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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에이즈 넘는 사랑의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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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1-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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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자들의 삶을 위로하는 음악들 모아… 에이즈 없는 세상을 향한 염원 담아

공식적으로 국내 에이즈 감염자 수는 1787명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기에 0을 하나 더 붙인 수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 감염자 수는 2000년말 기준 3610만명. 그 가운데 10%는 엄마 뱃속에서 감염된 채 태어난 수직감염자들이고, 한해 50만명의 15살 이하 어린이가 에이즈로 숨지고 있다. 그러나 치료비는 터무니없이 비싸고 사회적 편견은 병마보다 가혹하다.

12월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앞두고 뜻 깊은 음반 하나가 나왔다. 클래식곡을 골라 담은 < Peace of My Heart >(EMI)는 그러나 여느 편집음반과는 만들어진 과정이 조금 다르다. 수록곡은 모두 국내 에이즈 감염자들의 모임인 럽포원(www.love4one.com) 회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서 고른 것들이다.

‘럽포원’ 회원들 설문조사로 선곡


사진/ 지난해 12월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열린 기념 콘서트(왼쪽)와 미국 뉴욕 유엔센터 전면에 점등된 붉은 리본(오른쪽).
에이즈 감염자들이 가장 즐겨 듣거나 위안이 되거나 선물하고 싶은 곡 1순위는 영화 <필라델피아>에서 주인공인 톰 행크스가 온몸으로 따라부른 노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다. 프랑스 혁명 당시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 <안드레아 쉐니에>에 나오는 소프라노 아리아로 마리아 칼라스의 절창으로 유명하다. 오페라에서 여주인공이 무고하게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은 자신의 연인을 살리기 위해 혼신을 다해 부르는 노래다. 두 번째로 선곡된 곡은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등장하는 테너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 용기 없는 한 청년이 사랑의 묘약을 둘러싸고 벌인 소동을 그린 유쾌한 오페라에서 극적 반전을 알리는 곡이다.

의미가 크면 감동이 작고, 감동이 크면 의미가 작은 게 수많은 편집음반의 특색이었으나 ‘당신의 평안을 위한 내 마음의 한 조각’이라는 설명이 붙은 < Peace of My Heart >는 한곡 한곡이 사연과 의미를 갖고 폐부를 찌른다.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에서 사티의 피아노곡 <짐노페디 1번>(백건우 연주), 피아졸라의 탱고 <천사의 밀롱가>(안트리오 연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만큼이나 독특한 빛깔을 내는 작품들로 가려 뽑았다. 감염인들이 골랐지만 수록곡을 보면 비감염자들과 즐겨 듣는 선호작품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인지 음반의 홍보문구도 “세상의 모든 힘든 이들을 위한 음반”이다.

음반은 제약회사인 한국엠에스디 후원으로 탄생했다. 에이즈 치료·예방 활동과 감염자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기획된 공익캠페인 ‘NO AIDS, MORE AID’의 일환이다. 에이즈 극복운동에 대한 기업의 기부는 세계적인 추세나 한국은 이제 막 첫발을 뗀 셈이다.

기업 기부의 결실… 감염자 수기도 수록

제작과정에 회원들과 함께 참여한 박광서 럽포원 대표는 “소수자 가운데 소수자인 감염인들의 목소리를 음반이라는 대중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알릴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음반 표지그림은 에이즈로 아버지를 잃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한 어린이의 그림이다. 붉은 리본은 에이즈 없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달기 시작한 상징이다. 공식적인 표본은 없고 붉은 끈을 꼬아 착용하면 된다. 음반 속 안내책자에는 감염자들의 수기가 함께 담겨 있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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