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키 노부요시의 40여년에 걸친 도발적 작품세계 선보이는 '소설 서울, 이야기 도쿄'전
그것은 우연이었을까. 그가 한국을 처음 대면한 것은 부산 포장마차에서 낙지를 먹으면서부터라고 한다. 시끌시끌한 시장통에서 장 보러 나온 아줌마들과 소주잔을 부딪치며 입술에 쩍쩍 들러붙는 낙지를 씹었을 때, “한국이란 나라와 일본과의 ‘접점’이 보였다.” 시장, 골목길, 산낙지…. 그것은 그가 나고 자란 도쿄 변두리 미노와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브래지어도 안 하는 동네 아줌마들, 그리운 느낌의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 어머니 자궁 같은 느낌.” 일본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62)가 1982년 처음 만난 한국은 그렇게 다가왔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아라키의 첫 개인전 <소설 서울, 이야기 도쿄>는 그가 20년 동안 드나들며 찍은 서울과 도쿄의 ‘속살 풍경’과 40년에 걸친 작품세계를 간추려 보여주는 자리다.
논란 끊이지 않는 문제작가
아라키 하면 엽색·외설 등의 단어를 떠올릴 정도로 그의 작품은 관습에 대한 도발과 검열논란·외설시비 등으로 논란 대상이 됐다. 1990년엔 여성 성기가 보이는 작품이 ‘외설도화 진열 혐의’로 경시청에 압수되고 작가도 벌금형을 받았다. 신주쿠의 클럽 성풍속을 적나라하게 담은 사진집 <도쿄, 럭키 홀>(1997년)은 일본 현지에서 출판되지 못하는 등 그의 작품들은 법과 사회적 인식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벌여왔다. 이번 한국 전시회서도 이를 의식해 성을 줄기차게 다뤄온 아라키의 작품을 골고루 뽑아 다루되, 여성을 밧줄로 묶은 장면을 담은 <긴바쿠>(결박) 연작 등 일부 작품들에 대해선 18세 미만은 관람을 제한했고, 논란이 될 만한 사진집들은 전시회 오프닝 하루만 공개했다.
‘문제작가’로서 일으키는 파문과 비례해 그가 일본 안팎에서 받는 찬사는 대단하다. 워낙 작품 양이 많은 작가기도 하지만, 이제까지 출간한 작품집이 250권이나 된다. 서점에 가면 ‘아라키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을 정도다. 2000년 10월엔 독일 타센 출판사에서 150만원짜리 사진집 < ARAKI BY ARAKI >를 발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일본 사회에선 인기도가 연예인과 비슷하다고 할 만한데, 우리나라 TV로 치면 <연예가 중계> 같은 프로에선 연예인 아무개가 아라키에게 사진이 찍혔다는 것이 뉴스로 취급되고, ‘아라키족’이라 불리는 고정 열혈팬들이 있어 아라키를 본뜬 캐릭터 상품도 팔린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금호동 재개발 동네의 풍경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반쯤 헐린 집들 사이로 천진한 표정의 어린 소녀가 무심히 지나간다. 바람처럼 지나가는 꼬마의 기운이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생명의 빛깔로 채색한다. 이 사진 옆으론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서울과 도쿄의 풍경을 담은 <소설 서울, 이야기 도쿄>가 한 벽면 빼곡이 붙어 있다. 서울엔 ‘소설’(novel), 도쿄엔 ‘이야기’(story)란 단어를 쓴 까닭은, 그간 서울의 변화 속도와 양상이 너무 빨라 도쿄를 앞지를 정도로 일사분란하게 진행됐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은 “호텔 욕실에서 상대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팬티 스타킹을 빠는 못 말리는 한국 여자”에 대한 감탄과 비슷한 것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변화의 속도에 대한 우려기도 할 것이다. 달동네 골목길, 재래시장, 피서지, 군밤장사, 피부치료사, 식당, 결혼식장…. 아라키는 사진 집합군을 통해 휙휙 변해가는 두 도시의 숨가쁨을 ‘수다쟁이’처럼 풀어놓는다.
도시의 큰길 뒷골목엔 먹을 것, 마실 것, 취할 것들이 펼쳐지게 마련이다. <식정>은 한국의 음식들을 링 스트로브로 접사촬영해 찍은 작품들이다. 김치·깨·곱창·낙지·굴비처럼 늘 보던 음식들이지만 질감과 윤기가 워낙 또렷하고 생생하게 표현돼 ‘날 깨물어보지 않겠어요’라는 메시지를 발산한다. 말 그대로 ‘food desire’다. 이 욕망은 <에로토스>에 가면 성적이면서도 죽음을 암시하는 추상 이미지를 통해 터질 것 같은 관능과 함께 공존하는 죽음의 세계를 보여준다.
아라키가 수없이 많은 여성을 찍어왔고, 또 많은 여성에 둘러싸여 살아왔지만, 그의 작품의 중심은 늘 아내 요코였다. <센티멘탈 저니, 윈터 저니>는 그를 모델로 한 영화 <도쿄 맑음>(다케나카 나오토 감독)과 연관이 깊은 작품이다. 요코와의 신혼여행 기록과 그녀의 죽음을 전후로 한 모습의 사진을 모았다. “여성을 찍지 않는 사진가는 사진가가 아니거나 삼류 사진가”라고 말할 정도로 일찍부터 여성을 주된 작업 주제로 삼은 아라키는 요코를 만나기 전까지는 “여체를 일방적으로 섹스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다. 요코를 알고부터 나는 진정으로 눈앞에 있는 여성과 자신과의 ‘관계’를 포착하기 시작했다.” <…윈터 저니>는 그처럼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아득한 심정이 흑백 풍경 속에 고요히 머물러 애틋함을 자아낸다.
2층에 전시된 <긴바쿠> 시리즈는 아라키가 평생 해온 작업 가운데 하나로 오랫동안 라는 잡지에 연재돼왔다. 대들보에 매달리거나 기둥에 묶여 있는 여성들은 고깃덩이처럼 묶인 몸의 제약에 비해 너무나 천연덕스러운 표정이다. 아라키는 “여성의 마음은 묶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육체를 묶는다. 밧줄은 마치 팔을 드리우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긴바쿠> 시리즈는 여체 중간중간에 찌그러진 병, 묘비가 가득한 공원묘지 등을 삽입해 기괴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것이 바로 ‘생과 사의 비빔밥’
300점이 넘는 < A의 일기 2002. 1.1~8.15>는 올해 1월1일부터 8월15일까지 찍은 기록이다. 사진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작품세계가 왜 그렇게 두껍고 넓은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는 쉴 새 없이 찍어댄다. 또 쉽게 찍는다. 친밀하고 가까이 있고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에 대해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뜻에서다. 1960년대 중반 황량한 도시 속에서도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은 소년 <사친>의 표정을 담아 작가로 우뚝 선 이래 그는 수많은 실험과 변주를 시도해왔다. 하지만 그 실험을 에둘러가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은 정서적인 동력이 유년시절부터 든든히 자리잡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 미노와 근처엔 요시와라라는 유명한 홍등가가 자리잡고 있었고, 가까이는 연고 없는 매춘부들이 묻히는 묘지가 있었다. 어린 아라키는 그 묘지를 놀이터 삼아 뛰놀며 자라났다. 아라키가 이번 전시의 주제로 이름붙인 ‘생과 사의 비빔밥’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2003년 2월23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문의 02-2020-2055).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사진/ <도쿄코메디>연작.

사진/ <색경·色景>(왼쪽), <꽃> 연작(오른쪽).

사진/ <도쿄코메디>연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