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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갈비도 세상도 평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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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1-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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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갈비집’에서 평등을 떠올리는 이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서서 먹는 쫄깃한 갈비맛

1980년 5월17일 밤, 신혼의 단꿈에 잠들어 있던 나는 느닷없이 권총을 빼들고 들이닥친 전두환 계엄사령부 요원들에 의해 영문도 모르고 끌려갔다. 그날 밤은 강남경찰서 유치장에서 아무 조사도 없이 하룻밤을 보냈는데,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도 나는 지난 재야시절의 반유신 투쟁이나 최근의 공개적인 계엄철폐 시위에 대해 조사나 하고 곧 보내주겠지, 쉽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튿날 오후 지금의 경찰청 자리에 있는 옛 전매청 건물 합동수사본부에 인계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합수부 5반에 들어서자마자 수사관들과 당시 합수부에 파견되어 있던 청와대 33헌병대 군인들은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하고 다짜고짜 무수히 구타하였다.

이렇게 매일매일 구타와 고문, 그리고 나의 ‘여죄’를 쥐어짜가며 며칠을 보냈다. 어느 날 ‘정’이라는 수사관이 우리집에 가 압수수색을 하였다며 ‘불온한’ 책 몇권을 가지고 왔다. 그들이 압수해온 책 중에는 존 로크의 <시민정부론>, 막스 베버의 <사회과학방법론>,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이 있었다.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나를 얽어넣으려 했던 합수부 수사관들은 은연중 <시민정부론>에서 내란음모의 체계적 근거를, <사회과학방법론>에서 사회주의의 이념을,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사회에 대한 불편함과 불온성을 연결해보려고 했던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코미디와 같은 일이지만, 1980년 ‘광기의 국가폭력시대’에 계몽주의 사상가 존 로크, 자본주의의 윤리를 갈파한 막스 베버, 자유주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저작들을 정권욕에 광분한 군인들에게 차분하게 설명하려 한들 돌아오는 것은 매타작뿐이었다.

볼테르가 루소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류에게 트집을 건 당신의 새로운 저술”이라고 한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루소는, 당시 유럽의 절대군주 치하에서 시달리던 인민의 참상에 대한 의문을 토로하고,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의 자연적·신체적 불평등을 자연법주의로 포장, 용인, 지속시키려는 시대 조류에 맞서 인류 역사와 문화 형성의 잠재력으로서 인간의 사회화, 진취성, 이성의 발달을 들어 ‘인간평등’의 사상을 피력하였다.

인간의 평등은 법적 평등과 조건의 평등으로 나눌 수 있다. 법적 평등은 시민적·정치적 평등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곧 법 앞에서의 평등과 인간 사이의 자연적 평등 관념에 기초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특권과 대립되는 개념이다. 그리고 조건의 평등은 사회적 평등이라 할 수 있는데, 사회적 욕구의 증대에 따르는 권리상의 평등 개념이 아니라, 생존의 수단과 조건이 평등해야 함을 설파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사회의 평등을 형식적이고 환상적인 개념으로 간주했다. 개인은 여러 가지 점에서 같은 점이 없기 때문에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공통의 본성과 존엄성은 ‘평등’하게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차이’와 ‘평등’은 화해가 가능하지만 ‘특권’은 ‘평등’과 대립한다.


신촌로터리에서 서강대교 가는 길, 기차 굴다리 근처에 ‘서서갈비집’(주인 이대현)이 있다. 이 부근에서만 50여년 동안 계속 영업해온 곳으로, 서울 시내 술꾼 중 아는 사람은 다 알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소개할 필요가 없는 집이다. 나는 이 집에 올 때마다 ‘평등’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첫째, 이 집은 상호 그대로 모든 사람이 ‘서서’ 먹어야 한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돈 있는 사람, 가난한 사람, 심지어 주인도 의자가 없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서서 먹어야 한다. 둘째, 품질의 ‘평등’이다. 질의 상중하도 없고, 양의 상중하도 없다. 그냥 1인분에 7천원인 갈비를 자기 양대로 시키면 된다. 반찬도 누구에게나 마늘·풋고추·고추장·양념장뿐이다.셋째, 반칙 곧 힘있는 자들의 ‘특권’이 허용되지 않는다. 손님이 밀릴 때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밖에서 차례대로 기다려야 하며, 운이 좋아야 드럼통 하나에 다른 팀과 함께 ‘서서’(합석이 아니니)먹어야 한다.

웬만큼 갈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2인분이면 족한데, 특히 이 집의 양념장 맛이 특이하다. 고깃점을 양념장에 담가 먹어도 맛있고, 양념장을 그냥 한 모금씩 마셔도 개운하다. 이 집 역시 <한겨레21> 428호에 실린 마포 최대포집의 ‘행동수칙’ 비슷하게 행동해야 한다. ‘서서갈비’에는 의자가 없으니 최대포집보다 더 빠듯하다. 그리하여 비록 소주잔 기울이며 여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만, 이 집에 오면 ‘평등’과 ‘특권’을 한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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