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반미집회
등록 : 2002-12-18 00:00 수정 :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손이 곱아 미선이 효순이 사진 설치하는 손이 빨갛게 얼어온다. 추모집회를 알리는 방송차량은 분주히 읍내를 몇 바퀴 돌고 몇명은 남아 사진이며 플래카드를 걸고 초와 컵, 서명용지들을 챙겨놓는다.
진철이가 저희 학교 학생회장과 함께 온다. 왜 이리 썰렁하냐며 퉁을 놓는다. 함께 오신 전교조 선생님들은 아이들 입에 잉어빵 물리고 한켠에선 편지글 낭독을 준비한다. 원불교 교무님들은 법복을 입고 수녀님들도 아이들과 ‘미국반대’ 피켓을 들고 뛰다시피 오신다. 농민들도 도착하고 전교조 선생님들, 그리고 지나던 사람들도 갈 길을 멈추고 기웃한다.
“이게 뭣이여.” 병원 가던 발걸음 멈춰선 허리 굽은 할아버지가 피켓 들고 선 내게 묻는다. “할아버지 여자아이 둘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죽었는데도요 미군들이 죄가 없다고 해서 재판 다시 하라고 하는 거예요.” “응, 나도 알아, 우리집 테레비에도 나왔어. 고생들 혀.” 비록 할아버지 발길은 돌리지만 오늘밤 텔레비전에 비친 광화문의 촛불시위가 더 가깝게 보이지 않을까 싶다.
사진을 보며 고개를 돌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효순이와 미선이에게 보내는 편지글이 바람결을 타고 오른다. 아직 낯선 반미집회인지라 주변인들이 많다. 핵이나 쌀문제로 연일 몸살을 앓아서일까 아님 오늘 ‘청소년 가요제’ 예심에 몰려들 가서일까 일단 참가자 200여명과 주변인들이 함께 미국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다.
인터넷이나 방송을 통해 광화문 촛불집회 소식을 접할 때마다 눈물 마를 날이 없었는데 자유발언대에 선뜻 올라서지 못하고 만다. 가슴속으로만 ‘SOFA 개정, 자주적 나라세우기’를 외쳐볼 뿐.
사위가 어둑해지면서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일렬을 이뤄 터미널을 거쳐 읍내를 도는 동안 이내 참가자들이 불어난다.
투쟁기금 모금함에는 10원짜리부터 제법 푸릇한 1만원짜리들도 모여간다. 마지못해 내놓는 부끄러운 돈이 아니라 동참하고픈 맘 가득 담은 동전들이다. 누구는 국민들 돈 모아 선거 치른다는데 우린 군민들 돈 모아 반미집회를 치른다. 촛불 더 달라는 소리가 높아져가고 아이들이 선생님을 목놓아 부르며 대열로 들어오고 막차 떨굴까 종종걸음치던 사람들도 대열 안으로 들어와 조용히 촛불을 건네받는다.
영산원불교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는 푸른 눈의 두 남녀는 침통한 모습으로 추모행렬을 따른다. 실내체육관 앞 마무리 집회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이어지고 아쉬운 다음주를 예약한다.
“다음주에는 아이들 많이 데려올게요. 우리도 인터넷 통해서 내용은 싹 알거든요. 다음주에 봬요.” 내내 영정을 들고 참여했던 진철이가 외치며 달아난다.
미선이 효순이의 영혼이 편히 쉬도록 우린 SOFA 개정운동을 한다고 우리 아이들에게 일러줘야겠다. 그리고 다음주엔 단단히 입혀 승혁이와 성호에게도 촛불 하나씩 당겨줘야겠다.
이태옥 ㅣ 영광 여성의전화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