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전승 과정 거친 신화의 뿌리 밝혀… 미크마크 인디언의 신데렐라를 아는가
페르세포네니 다이달로스니 발음도 녹록지 않은 이름을 줄줄 읊어대는 어린이들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그리스·로마 신화의 열풍은 가히 폭발적이다. 하지만 인기에 비해 신화를 해석하는 인식의 지평은 아직 얕다. 신화는 그저 단순반복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나마 그리스·로마 신화는 신화 중에서도 완결성을 갖춘 문학으로서, 헬레니즘의 정신적 뿌리로서 귀한 대접을 받는 행복한 경우다. 대부분 다른 민족의 신화들은 학문적 관심 대상이 아닌 경우에야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채 대중적 관심에서 밀려나 있다.
일본 주오대학 나카자와 신이치 교수가 강의록을 묶은 <신화,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은 신화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설득력 있게 제시한 책이다. 나카자와는 신화야말로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철학이라고 주장한다. “‘철학’의 문을 연 그리스 지식도 2500년밖에 안 됐지만 신화는 신석기시대인 3만년 전부터 축적한 지성이기 때문”이다. 신석기혁명을 거치며 사회조직을 꾸린 인간들이 만든 신화는 유라시아 대륙의 전역으로 퍼졌으며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까지 확산됐다. 거대한 고리를 이룬 신화세계는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지역에서 변화와 발전의 과정을 거치면서 공통의 핵에 해당되는 것만은 불변의 것으로 유지돼왔다.
신데렐라 이야기 유럽에만 450종 넘어
나카자와가 뜻밖에도 이 책에서 그 중심사례로 들고 있는 것은 너무도 유명한 민화 ‘신데렐라’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프랑스 샤를 페로의 동화집에 나오는 ‘상드리용’(재투성이 엉덩이의 아이)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이는 루이 14세 때 궁정 시인인 페로가 민간에 내려오는 전승을 왕실의 품위에 어울리도록 고상한 내용으로 꾸민 것이다. 유럽에선 페로판 이전부터 450종 이상의 다양한 변형이 전해내려왔으며, 중국에선 9세기부터 이미 신데렐라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었다. ‘신데렐라’에서 중요한 코드는 재 또는 아궁이(신데렐라는 재투성이란 뜻), 신발 한짝 등이다. 그림형제가 독일 민담에서 채집한 신데렐라 이야기나 포르투갈의 ‘아궁이 고양이’, 중국 남부 소수민족 장족에게 내려오는 ‘섭한의 이야기’ 모두 주인공은 부엌의 아궁이 앞에서 잠들고 신발 한짝을 ‘증표’로 흘린다. 단지 그림형제의 신데렐라는 요정 대모 대신 돌아가신 어머니의 혼이 깃든 개암나무의 도움을 받아 무도회에 입고 나갈 의상을 준비한다. 또 포르투갈과 중국의 ‘신데렐라’는 궁궐의 왕자님 대신 수중세계의 물고기왕자와 데이트를 한다는 점이 다르다. 나카자와는 “이 물고기왕자는 극단적인 족외혼을 상징한다. 특히 물고기와 결혼을 한 아궁이 고양이는 망자 또는 다른 세계의 존재와 커뮤니케이션의 회로를 여는 것의 중요성이 표현돼 있다”고 분석한다. 지은이는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신발 한짝의 의미를 이탈리아 역사학자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분석을 빌려, 오이디푸스의 ‘절름발’과 연관짓는다. 한쪽 다리를 질질 끄는 오이디푸스는, 제대로 대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자, 즉 저승세계에 발을 반쯤 들여놓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신데렐라 역시 오이디푸스와 마찬가지로 무도회에서 신발을 잃어버리고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집으로 서둘러 돌아온다. “언니들의 정체를 밝히고 왕자와 결혼하는 영웅, 이 영웅의 신체에 찍혀 있는 각인은 잃어버린 신발이라는 결정적인 세부사항에서 쉽게 발견된다. 신데렐라의 신발 한짝은 저승세계에 갔던 사람에 대한 표시인 것이다.” 수중세계를 자유로이 오가는 섭한, 아궁이 고양이에는 마법의 도움을 받아 망자의 나라를 오가는 여성, 곧 샤먼의 이미지가 이미 암시돼 있다.
한편, 매력적인 아가씨와 멋진 남자의 결합이라는 서구의 통속적인 소재를 비틀고 새로운 시각에서 신데렐라를 감동적으로 패러디한 이야기도 있다. 오대호 주변에 살던 미크마크 인디언들은 서양의 신데렐라에 맞서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위대한 사냥꾼 ‘보이지 않는 사람’은 결혼 상대자로 자신을 볼 수 있는 여자를 원했지만 어떤 여자도 그를 볼 수 없었다. 늘 부엌일에 시달리며 화상을 입는 바람에 마치 피부가 ‘누덕누덕 기운 듯’한 소녀도 자신의 운을 시험하기로 했다. 커다란 모카신을 질질 끌고 추레한 노파처럼 옷을 입고 찾아갔다. 서양의 신데렐라가 작고 아름다운 신발을 신고 무도회에 간 것에 비하면 정반대다. 이런 차림새로 모두의 조롱을 받았지만, 오직 그녀만이 무지개를 두른 사냥꾼을 보았고, 마침내 사랑을 얻어냈다. 지은이는 이 미크마크판 신데렐라에는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에 대한 욕망에 오염돼버린 서양을 비판하는” 인디언식 결혼관이 투영돼 있다고 본다.
신화읽기로 야생적 사고의 복원한다
책의 흐름을 좇다 보면 각 지역에서 내려온 신데렐라 이야기는 신화의 원형은 많이 잃었지만, 신화적 사고라는 커다란 원 안에 서로 연결돼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마치 라벨의 <볼레로>가 아주 조금씩 스스로를 변형시켜가다가 커다란 전체성을 가진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지역마다 세부적인 상징은 변형시켜가면서도 한 고리로 묶을 수 있는 일관된 논리를 지니고 있다.
지은이는 이러한 신화읽기 작업을 통해 ‘야생적 사고’의 복원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신화는 비합리적 논리를 매우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보면 비합리의 경계선 바로 앞까지 접근하면서도 그 선을 넘어버리지 않습니다. 사고의 힘이 철저하게 작용해서 신화를 이성의 영역에 묶어두고 있습니다. 국가의 탄생은 해결불능의 부조리를 초래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출현하기 이전, 즉 사회가 안고 있는 부조리를 사고의 힘에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대에는, 인간은 신화를 통해서 부조리의 본질을 생각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니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동아시아 펴냄, 1만원.
나카자와가 뜻밖에도 이 책에서 그 중심사례로 들고 있는 것은 너무도 유명한 민화 ‘신데렐라’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프랑스 샤를 페로의 동화집에 나오는 ‘상드리용’(재투성이 엉덩이의 아이)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이는 루이 14세 때 궁정 시인인 페로가 민간에 내려오는 전승을 왕실의 품위에 어울리도록 고상한 내용으로 꾸민 것이다. 유럽에선 페로판 이전부터 450종 이상의 다양한 변형이 전해내려왔으며, 중국에선 9세기부터 이미 신데렐라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었다. ‘신데렐라’에서 중요한 코드는 재 또는 아궁이(신데렐라는 재투성이란 뜻), 신발 한짝 등이다. 그림형제가 독일 민담에서 채집한 신데렐라 이야기나 포르투갈의 ‘아궁이 고양이’, 중국 남부 소수민족 장족에게 내려오는 ‘섭한의 이야기’ 모두 주인공은 부엌의 아궁이 앞에서 잠들고 신발 한짝을 ‘증표’로 흘린다. 단지 그림형제의 신데렐라는 요정 대모 대신 돌아가신 어머니의 혼이 깃든 개암나무의 도움을 받아 무도회에 입고 나갈 의상을 준비한다. 또 포르투갈과 중국의 ‘신데렐라’는 궁궐의 왕자님 대신 수중세계의 물고기왕자와 데이트를 한다는 점이 다르다. 나카자와는 “이 물고기왕자는 극단적인 족외혼을 상징한다. 특히 물고기와 결혼을 한 아궁이 고양이는 망자 또는 다른 세계의 존재와 커뮤니케이션의 회로를 여는 것의 중요성이 표현돼 있다”고 분석한다. 지은이는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신발 한짝의 의미를 이탈리아 역사학자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분석을 빌려, 오이디푸스의 ‘절름발’과 연관짓는다. 한쪽 다리를 질질 끄는 오이디푸스는, 제대로 대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자, 즉 저승세계에 발을 반쯤 들여놓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신데렐라 역시 오이디푸스와 마찬가지로 무도회에서 신발을 잃어버리고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집으로 서둘러 돌아온다. “언니들의 정체를 밝히고 왕자와 결혼하는 영웅, 이 영웅의 신체에 찍혀 있는 각인은 잃어버린 신발이라는 결정적인 세부사항에서 쉽게 발견된다. 신데렐라의 신발 한짝은 저승세계에 갔던 사람에 대한 표시인 것이다.” 수중세계를 자유로이 오가는 섭한, 아궁이 고양이에는 마법의 도움을 받아 망자의 나라를 오가는 여성, 곧 샤먼의 이미지가 이미 암시돼 있다.

사진/ 신데렐라는 전 세계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신화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나는 신데렐라는 끊임없이 변형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