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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해리 포터 열풍, 그 뿌리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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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2-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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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 청바지를 입은 마법사>(앤드루 블레이크 지음, 이택광 옮김, 이후 펴냄)는 영국의 보잘것없는 출판사에서 어린이용으로 500부 정도를 찍어낸 <해리 포터> 시리즈가 47개국 언어로 12억질 이상 팔려나간 세계적 열풍을 분석한다. 그러나 이 책은 소설이나 영화라는 텍스트 안에 갇혀 있지 않다. 윈체스터의 킹 알프레드 칼리지 문화연구학과의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지은이는 소설가 조앤 K. 롤링과 그의 소설을 둘러싼 영국의 정치·사회·경제적 상황이 어떻게 흘러왔고, 그것이 <해리 포터>와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조앤 롤링의 원고를 처음 받아본 출판중개인 크리스토퍼 리틀은 큰 곤란을 겪어야 했다. “이 원고는 아주 팔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출판을 거절했다. 분량이 너무 많았고, 집을 떠나 학교로 도피하는 내용을 다뤄 어딘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으로 간주됐다.” <해리 포터>가 받은 푸대접은 1990년대의 아동문학이 주택문제, 10대 미혼모문제, 마약남용 같은 불편한 현실을 직접 다루고자 한 분위기와 동떨어진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현실은 고단했다. 첨단기술과 정보는 넘쳐나지만 돈을 버는 어려움은 더해갔고 젊은이를 위한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어느덧 보통사람들이나 역사가들은 좋았던 과거를 선망하는 국가적 분위기를 형성했고, 80년대의 영국은 “장래에 대한 전망은 하나도 없이 거대한 박물관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해리 포터>는 이런 와중에 의도적으로 ‘역혁명’을 추구한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역혁명’이란 단어는 90년대 중반 재규어사의 디자이너들이 파리 모터쇼에서 고급차 XJ 시리즈 최신형을 선보이며 처음 사용한 신조어다. 현대적 첨단기술의 엔진과 트랜스미션, 브레이크 시스템 등을 갖췄으나 겉모습은 전통적 외관의 가죽과 나무를 사용해서 실내를 장식했다. 전통적 형태로 현대적 기능의 자동차를 설계해 기존 고객뿐 아니라 재규어 승용차를 몰아보고자 항상 갈망한 사람들을 모두 만족시키고자 했다는 것이다. 회사는 이 전략을 다른 기종으로 넓혀 적용시켰고, 일본 마츠다와 독일 BMW도 역혁명적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과거의 것으로 보이는 것을 통해 변화하는 현재 세계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역혁명적이라는 것이다.

소비자 시민으로 성장한 10대의 등장을 빼놓을 수 없다. 예컨대, 2000년도에 미국의 14살 이하 어린이들이 300억 달러를 썼으며,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는 능력을 통해 부모들이 추가로 3천억달러를 더 쓰도록 만든 것으로 평가됐다. 한 시장조사 전문회사는 8살과 14살 사이의 미국 어린이들은 역사적으로 가장 마케팅 인지도가 높고 소비 지향적 세대라고 평가했다. 그래서 아동을 대상으로 완전히 표준화된 다국적 마케팅 전략을 전 세계적으로 수립하는 것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해리 포터는 사춘기의 자의식을 통해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키는 10대의 전형적 모습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원래 가족과 현실적 가족, 그리고 학교 친구들에게서 고립된 채 영웅적 개인주의를 통해 성인의 성취를 달성하도록 내몰린다. 또 그가 잉글랜드 출신의 백인 소년이면서도 백인 앵글로색슨 프로테스탄트가 아닌 것은 기독교를 포함해 ‘신이 죽어버린’ 세계를 웅변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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