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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일본만화에 지친 당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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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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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칼…> 등 작품성으로 무장한 프랑스 만화 4종 첫 선… 느리고 깊은 만화의 맛을 느껴보라

(사진/<잉칼:존 디풀의 모험>의 주인공 존 디풀)
적어도 우리나라는 만화라는 장르에서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강국이다. 아시아권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일본 만화의 강풍에 맞서 꿋꿋이 자국 시장을 지키고 있고, 연간 수천종의 만화를 출간하면서 일부는 수출까지 하고 있다. ‘만화왕국’이란 호칭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본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일본 만화에 자국시장이 초토화됐던 대만 등에 비교해보면 우리 만화는 결코 만만치 않은 저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예술장르

그러나 관점을 달리보면 어떨까. 한 나라 만화의 우수성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만화 캐릭터가 있느냐는 점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만화강국과는 거리가 멀다. 세계화된 유명 캐릭터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른바 ‘영웅’들이 미국 만화를 대표한다. 슈퍼맨, 배트맨을 비롯해 원더우먼과 최근의 엑스맨까지 다른 나라와는 달리 초능력을 지닌 영웅만화들이 미국 만화의 전도사들로 세계를 누빈다. 반면 일본은 왕성한 만화수출로 다양한 일본 대표 캐릭터들을 지니고 있다. 드래곤볼의 주인공 손오공을 비롯해 가장 최근의 포켓몬스터의 피카츄, 우주소년 아톰, 세일러문 등등. 우리가 전혀 만화의 나라로 떠올리지 못하는 벨기에도 이런 점에서는 엄청난 만화강국이다. 전세계 어린이들 열광시키는 스머프와 땡땡을 배출했다.


그렇다면 유럽의 문화강국 프랑스 만화는? 역시 전세계 수십개국에서 출판된 ‘아스테릭스’라는 걸출한 대표 캐릭터를 지니고 있다. 세계만화계에서 영향력도 상당하다. 프랑스에서는 만화가 대중예술인 동시에 예술장르로도 인정받아왔다. 수십만, 수백만권씩 팔리는 작품이 아니라도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을 정도인 높은 수준의 만화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아스테릭스를 탄생시킨 우데르조 이후 프랑스 만화를 대표하는 인물은 바로 이런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를 잘 유지하며 유럽만화계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고 있는 뫼비우스다.

뫼비우스로 대표되는 프랑스 만화의 특징은 한마디로 미국과 일본, 한국의 대중적 만화와는 다른 작품성 위주의 만화라는 점이다. 일본과 우리 만화가 대량생산되는 1회 소비성 만화들이 주류를 이루는 데 비해 프랑스는 1년에 한두권의 책을 낼 정도로 과작을 하는 작가들이 많다. 또한 이들의 만화는 소장용으로 더 많이 팔릴 정도로 만화팬들에게 광적인 지지를 얻는 경향이 강하다. 내용 역시 활극이나 우스운 명랑물보다는 인문적이고 몽환적인 주제를 다루는 판타지물들이 많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프랑스 만화가 제대로 소개된 적은 없다. <아스테릭스>를 제외하면 뫼비우스를 비롯한 요즘 인기있는 프랑스 작가들의 만화는 단 한편도 들어오지 못했다. 컬러 인쇄를 해야 하는데다 일본 만화와 거의 비슷한 형식의 우리 만화에 익숙해져 있는 만화독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 때문에 출판사들이 유럽만화의 출판을 꺼려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가을에 이 뫼비우스의 대표작을 비롯해 프랑스 만화 4종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 모두 화려한 색과 정교한 그림으로 무장한 프랑스의 대표급 만화들로, 과연 우리 만화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을지 주목된다. 빠른 전개와 감각적인 묘사가 특징인 한국과 일본 만화에 익숙한 우리 만화팬들에게는 말풍선 속 대화를 꼼꼼히 읽어야 하고 장면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는 느린 템포의 프랑스 만화가 어색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만화의 다른 측면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유럽만화의 최고스타 뫼비우스를 만나다

교보문고가 펴낸 작품 가운데 특히 뫼비우스의 <잉칼:존 디풀의 모험>(전 2권, 각권 1만2천원)은 80년대 뫼비우스의 대표작. 뫼비우스의 만화적 상상력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서사적 모험물로 시기를 알 수 없는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보잘것없는 탐정이자 시정잡배에 가까운 주인공 존 디풀이 어느날 갑자기 잉칼이란 신비한 힘을 만나 얻게 된 능력으로 우주를 구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잉칼:존 디풀의…>는 특히 <산타 상그레>(성스러운 피), <홀리 마운틴> 등으로 컬트적 반응을 얻었던 유명 영화감독이자 소설가인 조도로프스키가 글을 썼다. 만화뿐만이 아니라 디자인과 기획까지 하는 종합예술인으로 유명한 뫼비우스와 역시 그 못지않게 소설가, 만화작가, 영화감독 등의 다양한 예술활동을 펼치는 조도로프스키의 만남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화제가 됐던 작품으로 프랑스에서는 100만부가량 팔렸다.

교보문고가 함께 낸 부크의 <제롬 무슈로의 모험>(1만2천원) 역시 프랑스가 자랑하는 세계적 만화페스티벌인 지난 98년 앙굴렘 만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작품으로 작가 특유의 정교하면서도 완벽에 가까운 데생으로 상상의 이미지를 극대화해 그림 보는 맛을 강조한다.

이 두 작가의 작품과 함께 소개된 프랑스 만화 <피터팬>(레지스 르와젤 지음·비앤비 펴냄·1만2천원)과 <쌍브르>(이슬레르 지음·비앤비 펴냄·1만2천원)도 일본, 미국 만화와는 다른 프랑스적 느낌을 물씬 풍기는 만화들. <피터팬>은 우리가 친숙한 원전 <피터팬>과 등장인물과 배경은 같지만 마치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빈민가에서 어렵게 살아가던 주인공 피터가 요정 팅커벨과 만나면서 환상의 모험을 펼치는 이야기로 각색됐다. 반면 <쌍브르>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색감과 그림체로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갈등을 묘사한다. 다른 프랑스 만화들과는 또 다르면서도 프랑스 만화 고유의 특징인 철학적인 느낌과 화려한 그림체를 그대로 담고 있다.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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