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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골초 행장에서 금연 전도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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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2-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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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두갑씩 피우다 올초 금연 대열 합류… 주말농장 가꾸며 자연의 선물 만끽

사진/ 김정태ㅣ국민은행장
은행장으로서 어느 업무가 중요하지 않을까마는 매주 목요일의 일선 영업점과 기업체 방문은 특별히 신경쓰는 부문이다. 이 일은 4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멈추지 않았는데, 최고경영자로서 직원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고객의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이 경영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은행장으로 취임해 그동안 수많은 인사들을 만나고,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1년 12달, 하루 24시간이 공사의 구분 없는 나날의 연속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아침 일찍 출근하면 일간지 전체 면을 볼 짬을 내기 쉽지 않은 것이 요즘이다. 줄지어 있는 결재서류에 사인하자 마자 비서팀에서 올린 일정표엔 각종 대내외 회의 참가, 외부인사 영접, 영업점 방문 등 수많은 약속들이 가득하다. 각각의 약속이 내일로 미뤄서 될 일이 아니기에 차례차례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약속은 밤늦게까지 이어지고 어떤 날은 끼니는 아예 생각도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렇다 보니 나 자신보다 주위에서 오히려 내 건강을 더 염려한다. 비서진은 말할 것도 없고, 아내와 가족까지 ‘건강얘기’로 은근히 압력을 가해온다. 그럴 때면 슬며시 웃음으로 무마해보기도 한다. 물론 나 역시 수백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건강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건강얘기가 나왔으니 금연부터 먼저 말해야겠다. 나는 올 1월1일을 기해 오랫동안 즐겨온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 금연주의자가 됐다. 하루 담배 두갑에 사석은 물론, 회의 때도 먼저 담배부터 빼어든 내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과연’ 하며 내 금연을 반신반의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금연선언 이후 오늘까지 이를 잘 지켜오고 있다. 물론 초기엔 몸 속 깊이 밴 담배 인 때문에 다시 피우고픈 충동에 고생도 많이 했다. 하지만 금연 이후 몸이 확연히 좋아지는 것을 느끼며 유혹도 쉽게 이겨낼 수 있었다. 지금은 건강에 백해무익한 것을 왜 좀더 일찍 끊지 못했나 후회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은 담배 피우는 친구들이 있으면 금연을 적극 권유하는 금연 전도사가 됐다. 특히 범사회적 금연운동에 우리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클린은행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은 은행장으로서 여간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금연 못지않게 내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해주는 것으로 ‘농장’을 꼽을 수 있다. 나와 아내는 토요일마다 서울서 1시간 거리에 있는 경기도 화성군 매송면 700여평 남짓한 농장으로 나들이한다. 이 밭은 처형네가 오래전에 사둔 땅인데, 84년부터 우리 부부가 맡아 농사를 지어왔다. 올해도 우리 부부는 아주 특별한 경우 외엔 한주도 빠지지 않고 이곳을 찾아 농사짓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농장은 도회지밖에 모르던 우리 부부의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농사를 지으며 얻은 것은 건강을 비롯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무엇보다 열심히 땀 흘린 만큼 열매를 맺는 자연의 진리를 새삼 배웠다는 것이다. 가물어 밭고랑이 쩍쩍 갈라지면 맘도 같이 타들고, 무성하던 잎이 시들면 또 어디가 탈 났나 노심초사하는 등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는 작물들에게 얻는 희열. 이것이야말로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자연의 선물이요, 기쁨이다.


농사를 짓는 동안 세상의 어떤 부자도 부럽지 않다. 그리고 어떤 강력한 운동도 필요치 않다. 자연이 주는 생명력 가득한 풍요로움이야말로 내 몸과 마음을 건강하고 영화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수많은 약속과 전쟁을 치르다가도 토요일마다 어김없이 아내와 함께 농장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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