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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마법과 반지의 ‘판타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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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2-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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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험한 미스터리의 <해리 포터…>·헬름 협곡 대전투의 <반지의 제왕…> 1년 만의 맞대결

새삼스러운 탄성이겠지만, 소년 마법사 해리 포터와 9인의 반지원정대가 벌인 ‘세계대전’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지난 겨울 맞붙은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과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가 세계적으로 거둬들인 돈은 각각 9억6천만, 8억6천만 달러다. 세계 박스오피스 순위 2위, 5위에 오른 이 액수는 우리 돈으로 1조원을 넘나든다. 판타지 전쟁이 1년 만에 다시 시작된다.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이 12월13일 먼저 개봉하고, 대통령 선거일인 19일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이 그 뒤를 잇는다.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은 앞서 개봉한 일본·벨기에·타이 등에서 역대 최고의 주말 흥행 기록을 낳았으며,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의 예고된 흥행은 국내 배급사 플래너스엔터테인먼트의 주가를 최근 50%나 크게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전편보다 나아도 영화적 긴장감 실종

“첫 번째 영화가 개업식이었다면, 이번에는 (벌써) 최고조를 이뤘다.” 미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자랑하는, <시카고 선 타임스>의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해리 포터> 2편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원작소설이 <스타워즈>만큼이나 거대한 신화적 세계를 창조했을 뿐 아니라 재치와 인간미까지 넘친다는 평가는 일반론이 된 듯하다. 로저 에버트는 <해리 포터>가 슈퍼스타 슈퍼맨이 자기중심적 무게에 못 이겨 내러티브와 충돌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구조인데다 개성어린 개인사와 그의 기행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높이 샀다. 게다가 이번에는 더 어둡고 무서워지기까지 했다며 반가워한다. 적어도 이건 맞다. 피와 흙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 날선 칼을 들고 노려보는 해리 포터의 표정은 1편에 없었다.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입학한 해리 포터와 그의 친구들에게 기숙사를 배정하고 학교와 퀴디치 경기의 규칙들을 소개하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1편과 달리 2편의 2학년 새 학기는 곧바로 미스터리 액션극으로 돌입한다. 삼총사 친구 가운데 한명인 헤르미온느를 비롯해 머글(마법사가 아닌 사람)의 자손으로 혈통이 ‘불순한’ 학생들이 차갑게 굳어버리는 사건이 잇달아 일어난다. 호그와트를 설립한 네명의 창립자 가운데 한명인 살라자르 슬리데린이 만든 ‘비밀의 방’이 열렸기 때문이란 소문이 퍼지고 학교는 폐교 위기에 놓인다. 이 와중에 해리 포터는 뱀의 언어인 파즐을 통해 뱀과 대화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학교 친구들에게 슬리데린의 후계자라는 의심을 받는다. 저주스러운 ‘비밀의 방’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 학교와 친구들을 구해야 하는 해리 포터의 처지는 이를 지켜보는 이를 조바심나게 해야 한다. 그래야 1편보다 8분가량 늘어난 2시간40분이 흥미진진할 테니까. 그런데 <인디아나 존스> 같은 위기감의 지속은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다수가 열광하는 이 영화에 긴장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건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휘트브레드상의 심사위원 앤서니 홀든이 원작소설을 향해 “이 책들은 아주 일차원적인 아동문학으로, 디즈니 만화를 글로 적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게 한 ‘고매한’ 눈길을 나눠 가졌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어린 아이의 순수한 눈길을 가진 사람이라야 ‘비밀의 방’이 풍기는 음험한 기운에 소름돋는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캐릭터들의 처절한 전투가 압권

속물스러운 어른은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에 눈을 돌려보자. 2시간을 조금 넘기면 기다림이 아깝지 않을 거대한 스펙터클 ‘헬름 협곡 대전투’를 감상할 수 있다. 거대한 산을 뒤로 한 아름다운 요새에서 버티는 300명의 착한 편과, 이를 함락시키려고 달려드는 무시무시한 전투용 요괴 1만 병사의 싸움이다. 컴퓨터로 합성한 수많은 디지털 캐릭터가 벌이는 싸움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유명한 상륙작전 전투만큼 사실적이지는 않더라도 <글래디에이터>를 찬사로 몰아넣은 처절한 전투장면을 뛰어넘는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하긴 “<반지의 제왕> 3부작 가운데 가장 하이라이트 부분”이라고 홍보할 정도다(그렇다면 내년 이맘때 개봉할 3부에선 여기에 버금가는 장면이 없다는 너무 이른 자백이 아닌가).

헬름 협곡 전투에 이르려면 3곳에서 동시에 펼치는 긴 우회로를 거쳐야 한다. 가장 연약한 종족인 호빗족으로 절대 반지에 유일하게 내성을 보이는 프로도는 일행과 떨어져 샘과 함께 위태로운 모험을 계속하고, 사루만의 우루크하이 군대에 잡혀간 이들의 친구 메리와 피핀은 나무들의 요정이라고 할 엔트족을 부추겨 악한 마법사 사루만에게 결정타를 가하는 큰일을 도모한다. 또 반지원정대의 뛰어난 전사들인 아라곤·레골라스·감리는 1편에서 되살아나올 것 같지 않은 불속으로 떨어진 마법사 간달프를 만나 헬름 협곡 전투의 주인공이 된다. 세 무리로 나뉜 원정대는 영화 내내 한번도 마주치지 않는다. 셋으로 나뉜 주인공들의 3가지 모험담이 처음부터 끝까지 교차 편집되는데, 이렇게 복잡하고 거대한 3시간짜리 서사극 3편을 한번에 모조리 찍어놓고 1년마다 개봉하게 한 피터 잭슨 감독의 손끝은 참으로 신통방통하다. <반지의 제왕>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선과 악의 경계선에서 미묘하게 요동치는 어두운 본능을 1편에서 가장 선한 프로도의 몫으로 돌린 것도 흥미롭다.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 사이에서 산술적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건 솔직하지 않다.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IMDB)를 통해 전 세계 네티즌이 내린 평점은 <해리포터>는 1편 7.4점(10점 만점), 2편 7.9점이고, <반지의 제왕>은 1편이 8.9점, 2편이 9.5점(투표자 수가 아직 1천명을 넘지 않았다)이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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