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연예인이 연출하는 ‘이미지 게임’… 그들의 정치적 조우에 알맹이는 있나
아르헨티나의 한 방송사에선 요즘 신랄한 정치풍자 코미디쇼가 큰 인기라고 한다. <카이가 킹 카이가!>(누가 넘어지든지!)라는 제목의 오락 프로그램은 젊은 리포터들이 부패 정치인들에게 공식석상에서 무작정 마이크를 들이대는 돌격 인터뷰 형식인데, 시청률 1위 프로의 TV카메라 앞에서 화내지도 웃지도 못하고 쩔쩔매는 정치인들의 어정쩡한 표정이 주요 볼거리라고 한다. 부패한 정치인을 조롱하는 소재야 어느 국가에서나 소중한 코미디의 소재지만, 아직 이 정도의 리얼함은 우리나라 TV에선 불가능할 듯하다. 실상이야 어떻든 우리 국민은 한국 정치인들이, 온 국민을 극빈자로 내몬 아르헨티나의 정치인들처럼 썩어 있다고는 생각지 않기에 말이다.
‘열린무대’에서 시너지 효과 기대
전통적으로 TV·영화·가요 등의 대중문화와 정치인들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다. 이유는 양쪽에 다 있다. 대체로 대중스타와 가까이하는 정치인들은 본인들의 보수적 신뢰도를 손상받는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남녀 관계의 경우, 추악한 섹스 스캔들의 단골소재가 되기도 한다. 정치인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반대로 연예인이 정치색을 띠는 경우는 조금 더 치명적이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수많은 팬들을 잃을 수 있다. 이건 그들에게 수입의 감소를 뜻하므로 상당히 조심스러운 문제가 된다. 그래서 두 집단의 만남은 대체로 음지에서 이루어진다.
그런 그들이 급속하게 양지에서 친해지는 주기가 있다. 5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대선철은 결연의 백미다. 대선철이 되면 연예가는 술렁인다. 이런저런 연예인 압력단체의 회장선거에는 필요 이상의 열기가 넘쳐난다. 심지어 연예인축구단 같은 소규모 친목모임도 자의반 타의반 줄서기가 시작된다. 가수·탤런트·개그맨 등 다양한 분야의 ‘대중스타’들이 난데없이 ‘9시 뉴스’ 화면 한쪽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한다. 대개는 지역연고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정치적 신념에 의한 현실참여인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개중에는 ‘한철장사’ 차원의 정치 캠페인 참여도 있다. 어차피 자신의 얼굴과 지명도가 필요한 곳에 가서 정당한 노동을 해주고 대가만 받으면 된다는 투철한 직업의식이, 일부 연예인들로 하여금 오전엔 여당행사에, 오후엔 야당행사에 얼굴을 비추게 한다. 사실 그다지 정치적으로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그 정도 메뚜기를 솎아내는 정도의 정치의식이라면 의무교육을 마친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갖추고 있으니까, 돈 벌 사람은 벌어야 한다. 정치인과 연예인의 견우와 직녀 같은 정기적 조우는, 숨은 ‘출생의 비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해 정치인과 연예인은 같은 DNA를 가지고 태어난 이복형제 같은 관계다. 얼굴은 다를지라도 행동양태에서는 비슷한 점이 많다. 공통점의 요지는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느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그들이 철저히 가꿔진다’라는 점이다. 그 집단이란 좁게 보면 정당이나 연예 에이전시고, 넓게 보면 지역구민(한국 대선의 경우엔 ‘지역감정’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과 팬들이다. 정치인이든 연예인이든 직업적 지지기반인 이익집단이 없으면 존재가치가 사라진다. 거꾸로 말하면 이익집단의 필요나 수요에 의해 그들이 ‘창조’됐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창조될 뿐 아니라 자주 가꿔진다. ‘가꿔진다’라는 단어에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실제로 실력 없는 많은 정치인들이 지명도만으로 권세를 누리고, 재능 없는 많은 연예인들이 인기도만으로 스타의 지위를 누린다. 그와 정반대의 의미로 지지기반 없는 모범행정가와 노래 잘하는 못생긴 가수들 사이에도 공통점이 있다. 분에 넘치는 권세, 그 상업적 재활용
요컨대 정치인과 연예인이라는 두 직군의 공통점은, 실질과는 큰 연관이 없는 ‘이미지 게임’의 선수들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들이 이 게임에서 늘 이기기만 하는 건 아니다. 운좋은 데뷔작으로 하루아침에 뜨기도 하고, 충격적 스캔들로 나락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이미지 게임의 승률에서, 현실과 큰 관계가 없는 대중스타와의 게임에선 팬들의 승률이 높지만, 당장 삶의 질을 놓고 겨루는 정치인과 유권자들과의 대결에선 유권자들이 형편없는 전적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DNA의 유사성에서 비롯된 두 직군 간 밀애는, 근본적으로 도랑치고 가재잡는, 누이좋고 매부좋은 관계, 즉 흔한 말로 ‘시너지 효과’를 노리게 된다(최근 IT업계나 영화계에서 이 단어는 주로 눈먼 투자자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실질가치를 뻥튀기할 때 쓰곤 한다). 그래서 종종 서로 간의 사상적 본질과는 상관없는 합종연횡이 펼쳐지곤 한다. 예를 들면 보수적 정치인이 자신의 진보성을 보완하기 위해 진보적 연예인에게 손을 뻗는 경우 같은 것이다. 대표적 예로는 DJ가 ‘DJ DOC’와 손을 잡고, 클린턴이 같은 10대 채널의 쇼에서 색소폰을 부는 일 따위다. 대통령 선거 같은 국가대사에서 ‘진보성’ 또는 체제혁신의 이미지가 둘 사이의 상업적 윤활유로 쓰이는 이런 관계를 나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그 스타의 ‘진보성‘이라는 것마저 필요에 의한 일종의 제스처였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평생을 지녀온 나름의 신념과 정치색을 갖고 후보를 지지하는 중견 연예인들과는 다른 경우다. 어차피 그들이 가진 초라한 흡인력으로는 표심(票心)을 움직이진 못한다. 그러나 10~20대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젊은 스타들의 경우는 다르다. ‘진보성’이라는 그들의 정치색도 혹시 목적성을 띤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을 살펴봐야 한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진보적이라서 스타가 된 건지, 스타라서 진보적이고 싶어하는지 모호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중문화는 기본적으로 진보적 색채를 띠어야 잘 팔린다는 속성이 있다. 반항과 자유, 파격과 혁신은 대중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가장 안정적인 흥행소재다. 마치 록스타와 마약 간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종종 필요에 의해 진보성을 슬쩍 빌리는 스타들이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30대쯤의 어른이 돼서야 알아차린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10~20대 젊은이들의 경우다. 그들이 어떤 수준의 정치적 식견이 있는지와 상관없이 투표권은 공평하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수도 많다.
현란한 분장 너머의 진실을 찾아라
방송이든 영화든 이 바닥(이 업계 종사자들이 자조적 기분이 들 때 쓰는 단어다. 비슷한 뉘앙스가 있는 정치용어로는 ‘정치판’ 같은 게 있다)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신인 스태프들에게 선배들이 해주는 충고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얼굴에 분바르는 자들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신인들은 처음엔 그 명제의 심각성을 잘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마치 우리 국민이 근현대사에서 수없이 목격한 당선 정치인들의 국민 기만행위처럼, 톱스타가 된 옛 친구들의 달라진 목례각도나, 통화 횟수의 변화 같은 소소한 절망들을 경험하면 그때서야 깨닫는다. 두 집단 모두 얼굴에 분 바르고, 가짜 웃음을 짓는 데 ‘선수’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정치인과 연예인의 결연을 접하는 우리는 더욱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만 한다. 그들의 현란한 분장이나 화려한 공약 뒤에 진정한 정강정책과 신념이 있는지를 말이다. 이건 어려울 것도 없는 ‘이미지 게임’의 진행요령일 뿐이다. 매번 게임에서 질 수는 없지 않은가.
김일중/ 방송작가

사진/ 정치인과 연예인의 공생을 위한 '짝직기'가 대선을 앞두고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들은 화려한 공약과 현란한 분장으로 표심을 붙들기 위한 이미지 게임을 벌인다. (이용호 기자)
그런 그들이 급속하게 양지에서 친해지는 주기가 있다. 5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대선철은 결연의 백미다. 대선철이 되면 연예가는 술렁인다. 이런저런 연예인 압력단체의 회장선거에는 필요 이상의 열기가 넘쳐난다. 심지어 연예인축구단 같은 소규모 친목모임도 자의반 타의반 줄서기가 시작된다. 가수·탤런트·개그맨 등 다양한 분야의 ‘대중스타’들이 난데없이 ‘9시 뉴스’ 화면 한쪽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한다. 대개는 지역연고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정치적 신념에 의한 현실참여인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개중에는 ‘한철장사’ 차원의 정치 캠페인 참여도 있다. 어차피 자신의 얼굴과 지명도가 필요한 곳에 가서 정당한 노동을 해주고 대가만 받으면 된다는 투철한 직업의식이, 일부 연예인들로 하여금 오전엔 여당행사에, 오후엔 야당행사에 얼굴을 비추게 한다. 사실 그다지 정치적으로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그 정도 메뚜기를 솎아내는 정도의 정치의식이라면 의무교육을 마친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갖추고 있으니까, 돈 벌 사람은 벌어야 한다. 정치인과 연예인의 견우와 직녀 같은 정기적 조우는, 숨은 ‘출생의 비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해 정치인과 연예인은 같은 DNA를 가지고 태어난 이복형제 같은 관계다. 얼굴은 다를지라도 행동양태에서는 비슷한 점이 많다. 공통점의 요지는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느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그들이 철저히 가꿔진다’라는 점이다. 그 집단이란 좁게 보면 정당이나 연예 에이전시고, 넓게 보면 지역구민(한국 대선의 경우엔 ‘지역감정’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과 팬들이다. 정치인이든 연예인이든 직업적 지지기반인 이익집단이 없으면 존재가치가 사라진다. 거꾸로 말하면 이익집단의 필요나 수요에 의해 그들이 ‘창조’됐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창조될 뿐 아니라 자주 가꿔진다. ‘가꿔진다’라는 단어에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실제로 실력 없는 많은 정치인들이 지명도만으로 권세를 누리고, 재능 없는 많은 연예인들이 인기도만으로 스타의 지위를 누린다. 그와 정반대의 의미로 지지기반 없는 모범행정가와 노래 잘하는 못생긴 가수들 사이에도 공통점이 있다. 분에 넘치는 권세, 그 상업적 재활용

사진/ (이용호 기자)

사진/ (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