 원시 미개인들은 다수의 질병이 노여움을 산 악령이 보낸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침입한 악령을 쫓아내 치료하려고 했다.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멕시코·페루 등에서 의학은 종교에 속하는 것이었다. 인도 의학은 그리스 의학보다 앞섰으며 독자적인 발전을 했다. 그럼에도 의학이 결코 종교로부터 분리되지는 못했다. 동양의학의 주축을 이루는 한의학은 지식 체계를 자연철학에 두고 있다.
십자군의 왕래에 의해서 11세기 이후 유럽에 만연한 나병은 저주받은 불치병으로 여겨졌고, 14세기에는 흑사병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6천만명 내지 7천만명 정도가 생명을 잃었다. 마비성 치매나 척수마비를 일으키는 매독은 15세기 말 유럽을 갑작스럽게 덮쳐 문명세계에 광범하고도 뿌리깊게 퍼져나갔다. 폐결핵은 기원전 5000년 무렵의 선사시대로부터 인류 역사와 더불어 꾸준히 인간을 괴롭혀 왔다. 이렇듯 나병·흑사병·매독·폐결핵·장티푸스·콜레라·홍역·백일해·뇌염·천연두·소아마비·디프테리아·발진티푸스 등은 하나같이 인류를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은 전염병들이다. 이러한 병들은 ‘불치병’이거나 ‘난치병’으로 여겨졌다.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1920년에 30살에서 최근에는 76살로 갑절 이상 늘어났다. 전염병의 퇴치와 수술법의 발달로 과거의 불치병과 난치병이 치료 가능한 병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공포의 질병이 계속 인류를 위협하는 것도 사실이다. 암과 생물 사이의 싸움은 오랫동안 있어 왔는데 문제는 인간이 발암물질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발암물질의 바다’의 한복판에서 헤엄치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1981년에 처음 보고된 ‘에이즈’는 현대인들을 암보다 더 무서운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역사 속에 인류와 함께 존재한 질병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면, 질병은 문명이나 사회에 의해 창조되는 경향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질병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고 원인과 특성도 밝혀졌다. 궁극적으로 불치병과 난치병은 언젠가는 극복되고 퇴치될 것임에 틀림없는 사실이다. 지난날의 역사는 “영원한 불치병이란 없다”는 믿음을 주었으며 “오늘날의 난치병도 언젠가는 극복되고야 말 것이다”라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하다. 물론 난치병 극복의 시기는 인류 전체의 관심과 노력의 정도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세일 ㅣ 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대학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