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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돌리는 술잔을 거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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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1-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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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리기

일러스트레이션/ 방기황
간은 생기(生氣)의 장기다. 몸에 해로운 독소들을 제거해 생기를 왕성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로도 간을 리버(liver)라고 한다. “생명의 힘을 북돋아주는 자”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간의 기능이 정상이면 기운이 나고, 간에 이상이 생기면 피곤부터 느낀다. 몸에 흡수된 술은 간에서 분해돼 해독된다. 과음을 하면 간세포들도 과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간세포가 피로를 회복하는 데는 최소한 이틀이 걸린다. 만일 연거푸 과음을 하면, 지칠 대로 지친 간세포는 지방질이 끼어 이른바 ‘지방간’이 되고, 지방간이 오래되면 간이 딱딱해지는 ‘간경변증’이 된다. 이 상태가 오래 가면 간암이 생길 수 있다.

우리나라는 술의 소비량만으로 따지면 ‘월드컵 4강’ 수준이다. 그러나 ‘먹이는 술’의 양은 단연 세계 챔피언급이다. 바로 이 먹이는 술이 건강을 해치는 결정적 구실을 한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간세포에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더욱 몸에 해롭다.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술잔을 주고받거나, 술잔을 돌리는 것이 한국 고유의 전통문화처럼 되어 있다. 술잔을 통해 정을 주고받으며 술좌석의 흥취를 한층 더해준다는 의미의 ‘돌리는 술잔’이 문제다. 무엇보다 비위생적이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병균이 이 사람 입에서 저 사람 입으로 옮겨다닐 수 있다. 결핵이나 간염(A형) 등이 전염될 수 있다. 근래에 전 세계가 두려워하고 있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은 입으로는 전염이 잘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에이즈 환자나 보균자의 침을 빠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세계 결핵의 날에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결핵 환자는 대략 43만명 정도다. 그 비율이 다른 선진국의 10배 이상이나 된다. 해마다 결핵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수도 3700여명에 이른다. 사망 원인별 순위에서도 10위에 속한다. 더구나 새로 결핵에 걸리는 신규 환자 중 약 70%가 20대와 30대 젊은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결핵은 결정적으로 전염될 수 있다. 환자 자신이 스스로가 환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지날 수도 있다. 술잔 돌리는 문화는 개선돼야 한다. 좋은 술이란 값비싸고 향기 좋은 술이 아니다. 알맞은 양의 술을 기분 좋게 마실 때 좋은 술이 될 수 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빨던 술잔이 아니라 자기 술잔에 받아 마시는 술이 좋은 술이다. ‘무엇’을 마시느냐가 좋은 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마시느냐가 좋은 술을 만든다.

전세일 ㅣ 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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