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뉴턴이 1687년에 펴낸 <프린키피아>는 과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저술로 평가된다. 원제는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로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비롯한 여러 가지 과학 법칙들의 배경을 이루는 수학적 원리들이 기술돼 있다. 그리하여 고전물리학은 이로부터 출발했다고 본다. 그런데 얼마 전 러시아는 보유한 몇권의 초판본을 도난당했다가 되찾았다. 배후에는 고서의 암거래 조직과 암시장이 도사리고 있었다. 도난은 범죄현상이며 오늘날 사회과학 분야의 한 현상으로 다뤄진다. 수많은 자연현상을 통찰하고 가장 위대한 책으로 꾸민 뉴턴이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미국의 한 사회학자는 인종차별 문제에 관해 흥미로운 연구를 했다. 우리는 흔히 이 문제가 각 개인의 인종적 편견에서 나온다고 여긴다. 그는 편견이 없는 개인들로 이뤄진 사회에서도 아주 사소한 심리적 경향 때문에 거시적으로는 인종차별 현상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수학적 모사실험으로 밝혀냈다. 예를 들면 한 도시가 처음에는 백인과 흑인이 고르게 분포한 상태에서 출발하고 각 개인들은 인종적 편견이 없다고 치자. 어떤 이유에서든 약간의 인구 이동이 생기면 좁은 지역에서 인종 간 불균형이 나타난다. 그래도 당분간은 괜찮지만 어쩌다가 한 백인이 주위에 온통 흑인만 있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그러면 그는 인종적 편견이 없음에도 오직 자기와 같은 백인이 그립다는 이유만으로 그곳을 떠나게 된다. 이와 같은 심리적 경향은 백인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서 볼 수 있는 인간적 본능이라고 할 것이다. 굳이 인종적 편견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쌓이면 처음의 고른 분포는 무너지고 결국 겉보기에 인종차별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를 본 사람들은 애초에는 인종적 편견이 없었다가도 은연중에 “역시 백인과 흑인은 같이 살 수 없다”라는 후천적 편견을 강화하고 만다.
이런 연구를 토대로 최근에는 비슷한 문제들에 대해 새로운 관점이 등장했다. 전통적 서구 과학은 해체와 분석을 위주로 했다. 이런 연구에서는 전체와 부분의 상호관계보다는 각 개체들의 개별적 행동에 더 주목한다. 그러나 근래 인터넷을 비롯한 수많은 종류의 ‘네트워크’ 구조가 흥미로운 연구대상이 됐다. 거기서는 개체보다 구조와 연결관계가 중요하다. 그리하여 우리가 흔히 각 개체의 특성 때문이라고 보는 거시적 현상들이 알고 보면 각 개체와 무관한 제3의 영향력으로부터 도출된다는 점이 속속 밝혀졌다. 이를테면 ‘사회철학의 과학적 원리’라고나 하겠다.
대통령 선거가 이제 코앞에 닥쳤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정치계는 물론 나라 전체가 격랑에 휩쓸린다. 편가르기·줄서기·이합집산·지역감정 등 해묵은 레퍼토리가 재연되는 와중에 전체 사회의 역량이 기운다. 이 모든 현상의 배경에는, 유난히 강한 우리 사회의 인간적 네트워크 구조가 깔려 있다. 이제 그 해결을 위해 새로운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이 어떨까 성과가 어떨지 정확히 전망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수많은 개별현상을 꿰뚫는 과학적 원리의 속성에서 볼 때 소모적인 감정싸움보다는 생산적인 결과가 나올 것으로 믿는다.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