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 스캔들 폭로 전문기자 10년의 기록… 공화당과 우익의 ‘잘못된 만남’을 증언한다
“나는 대표적 보수주의 운동기관들인 <워싱턴 타임스>, 헤리티지 재단, <아메리칸 스펙테이터>에서 일했다. 1990년대 후반까지 나는 잘나가는 우익 스캔들 폭로 전문기자로서 이란-콘트라 사건, 로버트 보크 판사의 대법관 지명을 둘러싼 사건, 토머스-힐 청문회, 트루퍼게이트, 폴라 존스, 화이트워터 사건, 그리고 클린턴을 탄핵으로 몰아가기 위한 음모 등 수도 워싱턴을 뒤덮은 수많은 스캔들을 목격했고, 거기에 가담했다.”
미국 민주당과 클린턴을 겨냥해 조작된 폭로기사와 책을 쓰면서 ‘스타’가 된 데이비드 브록이 과거와 단절하는 이 책을 마무리지은 건 지난해 11월이다. ‘내가 지난 10여년간 공화당과 우익 인사들과 손잡고 무슨 짓을 벌여왔나’를 고백하는 긴 글을 쓰는 사이 부시 정권이 출범했다.
섹스 매카시즘 집행자로 활약한 내용
“반클린턴 음모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우익 변호사들이 포진한 연방주의자협회가 사실상 부시 망명정부임이 드러났다. 새 정부의 부자를 위한 감세, 환경보호 예산 삭감, 시민 권리의 후퇴 등은 연방주의협회의 승인 아래 이뤄졌고, 부시가 연방직원으로 채용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검증을 거쳤다.”
법무부 장관과 부장관, 에너지부 장관, 백악관 법률 부고문, 공화당 전국위원회 조사담당 책임자 등 브록의 스캔들 조작기사를 직·간접으로 도와준 이들은 현재 미국 지배그룹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들 뒤에는 인종차별, 환경보호와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 낙태 반대주의 등의 신념을 지닌 억만장자·언론인·학자·공공재단·기독교 지도자 들이 포진해 있다. 브록은 그들이 누구며, 어떻게 미국을 주무르는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브록이 ‘뜨기’ 시작한 건 1950년대 빨갱이 사냥을 주도한 매카시즘의 전통을 이어받은 ‘섹스 매카시즘’의 집행자가 되면서부터다. 1990년대 초 법대 교수인 애니타 힐이 상원 인준 청문회에 나가 자신의 상관인 연방대법원 판사 지명사 클레어런스 토머스를 성추행으로 고발하자 정계가 발칵 뒤집혔다. 토머스가 가까스로 인준을 받아낸 직후 <워싱턴 타임스>(문선명이 만든 우익 대변지로 레이건이 특별히 좋아한 신문이다)에서 일하던 브록에게 <아메리칸 스펙테이터>(250만달러를 들여 클린턴을 궁지로 몰아넣을 재료를 찾는 아칸소 프로젝트의 추진자인 억만장자 리처드 멜런 스케이프가 재정을 지원한 우익 잡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애니타 힐 사건에 대한 특별조사 의뢰였고, 이를 위한 자금은 기부금 형태로 마련해놓았다는 것이다.
당시 우익은 애니타 힐을 ‘짓밟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여성의 종속문제부터 낙태, 포르노그라피, 인종관, 그리고 성정치학 등이 토머스-힐 논쟁으로 인해 촉발했고, 이 열기는 ‘여성의 해’로 명명된 1992년 대통령 선거로 이어질 분위기였다. 브록은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보좌관들로부터 공개되지 않은 상원 증언들과 연방수사국(FBI) 인터뷰와 비밀보고서부터 넘겨받기 시작했다. 그는 애니타 힐을 정신병자에다 매춘부로 매도하는 주장만을 모아 그해 3월 ‘애니타 힐의 진실’이란 제목을 붙인 방대한 기사를 <아메리칸 스펙테이터>에 실었다. 러시 림보 같은 우익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는 전국 방송망을 통해 이 내용을 그대로 읽어댔고, 잡지 판매부수는 300% 이상 늘어났다. 이어 이 글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솔레 벨로의 아들 애덤 벨로의 ‘드라이 클리닝’을 통해 합리적 외피를 입은 책으로 출판됐고, 주요 언론의 찬사를 받으며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기에 이른다
<뉴스위크>를 시작으로 <월스트리트 저널>이 책 내용을 발췌한 긴 글로 사설면 거의 전부를 채웠으며(<월스트리트 저널>은 브록과 같은 우익 저격수의 든든한 동지로 빠짐없이 등장한다), <뉴욕 타임스>가 “잘 쓰여진, 심사숙고한, 그리고 강력한 논리의…” 같은 수식어를 동원한 서평을 싣는다. 이는 브록도 “내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이후 브록은 공화당 의원들과 고위 법관들, 유명 칼럼니스트들이 모여 전략을 주무르고 내밀한 얘기들을 주고받는 고급 만찬회의 인기 있는 초청인사가 됐다. 그 그룹에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부 장관도 있었고, 그는 브록을 단번에 알아봤다.
한편, 토머스는 2000년 고어-부시 대통령 선거전에서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플로리다주 재개표에 관한 대법원 판결 때 4 대 5로 재개표 중단결정을 내리는 쪽에 한표를 던져 부시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해 보수주의 세력 덕에 대법관이 될 수 있었던 과거의 은혜를 갚았다.
‘성전’의 진실은 만행… 음모는 계속된다
‘성전’은 계속 이어졌다. 1993년 12월에는 우익의 방대한 물리적·인적 지원을 받아 ‘클린턴의 애정 행각’이란 제목을 단 커버스토리를 <아메리칸 스펙테이터>를 통해 내보냈다. 이번에는 <워싱턴 타임스> 시절부터 알고 있는 친구를 통해 “< CNN >을 그토록 쉽게 끌어들였다”. < CNN >이 트루퍼게이트를 머리기사로 올리자 < AP통신 >과 <워싱턴 포스트>가 곧바로 이를 받아 보도했다. 폴라 존스가 공개적으로 클린턴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게 브록이 쓴 한 구절 때문이라는 건 아주 작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500쪽에 이르는 분량에서 브록의 섹스 매카시즘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정도다. 나머지는 미국을 주름잡는 보수 우익에 대한 폭넓은 사슬구조에 대한 증언으로 이뤄져 있다. 예컨대, 브록은 자선단체 존 올린 재단의 지원을 받아 헤리티지 재단에서 1년간 연구원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윈체스터 탄약회사와 윈체스터 소총회사를 소유한 올린 재단은 로비 단체들이 청원한 개인의 총기 소지 허용 법안이 통과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는 식이다. 프린스턴대학의 경제학 교수 폴 크루그먼은 <뉴욕 타임스>를 통해 “우익 소식통들이 (나의) 정상적인 비즈니스 업무를 뭔가 부정한 것으로 몰아붙였다. 그러자 합법적 매체가 그런 소동을 일으킨 주장에는 뭔가 근거가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그것을 다뤘다. 브록의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사진/ 우익에 눈먼 미국- 어느 보수주의자의 고백, 데이비드 브록 지음, 한승동 옮김, 나무와숲 펴냄, 1만3900원

사진/ 성추행 문제로 대법관 인준 청문회에서 곤란을 겪은 우익 판사 클레어런스 토마서(맨 오른쪽), 반클린턴 아칸소 스로젝트를 이끈 억만장자 리처드 멜런 스케이프(맨 왼쪽), 애니타힐을 헐뜯는 글을 선전한 방송인 러시 림보(가운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