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전의 실학정신을 새롭게 해석한 <현산어보를 찾아서> 펴낸 생물교사 이태원씨
처음엔 책이름을 헷갈렸다. <자산어보>가 아니었던가 해서. 다음엔 책날개에 적힌 지은이 약력을 보고 눈을 여러번 깜박였다. 이태원, 72년생, 생물교사. 정약전의 실학정신을 좇아 <자산어보>의 내용을 새로이 해석한 <현산어보를 찾아서>(청람미디어, 전 5권 중 3권 발행)의 지은이는 그렇게 약관의 젊은이였다.
먼저 책이름이 ‘현산어보’인 까닭을 물었다. ”이는 정약전의 유배지였던 ‘흑산도’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정약전은 책의 서문에서 “흑산이라는 이름이 어둡고 처량해 집안 사람들이 편지를 쓸 때 흑산을 玆山이라 쓰곤 했다. 玆는 黑과 같은 뜻이다”라고 했지요. 그런데 玆가 ‘검다’라는 뜻으로 쓰일 때는 ‘현’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자산어보’가 아닌 ‘현산어보’로 읽는 게 옳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어요.”
7년 동안 200여종의 생물 좇아
그가 <현산어보>를 만난 것은 7년 전인 대학원 재학 때였다. “그 세심한 관찰과 과학적 연구방법에 매료돼 흠뻑 빠져들었죠. 하지만 번역본은 몇 가지 오류가 있었어요. 무엇보다 조선시대 정약전 선생이 말했던 생물이 지금 무엇인지 정확히 집어내질 못했죠. 가령 극피동물인 천족섬을 두고 번역본에선 어류인 빨강부치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맞지 않았어요. 내가 한번 자산어보에 나온 200여종의 생물을 다 맞춰보자, 그런 생각을 가지고 덤벼들었죠.” 그렇게 시작된 정약전과의 인연은 해를 더할수록 깊어져만 갔다. “책상 앞에 앉아 아무리 도감을 뒤지고 전라도 방언책을 봐도 결론이 안 나요. 안 되겠다 싶어 흑산도로 직접 떠났죠.” 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던 ‘비밀의 문’은 흑산도 주민들을 만나면서부터 하나하나 열리기 시작했다. 가령 영화 <조스>에 나오는 무서운 식인상어 ‘백상아리’에 대해 정약전은 뜻밖에 이런 묘사를 해놓았다. “성질이 매우 느긋하여 사람들이 곧잘 낚는다. 일설엔 이 상어가 이빨을 아끼기 때문에 낚싯줄이 이빨에 걸리면 따라 끌려온다” 이씨는 이 묘사 때문에 과연 포악한 백상어가 맞는지 의아스러워하던 중 우연히 “이빨을 어뜨끔 아끼는지 낚싯바늘 하나라도 걸리면 고기도 못 물고 사람도 못 물어”라는 말을 듣는다. “어쩌면 200년 전 정약전과 똑같은 묘사를 들을 수 있는지 너무나 신기했어요.” 소 덩치만하고 길고 뾰족한 부리를 달고 있다는 신비의 물고기 ‘화절육’도 주민들의 증언이 없었다면 영영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화절육’의 정체를 몰라 애태우던 이씨에게 어느 날 흑산도 주민이 한 집안에서 대대손손 물려오는 물고기의 뾰족한 주둥이 사진을 보내왔다. 이는 ‘꽃제루’라고 불리는 물고기인데, 바로 화절육의 ‘花’에서 비롯한 이름이었다. “바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새치였어요. 열대성 어족인 새치가 우리나라 바다에도 가끔씩 나타났던 거지요.” 주민들 만나 물고기에 얽힌 비밀 풀어 이씨는 이와 함께 기존 번역본에 묻혀 있던 ‘이청’이란 사람의 존재를 새롭게 부각시켰다. “필사본엔 정약전의 관찰 뒤 반드시 ‘청안’이란 단어가 뒤따릅니다. 이는 청이란 사람의 의견이란 뜻인데, 이청은 본래 정약용의 제자입니다. 정약전이 순수한 관찰·경험을 통해 글을 쓰고 나자 이청이 고증을 더해 주석을 달았어요. 결국 <현산어보>는 정약전과 이청의 공동저술인 셈입니다.” 이런 구체적인 사실들을 일일이 캐내면서 그가 결국에 알고자 한 것은 정약전이라는 인물과 그의 시대다. “정약전과 같은 천재들이 숨쉬고 활동했던 실학시대라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럽고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신분제 사회와 제도의 한계로 그들의 재능이 산업과 문명의 발전에까지 이르지 못한 것은 또한 아쉬움이었습니다.” 내년 봄엔 정약전의 또 다른 유배지인 우이도에서의 행적과 흑산도의 역사·생물을 다룬 4·5권이 잇따라 나올 예정이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그가 <현산어보>를 만난 것은 7년 전인 대학원 재학 때였다. “그 세심한 관찰과 과학적 연구방법에 매료돼 흠뻑 빠져들었죠. 하지만 번역본은 몇 가지 오류가 있었어요. 무엇보다 조선시대 정약전 선생이 말했던 생물이 지금 무엇인지 정확히 집어내질 못했죠. 가령 극피동물인 천족섬을 두고 번역본에선 어류인 빨강부치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맞지 않았어요. 내가 한번 자산어보에 나온 200여종의 생물을 다 맞춰보자, 그런 생각을 가지고 덤벼들었죠.” 그렇게 시작된 정약전과의 인연은 해를 더할수록 깊어져만 갔다. “책상 앞에 앉아 아무리 도감을 뒤지고 전라도 방언책을 봐도 결론이 안 나요. 안 되겠다 싶어 흑산도로 직접 떠났죠.” 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던 ‘비밀의 문’은 흑산도 주민들을 만나면서부터 하나하나 열리기 시작했다. 가령 영화 <조스>에 나오는 무서운 식인상어 ‘백상아리’에 대해 정약전은 뜻밖에 이런 묘사를 해놓았다. “성질이 매우 느긋하여 사람들이 곧잘 낚는다. 일설엔 이 상어가 이빨을 아끼기 때문에 낚싯줄이 이빨에 걸리면 따라 끌려온다” 이씨는 이 묘사 때문에 과연 포악한 백상어가 맞는지 의아스러워하던 중 우연히 “이빨을 어뜨끔 아끼는지 낚싯바늘 하나라도 걸리면 고기도 못 물고 사람도 못 물어”라는 말을 듣는다. “어쩌면 200년 전 정약전과 똑같은 묘사를 들을 수 있는지 너무나 신기했어요.” 소 덩치만하고 길고 뾰족한 부리를 달고 있다는 신비의 물고기 ‘화절육’도 주민들의 증언이 없었다면 영영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화절육’의 정체를 몰라 애태우던 이씨에게 어느 날 흑산도 주민이 한 집안에서 대대손손 물려오는 물고기의 뾰족한 주둥이 사진을 보내왔다. 이는 ‘꽃제루’라고 불리는 물고기인데, 바로 화절육의 ‘花’에서 비롯한 이름이었다. “바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새치였어요. 열대성 어족인 새치가 우리나라 바다에도 가끔씩 나타났던 거지요.” 주민들 만나 물고기에 얽힌 비밀 풀어 이씨는 이와 함께 기존 번역본에 묻혀 있던 ‘이청’이란 사람의 존재를 새롭게 부각시켰다. “필사본엔 정약전의 관찰 뒤 반드시 ‘청안’이란 단어가 뒤따릅니다. 이는 청이란 사람의 의견이란 뜻인데, 이청은 본래 정약용의 제자입니다. 정약전이 순수한 관찰·경험을 통해 글을 쓰고 나자 이청이 고증을 더해 주석을 달았어요. 결국 <현산어보>는 정약전과 이청의 공동저술인 셈입니다.” 이런 구체적인 사실들을 일일이 캐내면서 그가 결국에 알고자 한 것은 정약전이라는 인물과 그의 시대다. “정약전과 같은 천재들이 숨쉬고 활동했던 실학시대라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럽고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신분제 사회와 제도의 한계로 그들의 재능이 산업과 문명의 발전에까지 이르지 못한 것은 또한 아쉬움이었습니다.” 내년 봄엔 정약전의 또 다른 유배지인 우이도에서의 행적과 흑산도의 역사·생물을 다룬 4·5권이 잇따라 나올 예정이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