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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장군의 죽음, 조기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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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1-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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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업 장군의 한이 서린 조기가 사라지고 있다… ‘3김’이 함께 나주식당을 찾은 사연

사진/ 조기 서너 마리에 홍어·조개를 듬뿍 넣고 끓인 조기매운탕은 간밤에 2, 3차로 망가진 술꾼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영·정조 시대 언어학자 황윤석이 지은 어원연구서 <화음방언자의해>에 의하면 “조기는 중국의 종어(魚)인데, 종어가 빠르게 발음되다 보니 조기가 되었다”고 한다. 또 같은 시기에 이의봉이 편찬한 <고금석림>은 일종의 사전인데, “조기는 머리에 돌이 들어 있어 석수어(石首魚)라고도 한다. 석수어의 속명이 조기(助氣)인데, 이는 사람의 기를 돕는 것이기에 붙여졌다. 또 조기를 천지어(天知魚)라고도 했는데, 이는 조기를 말려 굴비를 만들 때 늘 지붕 위에서 말리니, 접동새나 고양이가 감히 이를 취하여 먹을 수가 없으므로 붙은 이름이다”라고 설명돼 있다.

조기는 농어목 민어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 수종의 총칭으로, 참조기·보구치·수조기·부세·흑조기 등이 이에 속한다. 참조기는 몸이 길고 꼬리 부분이 가는데, 4월 중순부터 6월 하순까지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잡히는 조기가 이것이다. 보구치는 참조기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꼬리지느러미 끝이 참빗 모양으로 생긴 것이 다르다. 수조기는 몸이 길고 납작하며 황적색을 띤다. 부세는 작은 민어와 비슷하며 적황색을 띠고, 흑조기는 부세와 비슷하며 입속이 흑색이다.

정조시대 실학자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를 보면, “추수어(水魚), 곧 조기 큰 놈은 1척 남짓하다. 모양은 면어(민어) 비슷하나 몸이 작으며, 맛도 면어와 비슷하나 더욱 담백하고, 용도도 면어와 같다. 알은 젓을 담그는 데 좋다. 흥양 바깥섬에서는 춘분 뒤에 그물로 잡고, 칠산해에서는 한식 뒤에 그물로 잡고, 해주 전양에서는 소만 뒤에 그물로 잡는다. 흑산 바다에서는 6∼7월 밤에 낚기 시작하는데, 낮에는 물이 맑아 낚시를 물지 않기 때문이다. 산란이 이미 끝났으므로 맛이 봄 것보다 못해 어포로 만들어도 오래 가지 못한다. 가을이 되면 조금 낫다. 때를 따라 물을 쫓아오므로 추수어라 한다”고 적혀 있다. 오늘날의 어류학자들이 현대적 장비를 갖추고 오랫동안 조사·연구한 내용을, 200여년 전 한 선비는 귀양 간 흑산도에서 예리한 관찰만으로 조기를 세세히 파악했으니 참으로 경탄할 일이다.

우리나라 서해안의 조기 어업은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임경업 장군과 민중사적으로 연결돼 있었다. 임경업은 조선 인조 때 무관으로, 일생을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분투한 사람이다. 병자호란 뒤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청나라가 조선에 파병을 요구하자 군사를 이끌고 황해를 건너 중국땅으로 갔는데, 명나라와 내통해 핑계를 대고 조금도 군사를 움직이지 않았다. 이후 임경업은 김자점 등 부청파에 의해, 나라를 배반하고 남의 나라에 들어가 국법을 어겼다는 죄를 뒤집어쓴 채 모진 고문 끝에 죽고 말았다.

“임 장군이 황해를 건널 때 군사들이 찬이 없다고 하니 어디에서 가시나무를 가져다가 물에 넣으니 조기가 무수히 걸려서 반찬을 했다”는 등 조기와 관련된 임경업 설화와, 나라를 위해 충성하다가 역적의 흉계로 억울하게 죽은 영웅신화가 민중들에게 각인되어 서해안 일대에서는 임경업당을 세우고 조기잡이 나가기 전에 임경업신에게 반드시 제를 올려 풍어와 안전을 기원했다. 요즈음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환경 파괴와 어족의 남획으로 서해안의 조기 씨가 말라버렸다. 하지만 나라를 위해 충성하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민중 영웅에 대한 숭앙정신까지도 미신으로 치부돼 말라버린 상태다.


광주시 전남도청 부근의 나주식당(062-223-7388)은 맛의 고향 광주에서도 알아주는 조기매운탕 집이다. 주인 박순애(73)씨는 25년 전부터 한자리에서 식당을 열어왔는데, 아직도 정정하게 새벽 4시에 문을 열고 해장 손님들을 받는다. 조기 서너 마리에 홍어·조개를 듬뿍 넣고 끓인 조기매운탕은 간밤에 2, 3차로 망가진 술꾼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1980년대 말이든가, 광주에서 ‘3김’이 함께 이 집을 찾은 적이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나와 김종철(전 연합뉴스 사장)씨, 그리고 김태홍(현 국회의원)씨를 분위기도 비슷하고 식탐이 많은 것도 비슷하다고 해 3김이라 불렀다. 당시 나는 이 집에서 처음 맛보는 토하젓에 밥 비벼 먹으랴, 조기매운탕에 소주 한잔 걸치랴, 나머지 ‘2김’을 견제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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