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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우주시대는 멀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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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1-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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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의 주역 NASA의 생존 몸부림… 우주탐사 등 야심찬 계획에 회의론 대두

사진/ NASA는 우주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인가.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이뤄진 왕복우주선 '아틀란티스호' 발사 모습.
우주과학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어도 미 항공우주국(NASA)을 모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NASA는 1969년에 최초로 유인 달착륙을 성공시킨 아폴로계획의 주체였다. 그뿐이 아니다. NASA는 미국의 우월한 과학기술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상징이었고, 얼마 전까지도 첨단과학기술의 대명사처럼 받아들여졌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미국을 떠받드는 데 이골이 난 나라에서는 NASA가 여전히 상당한 위세를 떨치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흘러간 과거의 이야기가 됐다. 지금 NASA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는 고사하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스푸트니크 충격으로 엄청난 투자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권 몰락으로 냉전이 실질적으로 종료되면서 미국에서 가장 위치가 애매한 집단은 미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 같은 정보기관들이다. 적이 사라지자 하루아침에 이 집단의 효용가치가 반감되고, 그동안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진 몸집과 막대한 예산 때문에 이 집단을 바라보는 정치권과 사회 전반의 눈초리가 곱지 않게 됐다. 이에 거대 관료기구들은 스스로의 존립 근거를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마련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테러 방지와 오사마 빈 라덴 체포로 일거리를 찾았지만, 이전에는 적을 찾기 위해 외계인까지 끌어들여 에서 활약하는 FBI 대원들의 모습을 선전하기도 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이후 NASA는 그보다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아폴로계획은 인류의 우주 진출이라는 거대한 명분을 내걸고 1960년대에 미국과 소련이 벌인 냉전의 대리전이었다. 1957년에 소련이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자 미국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4년 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60년대가 끝나기 전 달에 먼저 유인우주선을 착륙시키겠다”고 공언했다. NASA는 이 임무를 이루기 위해 1958년에 설립된 기관이다. 엄혹한 냉전상황에서 받은 ‘스푸트니크 충격’(Sputnik Shock)으로 미국 의회는 두말 않고 아폴로계획에 들어갈 엄청난 자금을 승인했고, 미국 국민은 그때나 지금이나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미국 제일주의와 맹목적 애국주의에 편승해 절대적 지지를 보냈다. 그 결과 1969년 7월20일에 미국인들이 달에 착륙했다.

그러나 달착륙이라는 목표를 이룩하자 우주계획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암스트롱은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큰 도약이다”라는 감동적인 말을 했지만, 이후 아폴로계획은 4년을 더 지속했을 뿐이다. 일단 성조기를 꽂자 달은 미국에게 더 이상 매력적인 곳이 아니었다. 의회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우주개발계획에 전폭적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 이후 미국은 더 이상 나홀로 우주 카우보이 노릇을 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유럽과 일본 등에 공동사업을 제안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아폴로계획 이후 NASA는 많은 시도를 했지만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우주왕복선 계획을 진행하던 1986년에 챌린저호가 이륙 73초 만에 폭발해 승무원 7명 전원이 죽는 참사가 빚어졌고, 1980년대 말에 왕복선으로 발사해 우주에서 조립한 허블 우주망원경은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몇년 동안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비교적 최근 화성에 발사한 무인 로봇탐사선들도 만족스럽게 작동하지 않았다. 게다가 2004년 완성을 목표로 건설하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은 계획한 예산을 훨씬 초과해 거의 50억달러가 들어가는 애물단지가 됐다.

최근 NASA는 생존을 위해 대담한 계획을 세웠다. <뉴사이언티스트> 최근호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정치적인 지지도 바닥나고, 재원조달도 어려운 NASA를 새로운 모습으로 정비하기 위해 부시 대통령이 2년의 기한을 설정했다고 한다. 최후통첩을 받은 NASA의 전략은 새로운 인물들을 중심으로 NASA의 모습을 일신하기 위해 다시금 과거의 영광스러운 우주개척자의 이미지를 되살리는 것이다.

3년 전에 NASA가 설립한 NEXT팀(NASA 우주탐사팀)은 이 목표를 위해 상당히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첫 번째 단계는 이른바 3세대 우주망원경 발사다. 1세대는 최초의 우주망원경인 허블망원경이고, 2세대는 최근 승인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이다. 3세대 우주망원경이 설치되는 지점은 지구와 달의 중력이 상쇄되는 지점인 라그랑주점이 가장 유력한 후보다. 새로운 망원경은 지름 10m가 넘는 반사경을 탑재해서 우주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지구와 비슷한 조건의 행성을 찾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NASA는 새로 설치될 우주정거장을 좀더 원대한 목표에 사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주정거장은 망원경을 조립하고 유지하기 위한 승무원들을 위해 필요하지만, 중력 상쇄지점에 건설될 우주정거장을 태양계나 그보다 먼 우주여행을 위해 우주선을 발사할 효율적인 발사대로 삼는다는 것이다.

현실적 이득 없어 우주투자 골머리

사진/ 우주정거장을 수리하는 기술진들. (GAMMA)
그러나 이런 계획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NASA의 계획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론상으로는 지구에서 로켓을 발사하는 것보다 새로운 우주정거장에서 발사하는 편이 더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새로운 우주정거장 건설에 들어갈 천문학적 비용을 의회가 승인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한 안보문제 싱크탱크 관계자가 말했듯 존재 이유가 분명치 않을 때 가장 분명한 해결책은 문을 닫는 것일 수 있다. NASA는 이라크와의 전쟁이나 테러조직을 소탕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정치조직보다 정치적 성격이 강한 거대조직 NASA는 정치상황의 변화에 의해 50년 역사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부시 정권의 호전적인 신냉전책이 옛 시대 정보기관들에게 활로를 열어주었지만, 같은 뿌리인 NASA에게도 재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NASA는 세계의 절대자가 된 미국의 위상에 걸맞게 원대한 우주개척이라는 청사진을 다시 펼쳐보이지만, 이 구호가 노회할 대로 노회한 미국 정치가들에게 먹힐 수 있을까 문제는 아폴로시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이다.

50년의 현대사에서 영욕을 거듭한 NASA는 미국의 현대과학의 축도와도 같다. 미국은 토플러·네이스빗과 같은 미래학자들을 내세워 정보기술로 세계 구도를 바꿨고, 최근에는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생명공학으로 말을 갈아탔다. 좋든 싫든 전 세계의 과학연구는 이 장단에 춤을 춰야 했고, 순진한 소년소녀들이 그리는 미래의 과학자 모습 또한 바뀌어야 했다. 생명공학시대라는 새로운 정치적 맥락에서 미국이 NASA에게 새로운 정치적 임무를 부여할지, 아니면 역사의 한 페이지로 종지부를 찍을지는 철저한 손익계산 결과에 달려 있다.

김동광/ 과학저술가·과학세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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