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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9·11 사건 ‘스크린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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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1-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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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은 올해 세계 최고의 화제작을 꼽으라면 후보에서 선뜻 제외시킬 수 없을 만큼 논쟁적이며 흥미로운 영화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대중성이 강한 영화를 주로 배치하는 오픈 시네마 부문에 이 영화를 끼워놓은 건 의아스러우면서도 당연해보이기도 한다. 미국 바깥에서 9·11 사건을 다뤘기에 그러겠지만 한 영화 안에 이렇게 정반대의 눈길이 담긴 것을 보여주는 작품을 또 만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프랑스 자본으로 만든 이 영화에는 다양한 국적의 감독 11명이 만든 11편의 단편으로 구성됐다. 제작자는 감독들에게 사건의 충격적 이미지보다 그 사건이 전 지구적으로 끼친 여파에 대해 이야기할 것을 요청했고, 감독들의 예술적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존중됐다.

유일한 미국 감독인 숀 펜의 작품은 영화적 흥미와 함께 계급비판적 의식을 동시에 담았다. 배우로 더 유명한 숀 펜이지만 이미 장편영화 세편을 만든 이력에 걸맞게 코믹하면서도 극적인 반전이 인상적이다.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가려 빛이 들지 않는 구석방에 살고 있는 노인은 먼저 세상을 뜬 아내가 마치 옆에 살아 있는 듯한 태도로 처량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내가 좋아한 꽃은 창가에 놓여 있지만 빛을 쬐지 못해 시들었다. 노인이 아직 깨어나기 전 빌딩이 무너져내리며 노인의 집에는 빛이 찾아든다. 시든 꽃은 환히 되살아난다. 환한 빛에 잠을 깬 노인은 영문도 모른 채 함박 웃음을 짓는다.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건 영국의 켄 로치, 이집트의 유세프 샤힌과 이스라엘 아모스 지타이, 멕시코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나리투다. 후자쪽은 테러의 비극성과 해악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한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폭탄 테러를 9·11 테러와 병치하거나(아모스 지타이), 암흑의 화면 속에서 사건 현장을 그대로 담은 음향을 계속 들려주다가 이따금씩 무역센터에서 떨어져내리는 사람들을 슬쩍 보여줘 시청각적으로 충격을 준다(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나리투). 켄 로치와 유세프 샤힌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따져묻는다. 켄 로치는 1973년 9월11일 칠레에서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아옌데 정부를 전복한 피노체트 쿠데타가 미국의 원조로 일어났음을, 그 결과 어떤 비극이 이어졌는지를 증언한다. 9·11의 비극은 미국이 자초한 것임을 논증하는 이 작품은 미국 언론으로부터 비판받았지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의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받았다. 유세프 샤힌은 83년 베이루트 폭탄 테러에서 숨진 미 해병과 테러를 가한 팔레스타인 청년을 동시에 등장시킨다. 미 해병이 “어쨌든 민간인을 죽여선 안 된다”고 하자 팔레스타인 청년은 미국이 행하는 폭력 때문에 베트남·이라크 등에서 수백만명의 민간인이 죽은 사실을 상기시킨다.

인도의 미라 네어 감독은 9·11 사건 이후 경직된 미국 사회가 만든 웃지 못할 사건을 재현했다. 회교도 청년으로 록펠러 대학 연구조교인 살만이 사건 직후 갑자기 실종된다. FBI와 언론은 그를 테러범으로 몰아가고 살만의 부모는 정부가 아들을 잡아다가 어딘가 가둬뒀다고 믿는다. 6개월 뒤 진실이 밝혀진다. 사건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도와주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이다. 살만은 테러범에서 갑자기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이밖에 사미르 마흐말바프(이란), 클로드 를르슈(프랑스), 다니스 타노비치(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이드리사 우에드라고(부르키나 파소), 이마무라 쇼헤이(일본) 등이 참여해 개성 넘치는 작품을 보여준다.

부산=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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