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들이 전립에 음식을 끓여먹으면서 탄생한 전골… 곰국시가에서 찾은 전통 전골의 담백함
키 179cm에 몸무게 45kg으로 군대 안 간 사람은 모른다. 철모의 이용법을. 철모는 그 안에 덧쓰는 파이버와 함께 전투시 총탄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주 정면으로 총탄을 맞으면 철모와 파이버조차 뚫려 죽게 되지만, 웬만한 각도로는 총탄이 모두 튕겨나가고, 혹 빗맞아 철모를 뚫더라도 철모와 파이버 사이의 공간에서 총탄이 빙글 돌아 머리를 보호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철모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정밀하게 역학적으로 곡선이 설계되었다고 하는데, 특히 2차대전 때 나치 독일군의 철모는 총탄은 물론 포탄의 파편까지도 튕겨 흘려버릴 수 있도록 강하고 정밀하게 만들어졌다. 2차대전을 소재로 한 전쟁영화의 상투적 장면과는 달리 나치 독일군은 상당히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자신 있게 머리를 들고 연합군을 향해 사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철모의 본령은 전투시 머리 보호인데,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 전방 소총부대가 야전훈련이라도 나가게 되면 그 쓰임새가 여러모로 변한다. 철모는 행군에 지친 병사들의 ‘5분간 휴식’ 때 의자가 되기도 하고, 목마른 전우들을 위해 샘물을 떠오는 물대접이 되기도 하고, 분대원들의 밥과 국을 받아오는 밥그릇이 되기도 하고, 얼굴이나 발을 씻는 고참의 세숫대야가 되기도 하고, 소대장 몰래 받아다 마시는 막걸리 양푼이 되기도 한다. 또 군부대 근처 농가에서는 부대에서 흘러나온 철모에 적당히 나무막대를 꿰어 변소를 푸는 바가지로 이용하기도 한다.
옛날의 철모는 전립투이다. 전립투는 전쟁 때 쓰는 모자라 하여 전립(戰笠)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털실로 뜬 모자라 하여 전립(氈笠)이라고도 한다. 상고시대 전립은 오늘날의 철모처럼 쇠로 만들었던 모양인데, 전시에 진중에서는 기구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으므로 병사들은 자기가 쓴 전립을 벗어 각각 음식을 끓여 먹었다고 한다. 이것이 민간에도 전해져 여염집에서 냄비를 전립 모양으로 만들어 고기와 채소를 넣어 끓여 먹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전골이라는 조리법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전통 전골 요리법은 오늘날과 같이 음식 재료들을 모두 넣고 그냥 끓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조선 후기 유득공이 지은 세시풍속기인 <경도잡지>를 보면 “냄비 가운데 전립투라는 것이 있는데 그 모양이 벙거지와 같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채소는 그 가운데 움푹하게 들어간 부분에다 넣어서 데치고 변두리 평평한 곳에서 고기를 굽는데, 술안주나 반찬에 모두 좋다”라고 나와 있다. 곧 재료를 몽땅 넣고 한번에 끓이는 것이 아니라, 모자전 같은 데서 고기를 구우면 자연히 고기 국물이 채소 국물에 흘러들어가 맛을 내는 조리 구조가 곧 전통 전골인 것이다.
또 구한말의 조리서인 <시의전서>를 보면 “연한 안심을 얇게 골채쪽처럼 저미거나 채쳐서 갖은 양념을 하여 화기(火器)에 담고, 그 위에 잣가루를 뿌려 먹는데, 죽순, 낙지, 굴을 쓰기도 한다. 전골 나물은 무, 콩나물, 숙주, 미나리, 파, 고비, 표고, 느타리, 석이, 도라지를 쓰고, 소반에 전골틀과 나물접시를 놓고, 탕기에 장국을 타서 담고, 접시에 달걀 2, 3개를 담고, 기름을 종지에 넣고, 풍로에 숯을 피워 전골틀이나 냄비에 지진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앞의 <경도잡지>의 구이 전골과 오늘날의 냄비 전골을 적당히 섞은 것이다.
지하철 4호선 상계역 부근의 곰국시가(02-937-0087)는 아주 맛있는 전골 전문집이다. 버섯만두전골·수육전골·모듬전골을 만들어 내는데, 이 집 주인 장은용(39)씨는 전문 요리사 출신은 아니지만 순전히 눈썰미와 맛에 대한 탁월한 감각으로 전골 요리들을 개발했다. 어차피 세상이 변함에 따라 입맛도 변하고, 재료도 옛날과 같지 않으니 전통 조리법만을 고집할 수는 없는 일이나, 양송이·표고·느타리·팽이버섯·떡·만두와 갖은 야채를 넣고 끓인 이 집의 모듬전골은 그나마 우리 전통 전골의 담백한 맛을 전해 주는 것 같다. 어느 전골이든 2만원 짜리를 시키면 3∼4명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사진/곰국시가의 전골요리. 이 집 주인 장은용씨는 전문 요리사 출신은 아니지만 순전히 눈썰미와 맛에 대한 탁월한 감각으로 전골요리들을 개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