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스’에서 맛본 아르헨티나 갈비구이 아사도… 피폐한 국가의 황금시대를 떠올리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읽은 <엄마 찾아 삼만리>란 동화가 생각난다. 마르코란 이탈리아 소년이 아르헨티나로 식모살이 하러 간 엄마를 찾아 혼자 몸으로 길을 떠나 여행길에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성장하고, 고난과 절망을 뛰어넘은 여정 끝에 결국 엄마를 다시 만나 그 품에 안긴다는 줄거리다. 어린 나이에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몇년 만에 엄마와 만나는 마르코의 해피엔딩에 감동받아 이 동화를 여러 번 읽은 기억이 난다. 그때의 감동 한편으로는 이탈리아가 유럽 어디쯤의 잘사는 나라인데, 그 나라 국민이 식모살이 하러 간 아르헨티나라는 나라는 얼마나 더 잘사는 곳일까 무척 궁금해했다.
사실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반에서 중반까지 남미 최고의 잘사는 나라, 나아가 미국과 어깨를 견줄 만한 세계 5대 부국에 꼽혔다. 넓디 넓은 땅에서 경작한 곡물과 초원에서 키운 가축을 제1차 대전으로 황폐화한 유럽에 싣고만 가면 엄청난 돈이 쏟아져들어왔기 때문에 그 부를 주체할 수 없었다.
“내가 멀리 갔다고 슬퍼하지 마라. 네가 있음으로 내가 있다. 내 모든 사랑과 슬픔은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는 작은 목표를 이루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레콜레타 공동묘지에 있는 에바 페론, 곧 에비타의 묘비에 새겨진 유언이다. 1946년 야심만만한 군인 후안 페론과 결혼한 뒤 퍼스트 레이디가 된 에비타를 가난한 사람들은 성녀라고 했고, 부유한 사람들은 정치적 목적으로 빈민을 이용한 악녀로 여긴다.
페론과 에비타는 쏟아져들어오는 돈을 노동자와 빈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뿌리는 데 열중했다. 이로써 페론 부부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는” 작은 목표를 이루었는지 모르지만, 국가의 부를 미래를 위해 투자하지 않아 아르헨티나가 산업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완전히 소진시켜버렸으니, 오늘날 3600만 아르헨티나 국민 가운데 1천만명 이상이 ‘거지를 닮아가는’ 현실의 근원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1989~99년에 집권한 메넴 대통령은 이러한 근원을 이어받아 아르헨티나를 극도로 피폐화시켰다. 노동시장의 유연화, 국영기업 해외매각 등 어설픈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메넴의 정책은 국영항공, 국영통신업체, 은행, TV채널, 라디오방송, 일정구간의 도로, 석유채굴권을 외국에 팔아넘기는 것도 모자라 주민등록증 발급사업, 심지어 국세청의 업무까지 외국기업에 매각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는 외채 1400억달러라는 참담한 현실을 낳았다. 국민총생산이 1200억달러임에도 국영기업을 판 돈 1600억달러를 고스란히 1천명의 부자들이 외국으로 빼돌렸다.
현재 아르헨티나는 인구의 절반이 빈곤층이다. 하루에 평균 50여명의 어린이들이 영양실조로 죽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아르헨티나 전역에는 인구의 3배나 되는 1억여 마리의 소들이 초원을 누비고 있다. 대규모 목장은 자기들 소가 정확히 몇 마리인지 모른다. 대개 3~5년에 한번 항공촬영을 해서 샘플 지역의 소를 센 뒤 목장 면적과 비례해 어림짐작할 뿐이다. 이렇다 보니 아르헨티나에서는 한편의 굶주림 속에서도 쇠고기 소비촉진에 열을 올린다.
쇠고기를 물리지 않고 많이 먹게 하기 위해 개발한 음식이 아사도인데, 지하철 4호선 성신여자대학교 부근에 있는 아르헨티나 음식점 ‘조리스’(02ㅡ928ㅡ1838)는 아르헨티나의 전통 갈비구이 아사도와 우리나라의 순대와 비슷한 조리스로 유명하다. 주인 허민씨는 사업차 아르헨티나를 드나들다 아사도와 조리스 맛에 반해 사업을 정리하고 아예 아르헨티나 음식점 주인으로 변신했다. 어긋어긋 썬 갈비를 굵은 소금으로 간을 해서 1~2시간 기름을 쭉 빠지게 구워 허씨가 직접 개발한 청양고추 소스에 찍어먹는 아사도 맛은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사진/ 아사도는 쇠고기의 나라 아르헨티나 국민이 쇠고기를 물리지 않고 먹기 위해 개발한 음식이다.
1989~99년에 집권한 메넴 대통령은 이러한 근원을 이어받아 아르헨티나를 극도로 피폐화시켰다. 노동시장의 유연화, 국영기업 해외매각 등 어설픈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메넴의 정책은 국영항공, 국영통신업체, 은행, TV채널, 라디오방송, 일정구간의 도로, 석유채굴권을 외국에 팔아넘기는 것도 모자라 주민등록증 발급사업, 심지어 국세청의 업무까지 외국기업에 매각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는 외채 1400억달러라는 참담한 현실을 낳았다. 국민총생산이 1200억달러임에도 국영기업을 판 돈 1600억달러를 고스란히 1천명의 부자들이 외국으로 빼돌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