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딸들에게 바치는 <컨텐더>의 정치적 선택… 사생활 들추기, 그 매카시즘의 통쾌한 종말
지난해 11월 개봉한 <스위트 알라바마>는 <금발이 너무해〉로 스타덤에 오른 리즈 위더스푼을 앞세운 로맨틱 코미디였다. 그런데 흥미를 자극한 건 좌충우돌하는 로맨스의 재미가 아니라 ‘미국의 공화당 지지자들이 보란 듯이 만든 영화’ 같았다는 점이었다. 위더스푼과 열애를 펼치는 남자의 어머니가 뉴욕시장(캔디스 버겐)인데, 영화는 그 어머니를 정치적 야심에 가득 찬 위선자로 그렸다. 언론이 주시하는 민주당의 대표주자로 설정해놓고는 맘껏 비웃는 태도였다.
여성 부통령 후보 차별적 흠집내기
거꾸로 <컨텐더>(1월17일 개봉, 각본·감독 로드 루리)는 훨씬 노골적으로 공화당을 공격하며 민주당과 그 정치이념을 옹호한다. <컨텐더>는 제작 때부터 화제를 불렀는데, 당시 진행 중이던 르윈스키 스캔들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클린턴의 정치인생을 가장 곤란하게 만든 섹스 스캔들을 물고늘어진 인물 가운데 대표주자가 케네스 스타 검사였다. <컨텐더>는 클린턴과 케네스 스타의 대립구도를 여성 부통령 후보 레이니 핸슨(조앤 앨런)과, 핸슨을 어떻게 해서든 추락시키려고 달려드는 청문회 의장 러니언(게리 올드먼)으로 대체시켰다. 공화당 하원의원인 러니언은 유고된 부통령 후보로 여성 상원의원인 핸슨이 지명되자 발끈한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 탄생하길 꺼리는 이유는 그가 여성이고 낙태의 권리를 옹호하거나 사형제도를 반대한다는 등에 있었다.
러니언의 ‘저격’ 작전은 섹스 스캔들에서 절정을 이룬다. 러니언은 청문회가 열리기 직전, 핸슨이 대학시절 여러 남학생과 섹스 파티를 벌인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를 입수해 인터넷으로 유포한다. <워싱턴포스트>와 등 유력 언론은 이를 받아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러니언은 시끄러워진 언론을 다시 인용하며 청문회장에서 핸슨을 몰아세운다. “어찌된 것이냐”며 다그치는 러니언에 대해 핸슨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전략’을 택한다. 섹스파티가 사실이든, 거짓이든 이런 유의 사생활을 문제삼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설사 섹스쇼를 벌인 과거가 있더라도 그게 지금의 공직 수행능력을 따지는 잣대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정견이 아닌 사생활을 문제삼는 건 또 다른 종류의 ‘매카시즘’이라는 시각이다.
“사생활을 빌려 정견을 공격할 수 없다”
로드 루리 감독은 영화 마지막에 “세상 모든 딸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나는 내 딸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고 이중 잣대가 적용되지 않으며 원칙이 정치적인 이유로 변질되지 않는 세상에서 자라나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감독의 희망이 고스란히 투영된 핸슨은 그 원칙을 훌륭하게 지켜내는 가상의 정치인이다. 러니언이 “낙태 옹호는 살인행위나 다름없다”며 거침없이 공격할 때 핸슨의 얼굴은 흥분으로 점차 상기된다. 이쯤에서 관객은 그의 ‘멋진’ 반격을 기대하게 된다. 러니언의 아내가 핸슨을 찾아와 낙태했던 경험을 들어 남편의 낙태 반대론을 격파해달라고 주문한 사실을 영화가 미리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핸슨은 끝내 러니언의 약점을 들춰내지 않는다. 그의 사생활(혹은 과거)을 빌려 그의 정견을 공격할 수 없다는 원칙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핸슨 같은 정치적 행보가 얼마나 성공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건 불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보스상륙작전>이란 조폭코미디 뒤에 현 정권의 보이지 않는 손이 숨어 있다며 야당이 발끈해 역설적으로 영화의 상업적 성공을 돕는 우리의 현실에 비춰보면, 적나라한 특정 정당 편들기와 <워싱턴포스트> 같은 유력 언론에 대한 흠집내기 등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문제삼지 않은 그들의 태도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한번 따져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사진/ <컨텐더>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을 다루고 있다.
러니언의 ‘저격’ 작전은 섹스 스캔들에서 절정을 이룬다. 러니언은 청문회가 열리기 직전, 핸슨이 대학시절 여러 남학생과 섹스 파티를 벌인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를 입수해 인터넷으로 유포한다. <워싱턴포스트>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