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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섹스말고 궁금한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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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2-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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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즉시공>과 <마들렌>의 건강한 청춘… 죄의식 없이 성숙한 남녀관계 다뤄

지난해 화제작 가운데 하나인 <고양이를 부탁해>의 포스터 카피는 ‘스무살, 섹스말고도 궁금한 건 많다’였다. 지난 봄 개봉한 청춘영화 <후아유>에서도 섹스는 거론의 대상조차 못 됐다. 그런데 갑자기 ‘스무살, 섹스말고 궁금한 건 없다’가 돼버렸다. 임창정·하지원 주연의 <색즉시공>에는 포르노와 정액이 들끓는다. 조인성·신민아 주연의 <마들렌>(1월10일 개봉 예정)은 예쁜 청춘 로맨스지만 섹스를 피해가지 않는다. 두 영화 공히 20대 초반의 남녀가 거치는 필연적 과정처럼 섹스를 등장시킨다. 성은 부끄럽거나 감출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교과서 같은 주장을 이처럼 확실히 보여주는 청춘영화는 이제껏 없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예기치 못한 임신과 낙태가 이어진다는 점이다.

두려움 없는 성… 임신·낙태 이어져

미스터리 공포물 <폰>과 미스터리 스릴러 (12월27일 개봉)의 모티브도 임신과 낙태다. 흥미로운 건 임신과 낙태를 둘러싸고 공포장르와 청춘영화가 정반대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폰>과 에서 그리는 낙태는 도덕적 타락에서 출발한 무책임한 도피다. 자연스레 낙태는 만악의 근원이 돼버린다. 연쇄살인의 그럴듯한 동기를 마련해주기에 이처럼 손쉬운 게 있을까. 생명으로 ‘장난친’ 이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응전은 끝내 파탄을 맞이하지만, 이런 섬뜩한 구도는 낙태에 대해 깊은 죄의식을 불어넣기에 알맞아 보인다.


<색즉시공>과 <마들렌>의 청춘들에게선 어딘가 꼬인 죄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색즉시공>에서 복학생 은식(임창정)은 어눌하고 순진하다. 교내 에어로빅 서클의 실력자 은효(하지원)를 좋아하지만, 은효는 매끈하고 매너 좋은 상욱(정민)의 유혹에 빠져든다. 은효와 상욱은 기숙사 빈방을 이용해 주저 없이 관계를 갖더니 은효가 덜컥 임신해버린다. 애초 다른 애인이 있는 상욱은 은효를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그 빈자리를 은식이 파고든다. 이런 식 이야기는 상투적이다. 한 단계 나아가는 건 그 다음이다. 은효는 섹스에 대해 그랬듯 주저 없이 낙태를 선택한다. 문제는 보호자다. 데이트 약속으로 들떠서 나간 은식은 은효의 보호자가 돼 병원을 찾는다. 은식은 미역국을 끓여주고, 그동안 닦은 차력쇼를 벌이며 힘들게 수술을 마친 은효를 위로한다. 쾌속질주하는 질펀한 이야기 속에 섹스와 낙태에 대한 죄의식은 머무를 틈이 없다. 그래도 끝맺음은 깨달음을 뜻하는 제목으로 마무리한다. 잘 헤쳐나오긴 했으나 힘든 사건을 통해 은식과 은효는 사랑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 책임이 따르는 무엇이라고 깨닫는다. <마들렌>의 희진(신민아)도 덜컥 엉뚱한 남자의 아이를 갖는다. 희진은 자기 욕망에 늘 솔직하고 당당하다. 중학교 동창 지석(조인성)을 만나 한달간의 계약연애를 제안하고, 지석에게 “우리 집으로 가지 않을래”라고 이끈 뒤, “너, 섹스는 해봤니”라고 태연히 묻는다. 희진의 맘은 이처럼 지석에게 가 있는데 갑자기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지석이 아닌 얼마 전 헤어진 남자친구가 아버지다. 희진은 지석에게 문자 메시지를 날린다. “나, 임신했어.” 지석은 놀라지만 주저하지 않는다. “내가 병원에 함께 가줄게.”

<색즉시공>과 <마들렌>에서 연인들이 성을 대하는 태도는 우여곡절을 겪긴 하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청춘영화의 몸이 갑자기 성숙해진 걸까, 카메라가 성숙해진 현실 속의 청춘들을 애써 외면해온 것일까. 어느 쪽이든 건강한 청춘을 바라보는 건 유쾌한 일이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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