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미세입자의 화장품 만드는 기술로 활용… 연료 촉매제·약물 전달체 등으로 시장 진입
30대 중반의 직장여성 유아무개씨는 화장품을 거의 사용하지 못했다. 기미가 생기고 주름이 늘어도 어쩔 수 없었다. 화장기 없는 자연스러운 피부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다. 피부에 좋다는 특별한 성분을 함유한 화장품도 원천적으로 흡수가 되지 않기에 쓸모가 없었다. 그런 유씨의 피부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일반 화장품 입자보다 100배 이상 작은 30~100nm 사이즈로 입자를 만든 ‘나노(nano)화장품’이 그의 피부에 연착륙한 것이다. 그는 요즘 첨단기술의 세례를 받아 다시 피어나는 화장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일상생활 깊숙이 들어오는 10억분의 1m 크기의 나노기술은 정보통신기술(IT)·생명공학기술(BT)과 함께 21세기 3대 첨단기술로 꼽힌다. 1㎚(나노미터)는 원자 3∼4개를 붙여놓은 정도의 크기다. 원자를 10억배 확대하면 포도알 크기가 되고, 야구공을 10억배 확대하면 지구 크기가 된다. 나노미터 크기의 물질을 제어하는 기술을 적용하면 기존의 물질로 불가능한 새로운 물리적 성질이 나타난다. 나노기술로 반도체를 개발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서적을 보유한 국회도서관을 손톱만한 반도체에 저장할 수 있다. 장기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의 염려가 없는 약품을 만들거나 얇은 봉투의 두께에도 방탄복처럼 튼튼한 섬유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더 이상 꿈의 새 기술이 아니다
나노의 세계를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1959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먼이다. 그는 원자 설계도에 따라 원자를 하나씩 쌓아가면서 조립하면 모든 물체와 장치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과학자들은 이를 실현 불가능한 몽상이라고 배척했다. 그리고 30여년이 지난 뒤 에릭 드렉슬러는 <창조의 엔진>(Engines of Creation)에서 나노기술이 건강과 식량 등 인류의 모든 생활을 바꿀 것으로 예견했다. 지금으로선 원자나 분자의 세계를 마음대로 조작해 ‘나노로봇’을 만든다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나노 크기의 기계 제작 수준의 근처에도 이르지 못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나노기술의 실용화 자체가 허황된 바람만은 아니다. 이미 몇몇 기술은 부분적으로 응용돼 상업화를 이루기도 했다. 엑슨모빌은 나노 크기의 물질인 ‘지올라이트’(Zeolites)를 촉매제로 시판하고, 질리엇 아이언시스는 약물전달에 나노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충격을 견디는 자동차 범퍼, 도장력이 뛰어난 페인트, 전자파 흡수물질을 바른 스텔스 전투기, 마모를 줄이는 타이어 코팅용 ‘카본 블랙’ 등에도 나노물질이 쓰였다. 앞으로 나노기술은 나노 크기의 물질로 미세한 재료나 기계를 만들거나, 새로운 물리현상을 응용한 장비를 개발하고, 미세한 영역의 자연현상을 예측하고 측정하는 기술 등에 쓰일 전망이다.
나노기술이 예고하는 새로운 세상, 실체를 엿보기 위해 나노화장품 속으로 들어가보자. 요즘 국내외에서 개발되는 나노화장품은 주름살 제거제, 자외선 차단제, 피부 미백제 등으로 탁월한 효능을 발휘하고 있다. 나노화장품 성분은 극미세입자로 이뤄졌다. 일반 화장품 입자보다 작은 100여nm 정도는 물론이고, 피부세포 간격인 75nm보다 작은 30~40nm의 입자로 피부 침투력을 높인 것이다. 생리활성 물질을 머금은 나노구조체는 바라는 부위에 선택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당연히 화장품을 구입하고도 피부에 받지 않아 안타까워할 일도 없다.
나노단위의 입자는 흡수력이 높게 마련이다. 입자 크기가 작아지면 입자가 받는 중력이 일반 마이크로 단위 입자보다 줄어든다. 당연히 물질의 작은 알갱이들이 주위를 둘러싼 기체 분자와의 충돌에 의한 움직임도 활발해져 침투력이 좋아진다. 또한 나노입자들은 일반적인 것보다 쉽게 변형되지 않고, 표면에서 입자들의 ‘잘못된 만남’을 방지한다. 이런 기술의 관건은 얼마나 피부에 적합한 방식으로 흡수되는가다. 태평양기술연구원 한상훈 연구원은 “생체 친화적인 지질을 이용해 나노입자를 만들어야 한다. 피부에 적합한 입자를 만들어 생리활성 물질이 안정적으로 흡수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노화장품은 단지 입자의 크기만 줄인 것이 아니다. 나노입자가 됐을 때 수용성과 지용성 성분의 경계를 흐트러뜨려 피부에 빠른 흡수를 일으킨다. 게다가 이들 제품은 나노기술을 다양한 천연성분이나 다른 기술과 접목해 성분의 효능을 높이도록 했다. 작은 입자들에 천연성분 등 전달코자 하는 성분들을 캡슐에 담아 전달력을 높이고 성분의 변질 없이 확실한 피부 흡수를 일으키도록 한 것이다. 현재 기능성 화장품의 세계시장 규모는 220억달러로 해마다 8%씩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거대시장에서 나노기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며 다른 분야로의 응용도 이뤄지고 있다.
특정 성분을 몸에 전달하는 기능이 있는 나노구조체. 화장품의 경우는 피부까지만 이르면 되기에 상대적으로 적용이 수월하다. 하지만 나노구조체에 약물을 넣으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치료약물을 담은 나노전달체가 몸에 침투해 위·심장·간 등 특정기관의 세포에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연구자들은 바이러스를 전달체로 삼으려고 했다. 예컨대 호흡기 감염을 일으키는 ‘아데노바이러스’ 등의 독성을 없애 유전자 전달체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러스성 유전자 전달체는 발현율이나 지속성 등에서 탁월하지만, 면역반응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이런 탓에 다시 약물 전달체로 인공적인 나노구조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환경지킴이로 우뚝… 수많은 난관 도사려
이제 나노기술은 미래의 새 기술이 아니다. 이미 화장품을 비롯해 반도체 메모리, 배터리 연료 등으로 활용분야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극미세 우주를 지향하는 첨단과학으로 확실하게 입지를 굳혔다. 게다가 나노기술은 지구환경의 문제를 해결할 청정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이미 의약·식품·전자·환경 분야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앞으로 10년 내에 모든 컴퓨터칩과 의약의 절반, 화학촉매의 절반 등이 나노기술을 토대로 이뤄질 것으로 예측된다. 플라스틱은 1930년대에 일상을 바꾸는 구실을 했지만, 환경문제를 악화시키고 말았다. 이에 비해 나노부품과 성분은 환경문제를 해결하면서 일상의 혁명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나노기술은 어떤 식으로 환경지킴이 구실을 할 건가. 일단 미세한 불순물을 제거할 것으로 예측된다. 음용수와 폐수용 필터시스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등을 분자 수준에서 디자인하면 청정 음용수와 연료를 생산할 수 있다. 공장에서는 폐가스에서 나오는 나노 크기의 검댕까지 제거할 수 있는 민감한 세정기를 사용하게 된다. 공기나 음용수에 있는 독성 물질을 모니터하는 센서도 등장할 것이다. 만일 이들이 서로 연결되면 지구적 환경오염과 생화학무기 분포 등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초미세제품들이 실용화되면 원료물질과 폐기물도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나노세계와 마이크로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기까지 풀어야 할 과제와 예상치 못하는 무수한 난관이 있기 때문이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사진/ 원자의 세계를 향해!. 박테리아들이 나노모터로 추진력을 얻어 목적지로 달려가는 모습을 그린 이미지. (사이언스 올제)
나노의 세계를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1959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먼이다. 그는 원자 설계도에 따라 원자를 하나씩 쌓아가면서 조립하면 모든 물체와 장치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과학자들은 이를 실현 불가능한 몽상이라고 배척했다. 그리고 30여년이 지난 뒤 에릭 드렉슬러는 <창조의 엔진>(Engines of Creation)에서 나노기술이 건강과 식량 등 인류의 모든 생활을 바꿀 것으로 예견했다. 지금으로선 원자나 분자의 세계를 마음대로 조작해 ‘나노로봇’을 만든다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나노 크기의 기계 제작 수준의 근처에도 이르지 못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나노기술의 실용화 자체가 허황된 바람만은 아니다. 이미 몇몇 기술은 부분적으로 응용돼 상업화를 이루기도 했다. 엑슨모빌은 나노 크기의 물질인 ‘지올라이트’(Zeolites)를 촉매제로 시판하고, 질리엇 아이언시스는 약물전달에 나노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충격을 견디는 자동차 범퍼, 도장력이 뛰어난 페인트, 전자파 흡수물질을 바른 스텔스 전투기, 마모를 줄이는 타이어 코팅용 ‘카본 블랙’ 등에도 나노물질이 쓰였다. 앞으로 나노기술은 나노 크기의 물질로 미세한 재료나 기계를 만들거나, 새로운 물리현상을 응용한 장비를 개발하고, 미세한 영역의 자연현상을 예측하고 측정하는 기술 등에 쓰일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