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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생명의 무대, 물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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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1-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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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자연계를 구성하는 기본요소는 대략 100여종의 원자(原子·atom)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마주치는 물질들의 성질을 유지하는 최소단위는 분자(分子·molecule)다. 분자는 원자가 갖가지 방식으로 결합해 만들어진다. 따라서 그 수는 엄청나게 많으며 이론적으로는 사실상 무한대다. 다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현재까지 약 1천만종에 이른다고 추정한다. 이토록 많은 분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런 의문이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 점을 잠시 제쳐두고 편한 마음으로 대답한다면 그것은 단연 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은 지구 표면의 약 71%를 덮고 있다. 아쉽게도 인간은 물 속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이 점을 어딘지 불만스럽게 여기는 사람도 많다. 다시 말해 육지가 좀더 넓었더라면 우리에게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물은 모든 물질 가운데 열용량이 가장 크다. 다시 말해 가열할 때 가장 천천히 데워지며, 반대로 한번 데워진 뒤에는 가장 천천히 식는다. 이러한 물의 작용은 ‘태양열의 은행’이라고 일컬어진다. 이 작용을 통해 지구가 낮 동안 너무 과열되는 것을 막아준다. 그리고 밤이 되면 비축한 열을 방출해 너무 차가워지는 것을 막아준다. 물의 이런 작용을 고려할 때 지구 표면의 물 비율은 그야말로 생명을 위한 황금비(黃金比)다.

신기하게도 우리 몸의 수분율도 약 70%다. 따라서 겉보기로는 우리 몸이 물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 몸의 모든 구성요소가 물이라는 바다 위에 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옳다. 사실 세포 하나하나를 두고 볼 때 그 안의 모든 활동은 물 속에서 이뤄진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 생명활동이란 것은 물을 무대로 펼치는 드라마다. 나아가 이는 단지 지구에만 한정되지 않는 보편적 현상으로 여겨진다. 그리하여 외계의 어느 곳에 상상을 뛰어넘는 모습의 생명체가 있다 하더라도 그 또한 필연 물에 의존해 살아갈 것으로 믿고 있다.

모든 생명활동을 뒷받침한다는 이미지에 걸맞게 최근까지만 해도 물은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마치 태양열이나 공기처럼 얼마든지 주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20세기 말부터 물 부족사태가 심각한 위협으로 떠올랐다. 급기야 최근 발표에 따르면 21세기에는 ‘물의 무기화’가 초래될 것이라고 한다. 이미 1970년대에 ‘석유의 무기화’로 인해 전 세계가 오일 쇼크에 빠진 적이 있다. 그리고 근래 들어 ‘식량의 무기화’를 자꾸 들먹인다. 산업의 부가가치는 1차→2차→3차 산업의 순으로 증대하지만 그것이 무기화됐을 때 위력은 반대로 진행한다. 물은 산업적 생산물이 아니다. 따라서 물의 무기화는 말하자면 ‘0차 산업의 무기화’라 할 것으로써 가장 막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우리의 경우에는 벼농사 위기와 맞물려 더욱 불리하다. 벼농사가 몰락하면 물의 보고인 논도 잃는다. 그에 따라 석유는 애초부터 없는 터에 그나마 아슬아슬한 물도 쌀도 빼앗겨 거의 완전한 무장해제를 당한다. 아무리 첨단산업과 정보산업의 강국인들 뿌리 없이 견딜 수는 없다. 생명활동의 무대이자 우리 국가활동의 원천인 물에 대해 하루빨리 종합적인 대책을 꾸려야겠다.

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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