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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경제동물, 그 내면의 통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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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1-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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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 강준만의 현대사 읽기 1탄… 개발과 독재로 점철된 70년대 격변기의 풍경들

사진/ 한국 현대사 산책-1970년대 편,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왜 우리는 박정희를 잊지 못하나. 한국 사회에서 이 물음의 의미는 여전히 근본적이다. ‘박정희’로부터 한국의 정치·사회·경제·문화 지형을 이해하는 단초가 열리며 정서적 구조의 토대가 나뉜다. 그로부터 편이 갈린다.

우리 시대 가장 예리한 논쟁의 지점을 건드리며 활동하고 있는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의 <한국현대사 산책>은 여기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앞으로 3년 동안 20권 정도 발간될 예정인 이 시리즈는 우선 1970년대에서부터 첫 장을 열었다. 1970년대 편은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란 부제를 달고 모두 세권으로 묶였다. 강 교수는 내년 3월 80년대를 3권짜리로 펴낸 뒤 4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묶어 출간할 계획이다. 그가 70, 80년대를 먼저 주목한 이유는 이때가 “한국인의 ‘경제동물화’가 이뤄진 시대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신드롬’은 경제동물로서의 한국인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이 경제동물임을 인정하면서 계속 경제동물로 살겠다면 그게 문제될 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인들은 그걸 인정하지도 않을뿐더러 입으로는 아주 고상한 것들도 추구한다고 말합니다. ‘박정희 신드롬’이 일면서도 민주정권(김영삼, 김대중 정권)들을 민주화와 인권의 잣대로 비판하는 것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다중인격성은 상당 부분 현대사에 대한 무지 또는 왜곡된 인식에 있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방대한 자료에 바탕해 현대사 재조명


이 사전작업으로 그는 십여년 전부터 논문과 정기간행물, 신문 등 관련 자료를 수집해왔다고 한다. 책이나 정기간행물들을 읽으면서 빈 여백에 끊임없이 메모를 하고 다시 중요한 것들은 여러 항목으로 분류된 자료에 몇줄씩 써서 집어넣는 방법으로 1만여개 파일을 정리해왔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한국현대사 산책>은 한가롭게 소요하는 지식의 정원이 아니다. 쉽고도 박진감 넘치는 문체는 독자를 시대 속으로 빨아들여 현장의 가파른 언덕을 숨가쁘게 타고 넘게 만든다. 수출 증산책, 닉슨독트린, 7·4남북공동성명, 사채동결조처, 절미운동, 포크음악의 유행, 베트남특수, 중동진출, 조선·동아 기자해직사태, 의문사, YH노조 등 각 분야의 사건이 망라돼 있다.

이 중에서 지은이가 1970년대를 대표하는 두 가지 상징으로 꼽는 것은 ‘경부고속도로와 전태일’이다. 1970년 7월 준공된 경부고속도로는 개발독재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개발시대의 금자탑은 노동자들의 희생 없이는 솟을 수 없었다. “낙원으로의 지름길로 선전되던 고속도로 끝에는 지옥 같은 도시의 ‘다락방’이 있었다.” 70년 11월13일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의 분신은 자신들이 시대의 고민을 떠안으며 산다고 믿어온 지식인과 학생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노동운동의 불꽃이 점화했다.

지은이는 ‘죽은 전태일’과 ‘남은 경부고속도로’ 사이에서 70년대의 얼굴로 무엇을 택하겠느냐고 물으며 70년대의 빛과 그늘을 차근차근 짚어나간다.

경부고속도로는 한국 경제를 바꾼 사건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건설 과정이 박정희 시대의 특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으니 “세계에서 가장 싼 건설비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공사를 마친 것”이었다. 이 고속도로는 1971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개통 공기를 1년 앞당기는 바람에 건설 중 사망자가 77명이나 나왔으며, ‘선 개통, 후 보완’이란 원칙 아닌 원칙으로 후일 1990년 말까지 건설공사의 4배에 달하는 땜질공사 비용이 들었다. 또한 경부고속도로는 이후 증폭되는 지역갈등의 ‘물증’이었다. 개통 뒤 영남에 개발이 집중되면서 호남의 이촌향도 현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당연히 전라도인들의 소외감은 날로 커져갔고, 이는 뚜렷이 ‘표심’으로 나타났다. 경부고속도로는 번영과 분열을 함께 실어나른 것이었다.

극단적인 비판과 찬사가 오락가락하는 새마을운동에 대해서도 지은이는 객관적인 태도를 취한다. 처음에 새마을운동은 남아도는 시멘트를 처분할 수 있는 아이템을 개발하는 데서 비롯됐다. 지붕개량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박정희는 초기엔 정치화를 지양하고, 조국 근대화에 ‘근면, 자조, 협동’의 미덕으로 사심없이 매진할 수 있는 인간성의 개조를 꿈꿨다. 물론 이 방식은 늘 각 도·시·군·면 단위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할 수 있는 군사작전식이었다. 그러다 10월유신을 맞으며 새마을운동은 ‘국가시책의 최우선 과업’으로 둔갑한다. 유신 이념과 연결된 정치적 국민운동으로 본격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학자로서 시대를 풍미한 가요·드라마·영화 등 문화산업을 빼놓지 않고 담은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당대 톱스타가 총출연한 <팔도강산>은 노부부가 출가한 딸들의 집을 찾아다닌다는 내용인데, 말 그대로 팔도를 유람하며 정권이 이룬 경제발전을 찬양하는 대표적인 70년대식 ‘정책홍보성 드라마’였다. 이 밖에도 인문학·문학 VS 사회학·정치학 구도로 논쟁이 번진 ‘청년문화’ 논쟁, MBC대학가요제가 불붙인 그룹사운드 붐 등 당대의 분위기를 전하는 에피소드들이 흥미롭다.

문화적 접근 시도… 시대의 이중성들

하지만 무엇보다 70년대 한국인에게는 “박정희가 삶의 일부였다”. 79년 10월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울린 총탄에 그가 스러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느낀 것은 충격이자 상실감이었다. 지은이는 지금까지도 일부 박정희 예찬론자뿐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에게 ‘군사독재 멘탈리티’가 남아 있다고 본다. 이는 “자유를 한껏 누리고 그걸 양보할 뜻이 전혀 없으면서도 권위주의적 체제가 제공했던 질서정연한 통제와 강력한 리더십을 동경하는 이중의 정신상태”를 뜻한다. 이런 이중성은 자기들이 이룬 성장을 뻐기는 ‘졸부 근성’이면서 ‘피땀 어린 노력’에 대해선 지나치게 겸허한 ‘자만과 자학’의 모순이다. 지은이는 박정권 치하에서 탄압받던 민주화 투사들이 정작 집권하자 ‘박정희 신드롬’이 열병처럼 번진 것도 이 모순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한다.

“어쩌면 우리는 김대중식 민주주의는 원 없이 누리면서 박정희식 리더십을 바라는 일종의 정신착란 상태에 빠져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된 책임은 민주화 투사 출신으로 집권했던 김영삼과 김대중에게도 있다. 그들이 받은 탄압은 과대포장되어 왔다. 비극은 그들이 그러한 과대포장을 즐겼으며 또 스스로 과대포장에 앞장섰다는 점이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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