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으로 재구성해본 빈대떡 신사의 일대기… 아리랑빈대떡집의 쫄깃한 맛의 비결
“"돈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한복남이 작사·작곡하고 직접 노래까지 부른 <빈대떡 신사>의 한 구절이다. 어쩌다 노래방에서 화면에 나오는 가사를 보며 이 노래를 부를라치면 나는 부질없이 이 ‘신사’의 일생을 혼자 추적해본다.
이 신사는 구한말 또는 일제 초기 어느 시골 부잣집의 외아들이었을 것이다. 부모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자랐지만, 여느 부잣집 도련님들과는 달리 품성은 착했던 것 같다. 일찍이 경성에 유학 와 배재고보를 다니며 서양의 기독교 문화와 일본의 새 문물을 접했고, 고보 재학 중 부모의 강권으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튼튼한 시골처녀와 결혼을 했으나, 신혼의 즐거움보다는 친구들과 휘황찬란한 경성의 밤거리가 더 눈에 어른거렸을 것이다. 고보를 졸업할 즈음 아버지가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시자 그는 졸지에 큰 식솔을 거느리는 부잣집 호주가 된다. 처음 한해는 소작인들을 채근하며 농사일을 좀 건사해봤지만, 가끔 경성을 다녀올 때마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드디어 전답 일부를 팔아 친구와 함께 광산업을 하기로 한다. 그러나 광산은 제대로 되지 않아 시골땅을 계속 야금야금 팔 수밖에 없었고, 교제한답시고 총독부 관리들과 주야장창 기생집을 드나들다 보니 점차 사업은 뒷전이었다. 그렇게 몇해가 지나다 보니 광산 채굴권은 어느새 동업자 친구의 손에 가 있었고, 신사에게 남은 것은 만리재 넘어 세칸짜리 오두막과 지게미와 쌀겨를 같이 먹는 아내, 그리고 올망졸망한 5남매가 전부였다.
어느 날 딱히 용무는 없지만 아내와 아이들 얼굴 맞대고 하루종일 있기도 뭐해 모처럼 문안엘 행차했다. 무심코 종로 뒷거리를 걷다 보니 전에 자주 드나들던 기생집이 눈에 들어온다. 한숨을 푹 쉬고 그냥 지나치려는데,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른다. “내가 이 집에서 교제술로 날린 논이 몇 마지기인데, 그것을 생각하면 이년들이 술 한상은 주겠지.” 헛기침을 흥 하고 들어가니 기생들은 전후 사정을 잘 모르는지 호들갑을 떨며 버선발로 뛰어나온다. 요리 한상 시키고 정종 몇 주전자 비운 뒤 거나한 기분에 “술값은 외상!” 하니 지금까지 입속의 혀처럼 아양떨던 기생들의 눈초리가 달라진다. 사업을 들어먹었다지만 부잣집 망해도 3년은 간다는데, 이 신사는 불알 두쪽뿐인 것이다. 요릿값은 받을 길이 없고, 기생들은 처량히 대문 밖으로 쫓겨나는 이 신사의 뒤에다 대고 화풀이를 해댄다.
“에이, 재수 없어!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기생집은 왜 와”
그날 저녁, 만리재 넘어 집으로 돌아온 신사는 기생들의 악다구니대로 빈대떡을 부쳐 먹었을까 조선시대의 전통 빈대떡이라면 이 신사는 빈대떡 한장 부쳐 먹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의 빈대떡은 녹두를 맷돌에 갈아 전병처럼 부쳐 만들지만, 1670년 안동장씨가 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조리서인 <규곤시의방>이나, 1809년 빙허각 이씨가 지은 가정살림에 관한 책 <규합총서>를 보면, 빈대떡은 녹두를 가루내어 되직하게 반죽해 빈철의 기름이 뜨거워지면 조금씩 떠놓고 그 위에 꿀로 반죽한 소를 얹어놓고, 다시 그 위에 녹두반죽을 덮고 지져 만들며, 특별히 위에 잣을 박고 대추를 사면에 놓아 꽃전모양으로 호화롭게 만든다고 했으니, 궁핍한 신사가 이를 어찌 흉내내겠는가.
고속도로 경부선 수원 나들목 부근 신갈 오거리에 가면 아주 맛있는 빈대떡집이 하나 있다. 강호석(51)·임순애(47) 부부가 금슬좋게 20여년간 한자리에서 빈대떡만 전문적으로 만들어왔다. 자신감을 표현하듯 상호에 아예 ‘빈대떡’을 넣어 ‘아리랑빈대떡집’(031-282-9815)이다. 빈대떡은 100% 녹두만 넣으면 맛이 없다. 녹두가 너무 많으면 껄끄러워 입에서 뱅뱅 돌고, 또 식으면 쉽게 굳는다. 그리해서 찹쌀가루를 적당히 넣는데, 이것이 이 집의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빈대떡 맛의 비결이다. 고기를 넣은 녹두고기전, 김치를 넣은 녹두김치전이 각각 한장에 4천원인데, 두명이 막걸리 한되, 소주 한병 마시는 데 전혀 부족하지 않다.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사진/ '아리랑빈대떡'은 찹쌀가루를 적당히 넣는다. 이것이 이 집의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빈대떡 맛의 비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