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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돌 속에 숨쉬는 과거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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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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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정서가 스며있는 돌문화를 다룬 두 권의 책… 돌유적에 얽힌 흥미로운 얘기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나 고대의 흔적은 돌에 남아 있다. 녹슬지 않고, 썩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대인들은 돌을 억겁 세월을 버티는 불변의 물질로 봤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쉽게 주변에서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돌은 문명과 문화의 동반자로 인류와 함께 살아왔다.

문화재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생활속 소도구로서, 그리고 거대한 정신세계를 구현하는 종교와 예술의 소재로 돌은 우리 민족 문화를 담아온 그릇이다. 특히 동양의 여러 나라 가운데 워낙 단단해서 조각재료로는 쓰지 않는 화강암으로 불상을 쪼고 탑을 세운 나라는 우리나라뿐일 만큼 뛰어난 돌문화를 일궈왔다. 동시에 소박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서민들의 예술세계도 돌유적에서 특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돌부처만 해도 중국 윈강 석굴이나 인도의 거대한 석불처럼 거대하지 않아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간에 자연스럽게 조각돼 있어 인간미가 넘친다. 비록 이제는 콘크리트 더미가 삶터를 뒤덮어 도시에서는 돌을 보기 쉽지 않아졌지만, 전국 각지에 아직도 수많은 돌유적들이 남아 조상들이 살아가던 모습을 이야기해준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전통과 정서가 스며 있는 우리 돌문화를 다룬 새 책 두권이 나왔다. 박정근·김종대·박호원씨 등이 함께 쓴 <돌의 미를 찾아서>(다른세상 펴냄·1만원)와 <우리의 원형을 찾는다>(박정태 지음·열화당 펴냄·2만5천원)는 모두 한국 돌문화를 사진과 글을 통해 일깨워주는 책들이다.

<돌의 미를 찾아서>는 ‘돌을 떡주무르듯’ 한다는 찬사를 들은 불국사 다보탑 같은 국보급 돌예술부터 서민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는 돌장승과 남근석, 여근석, 신앙의 대상이었던 석불, 고대인들의 자취인 암각화까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주요 돌유적들을 훑는다. 그리고 각 돌유적별로 알기 쉬운 설명과 그림을 덧붙였다. 지금 보자면 낯뜨겁기도 한 남근석이 도대체 왜 만들어졌는지 현대인은 가늠하기 어렵지만, 인간이 가장 갈망하는 것이 생명 유지의 욕망이고 선사시대부터 이어져오는 선돌문화가 남근석에 투영되면서 곡식을 자라게 하는 대지의 여성성을 더욱 북돋우기 위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을 것이란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돌장승도 전라도와 경상도 같은 남부지방에 집중돼 있고 삼국시대부터 이어져오는 미륵불 신앙과 연결되는 점, 그리고 종류에 따라 수호신으로 여겨져 성문이나 사찰 입구에 세워진 것들도 있고, 풍수지리상 결함을 보완하는 비보장승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것 등 쏠쏠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딱딱하지 않게 문화재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주목받지 않는 돌유적의 멋

사진작가 박정태씨가 전국을 누비며 그림과 글을 마련한 <우리의 원형을 찾는다> 역시 분위기 넘치는 사진을 통해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이 책은 고급 문화재로 인식되지 못해 박물관에 보관되지 못한 채 점차 사라져가는 전국 각지의 선돌, 장승, 솟대와 당간 등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적 지향이 담겨 있는 것들을 소개하는 사진책이다. 그래서 꼭 돌문화로 한정짓지는 않았지만 돌문화재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다양한 돌유적들을 보여준다. 두책 모두 흑백사진이어서 돌의 거친 재질감이 컬러사진보다도 더욱 생생하게 도드라지면서 사람을 닮은 우리 돌유적들의 멋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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