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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팝페라도 즐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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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1-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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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어드 음대 예비학교에 다니는 임형주군이 클래식 발성법으로 팝을 부르는 까닭

사진/ 팝페라 가수로 스타 탄생을 꿈꾸는 임형주군. 17살의 그는 기교 없는 투명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류우종 기자)
2년 전이었다. 예원학교 성악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기 전, 임형주군은 인터넷을 뒤져 자신의 재능을 키워줄 새 선생님을 찾고 있었다. 웬디 호프먼이라는 이에게 오디션을 받고 싶다는 편지를 보낸 뒤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애써 찾아갔건만 집을 지키고 있던 이는 그의 부인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노래를 청해들은 그는 벌떡 일어나 진심어린 박수를 보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반주자 얼바이였다. 얼바이는 파바로티의 매니저 이자벨 울프에게 임군을 소개했다. 울프도 거짓말 같은 찬사를 보냈다. “16살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목소리와 깊은 호소력를 지녔다.” 버클리 음대 학장 빌 셰어만은 아예 ‘후원자’로 나서길 희망했다. “단순한 클래식 가수가 아니라 일반 대중을 감동시킬 수 있는 팝페라 가수로서의 재능이 뛰어나다. 목소리와 외모를 보면 미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대중들에게 호소력이 충분할 것이다. 형주군의 미국 내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싶다.”

투명한 목소리로 대중에 다가서

희한하게도 스타 탄생의 예고편은 이렇게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고는 한다. 불과 17살의 나이에 기대와 찬사를 한몸에 받은 임형주군은 이들의 격려에 힘입어 전통의 성악가보다는 클래식 발성법으로 팝을 부르는 팝페라(팝+오페라) 가수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 첫걸음이 1월16일 발매되는 데뷔 앨범 <샐리 가든>이다. 미국에서는 버클리 음대 학장 빌 셰어만의 프로듀싱으로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어 6월께 발매할 계획이다.


팝페라 가수로 세계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안드레아 보첼리의 디렉터 토니 루소는 임군의 목소리를 ‘투명함’으로 특징지었다. 조심스레 고음으로 올라가는 <아베 마리아>를 듣다 보면 여기에 하나를 추가하고 싶어진다. 기교 없는 정직함이다. 이제 막 줄리어드 음대 예비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그의 이력으로는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성악적 기교를 구사할 수도 있었으나 그건 나만의 욕심을 충족하는 것 같아 피했어요. 잔재주 없이 우러나오는 대로 불러야 대중의 마음도 와닿지 않겠어요.”

팝페라의 느낌을 강하게 던져주는 건 앨범 제목으로 따와 타이틀곡이 된 <더 샐리 가든즈>다. 여기선 굵은 목소리에 실린 기교가 느껴진다. 가사가 너무 좋아 앨범에서 가장 아끼는 곡이 됐으니 절로 힘이 들어갔을 법하다. ‘인생은 쉬운 거야, 사랑은 쉬운 거야’라던 소녀의 충고를 따르지 않아 가슴 깊이 회한을 남긴 이의 회상이 담겨 있는 노래다. 이 밖에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삽입곡 <투나잇>, 비틀스 곡인 <히어 데어 앤드 에브리웨어>,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에 실린 <오버 더 레인보우> 등을 담았다.

클래식은 정통으로, 팝은 팝답게

“이미자, 이소라, 이은미…. 어라 말하고 보니 다 여자분들이네요. 그런데 전 트로트든 뭐든 자기의 음악세계가 확고하면 그의 팬이 돼요.” 임군은 팝페라를 선택한 성악가답게 대중과의 호흡을 신조로 삼은 듯했다. 어려움이 있다면, 국내에 아직 팝페라가 대중화한 장르가 아닌데다 ‘정통’ 성악계가 팝페라를 배척시하는 분위기다.

“팝페라에 관한 한 우리는 황무지나 다름없어요. 저를 개인 지도해주시던 성악 교수님도 ‘팝페라를 하기로 했어요’ 했더니 ‘안타깝다, 왜 그걸 하니’ 하는 반응부터 보이시더라고요.”

팝페라를 상업주의와의 타협으로 보는 의구심보다 근거 없는 우월주의로 대중과의 호흡을 무시하려는 게 더 문제 아니냐는 임군의 태도에는 당당한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2월 중 국내 공연을 계획하고 있으며, 2집에서는 클래식은 더욱 정통의 방식으로, 팝은 정말 팝답게 불러볼 생각이라고 한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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