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소비에트 ‘전성기’는 역사 속으로… 동독의 힘도 통일 이후 빛 잃어
지난 세기의 스포츠 패자 옛 소련. 그들은 새 천년 첫 시드니올림픽을 서러움 속에 보냈다.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이제 늙고 병든 몸이 된 불곰.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여기저기서 금메달을 주워 모아 3강의 대열에는 들었지만 지난날 강자의 모습은 결코 찾아볼 수 없었다.
러시아 3대 거인의 슬픈 종지부
불과 12년 전인 88서울올림픽. 그 올림픽이 소련이라는 국명으로는 마지막이 될지 미처 몰랐지만 그들은 강했다. 서울올림픽에 걸린 전체 금메달의 20%가 넘는 55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132개의 메달을 쓸어모았다. 올림픽 종목 절반 이상에서 메달을 딴 것이다. 동독과 미국이 2, 3위를 했지만 금메달 숫자에서 18개 이상 차이가 났다. 1위를 정해놓고 하는 지극히 불평등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거대한 소비에트연합의 붕괴와 함께 그들은 힘을 잃어갔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선 2위 자리마저 놓쳤다.
국가연합으로 나선 92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미국을 따돌렸던(금메달 수 45-37) 그들은 러시아 단일국으로 나온 96애틀랜타올림픽에서 마침내 맹주 자리를 내주었다. 금메달 수 26-44로 추월하기 힘든 상황을 연출했다. 머리카락 잘린 삼손처럼 힘을 잃은 러시아. 미국과 맞싸움은 힘들겠지만 그동안의 세력을 감안할 때 시드니에서도 2위 수성은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스포츠 러시아’는 지는 해처럼 순식간에 주저앉고 말았다. 중국의 ‘황색열풍’이 워낙 거센 탓도 있지만 그들 스스로가 강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러시아 스포츠의 쇠퇴. 그것은 그들이 영웅으로 내세웠던 3대 거인의 슬픈 종지부와 맥을 같이한다. 그레코로만형 130kg급의 ‘지지않는 태양’ 카렐린, 수영 50m, 100m의 신화 알렉산드로 포포프, 장대높이뛰기의 ‘인간새’ 세르게이 부브카는 옛 소련을 대표하는 살아 있는 스포츠 전설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시드니에서 패배라는 단어를 배웠다. 거구의 카렐린은 스포츠 러시아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88서울올림픽부터 무패가도를 달린 그는 레슬링을 통해 장군이 되고 시의원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30kg의 덩치를 번쩍 안아 뒤로 넘기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강한 소련의 힘이 느껴졌다. 카렐린은 서울올림픽, 바르셀로나올림픽, 애틀랜타올림픽에 이어 시드니올림픽까지 석권해 사상 유례없는 올림픽 4연패를 바라보았으나 미국의 21살 무명에게 무릎을 꿇었다. 옛 소련 스포츠의 대표주자로 지난 올림픽부터 우크라이나 대표로 나선 부브카 역시 몰락했다. 35차례 세계신기록, 세계선수권 6연속 우승 등 지난 20년간 장대높이뛰기의 역사를 혼자서 써온 부브카는 메달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으로 570㎝에 도전했다가 3차례 모두 실패해 예선탈락했다. 아킬레스건 부상 등으로 부진이 예상되긴 했지만 6년 전 이미 6m벽을 깬 그였기에 570㎝에서 버둥대는 모습은 무척이나 안쓰러웠다. 동독의 강력한 체육정책이 생활체육으로…
포포프는 올림픽 수영의 2관왕 2연패주자. 물 속에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92바르셀로나올림픽 자유형 50m와 100m를 석권한 후 96애틀랜타올림픽에서도 그 영광을 이었다. 시드니올림픽 개막전만 해도 그는 강자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장강의 앞물결은 뒷물결에 밀리는 법이고 그에 따라 질서도 재편되는 법. 포포프는 단 1개의 금메달도 따지 못한 채 헛물만 켜고 말았다.
영웅들은 허망하게 은퇴했고, 러시아 스포츠는 쓸쓸히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왜 그럴까. 과거의 스포츠는 끈기와 힘이 지배했다. 그러나 오늘날 스포츠 기조는 과학과 젊은 힘이다. 하지만 노쇠한 러시아는 아직도 과거의 스포츠를 하고 있다. 카렐린 등은 미국, 중국 같으면 대표로 뽑히지도 못할 정도의 노장이다. 이미 30살을 훨씬 넘어 선 그들이 변함없이 대표로 뽑혔다는 것은 새 물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다름이 아니다. 사람도 없는데다 스포츠에 대한 투자 역시 할 수 없는 처지이다보니 맹주 자리를 내주지 않을 수 없다.
시드니올림픽에서 러시아가 금메달을 딴 종목은 체조, 펜싱, 육상, 레슬링, 다이빙 등이다. 전통적으로 강했던 남자수영이나 카누 등에서 단 1개의 금도 건지지 못했으며 예전에 절반가량을 차지했던 레슬링 등에서도 몇개밖에 따지 못했다. 그래도 전통적인 종목은 몇개씩이나마 금메달 구경을 했으나 태권도, 싱크로나이즈 등 새로운 종목은 도전조차 하지 못했다. 새로운 물결을 따라갈 만한 여력이 없다는 증거로 2위 자리까지 내 준 러시아 스포츠는 아마도 긴 잠수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영원한 잠수일지도 모르겠다.
동독으로 대표되었던 독일의 스포츠도 완연한 내리막 길을 걸었다. 서울올림픽 때 미국을 금 한개 차로 젖히고 종합 2위를 차지했던 동독은 통일독일시대에도 강자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 독일로 처음 나선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금메달 33개로 3위를 했으며 애틀랜타올림픽에서도 3위를 지켰다. 비록 금메달 숫자가 20개로 줄었지만 통일의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에서 그들은 10위권에 겨우 턱걸이했다. 충격적인 결과였다. 중국이 강세를 보였다하더라도 평소 실력이라면 4위는 해야 했다. 하지만 독일은 주최국인 오스트레일리아나 프랑스, 이탈리아에도 밀리는 약세를 보였다.
금메달도 사이클, 조정, 승마 등에서 10여개를 땄을 뿐이다. 독일이 동독 시절의 강력한 스포츠정책을 채택하지 않고 사회체육이나 생활체육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인데 몰락은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싶다. 올림픽 메달을 위한 집단훈련을 하지 않고 즐기는 스포츠를 함으로써 집중력이 떨어진 것인데 기본적으로 스포츠를 키울 힘이 있으므로 다시 상승기류를 탈 수 있을 것이다.
중국 ‘황색돌풍’은 아시아 스포츠의 비전
분열과 통일의 상반된 길이지만 스포츠 분야에선 동반 몰락한 러시아와 독일. 중국이 신흥세력으로 떠올라 그들의 내리막세는 더욱 빨라졌다. 중국의 잠재력은 이미 예견된 것이지만 성장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 러시아나 독일과는 달리 집단훈련체제를 이어가고 있어 단기간의 자리바꿈이 가능했다. 84년 LA올림픽부터 출전한 중국은 서울올림픽에서 금 5개로 11를 한 뒤 바르셀로나올림픽과 애틀랜타올림픽에서 4위를 했다. 애틀랜타에서 메달 분포도를 늘리며 미국, 러시아, 독일의 3강체제를 위협했던 중국은 시드니에서 대약진, 세계 스포츠 판도를 뒤흔들었다.
중국은 탁구, 배드민턴, 역도, 다이빙, 체조 등 전략종목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며 2위로 치고 올랐지만 다른 종목에서도 고르게 선전,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로 떠올랐다. 중국은 4년 뒤 아테네올림픽에 미국과 격차를 더욱 줄일 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2008년 올림픽이 베이징에서 개최된다면 미국을 끌어내리고 종합 1위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국가의 스포츠 세계 제패. 스포츠도 세월처럼 흐르고 역사처럼 되풀이되는 것이니 마냥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듯하다. 해가 지지 않던 스포츠 강대국 소련 땅에도 해가 저물었으니.
이영만/ 경향신문 기자

(사진/올림픽 4연패 도전에 나선 '시베리아 불곰' 카렐린.미국의 가드너에게 어이없이 무너져 13년간 이룬 무패 기록에 마침표를 찍었다)
국가연합으로 나선 92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미국을 따돌렸던(금메달 수 45-37) 그들은 러시아 단일국으로 나온 96애틀랜타올림픽에서 마침내 맹주 자리를 내주었다. 금메달 수 26-44로 추월하기 힘든 상황을 연출했다. 머리카락 잘린 삼손처럼 힘을 잃은 러시아. 미국과 맞싸움은 힘들겠지만 그동안의 세력을 감안할 때 시드니에서도 2위 수성은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스포츠 러시아’는 지는 해처럼 순식간에 주저앉고 말았다. 중국의 ‘황색열풍’이 워낙 거센 탓도 있지만 그들 스스로가 강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러시아 스포츠의 쇠퇴. 그것은 그들이 영웅으로 내세웠던 3대 거인의 슬픈 종지부와 맥을 같이한다. 그레코로만형 130kg급의 ‘지지않는 태양’ 카렐린, 수영 50m, 100m의 신화 알렉산드로 포포프, 장대높이뛰기의 ‘인간새’ 세르게이 부브카는 옛 소련을 대표하는 살아 있는 스포츠 전설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시드니에서 패배라는 단어를 배웠다. 거구의 카렐린은 스포츠 러시아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88서울올림픽부터 무패가도를 달린 그는 레슬링을 통해 장군이 되고 시의원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30kg의 덩치를 번쩍 안아 뒤로 넘기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강한 소련의 힘이 느껴졌다. 카렐린은 서울올림픽, 바르셀로나올림픽, 애틀랜타올림픽에 이어 시드니올림픽까지 석권해 사상 유례없는 올림픽 4연패를 바라보았으나 미국의 21살 무명에게 무릎을 꿇었다. 옛 소련 스포츠의 대표주자로 지난 올림픽부터 우크라이나 대표로 나선 부브카 역시 몰락했다. 35차례 세계신기록, 세계선수권 6연속 우승 등 지난 20년간 장대높이뛰기의 역사를 혼자서 써온 부브카는 메달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으로 570㎝에 도전했다가 3차례 모두 실패해 예선탈락했다. 아킬레스건 부상 등으로 부진이 예상되긴 했지만 6년 전 이미 6m벽을 깬 그였기에 570㎝에서 버둥대는 모습은 무척이나 안쓰러웠다. 동독의 강력한 체육정책이 생활체육으로…

(사진/두 차례나 올림픽 수영2관왕을 차지했던 포포프.시드니올림픽에선 단 한개의 금메달도 따지 못했다)

(사진/여자 3m 다이빙에서 금메달을 딴 중국의 푸밍샤.이번 대회에서 중국의 선전은 아시아 스포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