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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명계남] “나같은 ‘또라이’도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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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1-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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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시키는 대로 사는 남자 명계남, 앞으로도 옳다고 생각하면 닥치는 대로 하겠다는데 누가 말려?

내가 ‘social’한 신문기사 안에서 처음 그의 이름을 발견한 건 그가 몸뚱어리만한 피켓을 들고 조선일보사 앞에서 안티조선운동 1인시위를 했다는 기사였다. 사실 그 전까지는 그에게서 ‘social’한 모습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저 무지 머리가 좋고 센스 있고 재주 많은 사람이구나. 그리고 참 좋은 점은 권위의식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참 자유로운 사람이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는 항상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라”를 외쳤고 정말 하고 싶어 미치겠거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게 생기면 앞뒤 안 재고 ‘가슴이 시키는 대로’ 저지르고 다녔다. 때문에 기사를 본 나는 “음… 이 양반의 ‘가슴’이 이번엔 언론권력과 맞장 뜨라고 시켰나 보군” 하고 흐뭇해했다.

명계남·문성근 너무 설친다


사진/ 박승화 기자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친구’가 많은 만큼 ‘적’도 많다는 것인데,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더니 결정적으로 이번 대선기간 동안 그는 문화예술계쪽으로부터 참 많은 욕()을 얻어먹었다. 그들의 하나같은 소린 “명계남, 문성근 너무 설친다”였다. 난 솔직히 그 말에 동의할 수도 없었고 이해도 가지 않았다. 이번에 노무현씨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설친’ 사람들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다. 명계남과 문성근은 그 중 하나일 뿐인데 다만 ‘딴따라’기 때문에 사람들 눈에 더 자주 비쳤을 뿐인 것을…. 그리고 그들이 ‘설치’는 건 다 나중에 정치하려는 속셈이라는 거다(근데 참 이상하다. 정치를 하는 게 왜 나쁘지 여태까지 문화예술인 중에 정치판으로 가서 잘한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잘하면 될 거 아냐 그건 곧 ‘정치’가 ‘정치’로 보이지 않고 ‘권력’으로 보이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국민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다 정치인들 잘못이다).

한데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났다. 노무현씨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나는 너무 어이없게도 축하전화를 연거푸 받았다. 물론 나 역시 기쁘긴 하지만 웬 축하 대답이 걸작이었다. “너 명계남하고 친하잖아.” 참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혹시 그들 중 몇몇은 그를 질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명계남이 어떤 제스처를 써도, 그 사람이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악쓰고 다닌다고는 절대 생각지 않고 그건 정치판에 기웃거려서 떡고물을 얻어먹거나 ‘한자리’ 차지하려는 것처럼 보였고, 그렇게 될 걸 생각하니 질투가 났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들이 모르는 게 있다. 노사모나 대학생들 사이에선 자기 일 다 내팽개치고 “선거에 참여한다는 건 어느 누구를 밀어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10년 15년 뒤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라고 200번이 넘게 목 터져라 외친 그를 영웅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다음 많이 들은 말은 그가 많이 “변했다”는 거였다. 나도 이 부분에선 직접 보지 않고는 뭐라 말할 수 없어서 인터뷰를 부담스러워하는 그를 졸라 여의도에서 잠깐 얼굴을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변하긴 변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레 얘기한 ‘완장’으로 변해 있는 게 아니라 ‘순진한 투사’로 변해 있었다. 이 양반이 언제 이렇게 “가열차졌나” 놀랄 정도로. 그리고 몸이 많이 변해 있었다. 오래 못 본 새에 많이 늙어 있었고, 하도 무리를 해서 심한 몸살과 함께 이와 잇몸이 다 내려앉아 점심 식사를 죽으로 해야 했을 정도로 몸이 안 좋다고 했다. ‘완장’으로 변해 있으면 어쩌나 했던 내 기우는 보기 좋게 무너졌고 대신 그가 참 측은해 보였다. 벌써부터 사람들이 ‘청탁’ 전화를 하도 해와서 전화번호를 바꿨다기에 나도 당신과 친해서 ‘떡고물’이 떨어질 거라 생각했는지 사람들이 ‘축하’한다 그러더라 하고 둘이 낄낄대고 웃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아직 덜 성숙한 거란 생각에 웃음 끝은 떨떠름했다(‘패가망신’시킨다잖아!).

“전국 500만 영화 두고 봐!”

사진/ 오지혜(오른쪽)씨와 명계남씨는 오랜 지기다. 덕분에 명계남씨가 민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자 오지혜씨도 덩달아 축하 전화를 받았다는데…(박승화 기자)
될 수 있음 ‘soft’한 얘기만 하고 싶어하는 그에게 대뜸 물었다. 대선 끝난 지금 심경은 “당연히 될 거라 믿었기에 담담했다. 오히려 그 다음날 노무현이 살아온 여정을 보여준 TV 다큐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영화는 언제 다시 시작할 거냐 물었더니 이 대목에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대표가 전국을 내 집 삼아 돌아다니는 동안 회사는 거의 망하기 일보 직전이 됐다는 거다. 경리도 도망()가고 돈도 다 떨어져 이제부턴 다시 닥치는 대로 일해야 한다며 큰일이라고 걱정한다. ‘닥치는 대로’ 일하는 건 당신 전공분야니까 다시 시작하면 잘되리라 믿는다고 얘기해주려는데 그가 주먹까지 불끈 쥐며 말한다. “3년 안에 꼭 전국 500만 하는 영화 만들 테니 두고 봐.” 이럴 땐 두고 보잔 사람이 무서워진다.

그리고 인터뷰를 위해 만나긴 했지만 그를 좋아하는 후배로서 하기 힘든 충고를 했다. “성근이 아저씨나 계남이 아저씨가 ‘설치긴’ 마찬가진데 계남 아저씨만 특히 욕먹는 건 우아하고 우아하지 않고의 차이가 아닐까 솔직한 건 좋은데 앞으론 말조심을 좀 하셨음 좋겠다.” 그의 대답을 듣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세상에 문성근이처럼 ‘논리맨’이 있으면 나 같은 ‘또라이’도 있어야 재미있지. 다 문성근이 같으면 그거 재미없잖아” 그리고 자신은 앞으로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닥치는 대로 할 거란다. 누가 말려

대선 다음날인 20일 오후. 약속 확인사살을 위해 다시 전화를 했을 때 놀랍게도 그는 어느 촬영장에서 전화를 받았다. 좀 쉬었다 하지 그러냐 했더니 그는 여태까지 자기 하나 때문에 여러 사람 스케줄이 밀렸던 거라 어쩔 수 없었다고 쉰 목소리로 말한다. 그가 가는 촬영장 대부분이 별로 돈도 안 되는, 젊은 사람들의 단편영화 같은 거다. 그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으면 죽는 줄 아는 게 틀림없다. 뭐라고 잔소릴 할라치면 ‘가슴’이 시켰다 하고 씩 웃는 그가 나로선 아무리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완장’으로 보이지 않았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난 집으로 그는 회사로 가는 길에 내가 “마지막 질문 하나!”를 외치고 오지혜를 주연으로 쓸 생각이 있나를 물었다. 얼굴이 금방 하회탈처럼 구겨지며 또 낄낄대면서 하는 말, “난 언제나 오케이야. 널 주연으로 쓰겠다는 감독만 찾아와.” 오케바리. 일단 제작잔 하나 나섰고, 감독만 찾으면 된다 이거지 횡단보도를 건너다 무심히 뒤를 돌아보았다. 총총걸음으로 제 갈 길을 가는 그의 늙은 뒷모습이 측은하지만 든든해 보였다.

오지혜ㅣ영화배우

연재를 시작하며

<한겨레21> 독자 여러분과의 만남이 즐겁습니다. 저도 <한겨레21> 팬이거든요. 여러분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딴따라들을 만나서 그들의 깊은 속내와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제가 느낀 그대로 정직하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필자 이력

68년 서울서 남.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여자의 아침> 등 9편의 연극과 <태백산맥> <초록물고기> <8월의 크리스마스>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 6편의 영화에 출연.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부산영평상·청룡영화제·MBC영화제 여우조연상 수상. 현재 한국방송 일일드라마 <당신옆이 좋아>에 출연 중이며 교통방송 <오지혜의 여행스케치>(토·일 14:00~16:00)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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