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법학 용어에 ‘리걸 마인드’(legal mind)라는 게 있다. 우리말로 옮기기가 다소 까다롭지만 ‘법률적 심상(心象)’이라면 무난하겠다. 그러나 어딘지 딱딱하므로 대개 리걸 마인드라는 원어를 그대로 쓴다. 이 말은 “인간 생활과 관련되는 모든 현상을 법적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마음을 가져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법학을 배우는 데 가장 먼저 할 일이 이 마음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뒤에야 법학의 여러 원리들이 마음속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것은 법학의 출발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법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마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리걸 마인드는 법학을 배우며 가져야 할 초심(初心)이자 종심(終心)이다(준법의식의 차원으로 넓힐 경우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리걸 마인드에 대응하면서 서양 사회에 그보다 더 깊이 스며들어 있는 것은 ‘사이언티픽 마인드’(scientific mind)다. 이것도 우리말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다행히 ‘법률적 심상’보다는 더 부드럽게 ‘과학하는 마음’으로 옮겨져서 그런 대로 널리 쓰인다. 뜻은 리걸 마인드와 비슷하게 “인간 생활과 관련되는 모든 현상을 과학적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마음을 가져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말이 있음에도 그에 어울리는 마음이 잘 확산되고 있지는 않다. 사실 근래 들어 확산되기는커녕 퇴보하는 경향까지 보인다. 요즘 하나의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된 이공계 위기현상이 이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 문제의 배경에 어떤 원인이 숨어 있는지에 대해 많은 분석들을 하고 있다. 여기서 그에 관해 상세히 얘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어딘지 모르게 과학을 멀리하고 심지어 거부하려는 마음이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점은 분명해보인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은 미국의 유명한 과학잡지 가운데 하나다. 역사가 150년도 넘으며 오늘날에도 가장 대중적 과학잡지로서 확고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이런 사실도 흥미롭지만 그 제목을 새삼스럽게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제목을 그대로 옮기면 ‘과학적인 미국인’이 된다. 거기에는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미국인’이란 뜻이 담겨 있다. 지구상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고 정확하게 꼬집기는 어렵지만 각 나라마다 어떤 국민성이란 것이 결부돼 있다. 예를 들면 영국인은 신사적이고 프랑스인은 낭만적인데 독일인은 엄밀하며 스페인인은 정열적이란 것 등이 그것이다. 이에 비해 미국은 이른바 ‘인종의 용광로’라서 선뜻 떠올리기 어렵다. 그러나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란 말이 보여주듯 과학적이란 특성은 미국인을 대표하는 주요 속성 가운데 하나로서 부족함이 없다.
일본은 지난 2년 동안 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거기에 다른 요인들도 많겠지만 적어도 일본 사회의 과학하는 마음이 우리보다 앞서 있다는 점을 절감케 한다. 우리도 객관적인 국력 규모로 볼 때 과학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은 늦은 감이 있다. 이제라도 과학하는 마음을 소중히 여겨 ‘사이언티픽 코리언’의 인식이 전 세계로 퍼졌으면 한다. 그런 땅이 일궈지면 노벨상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품을 찾을 것이다.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