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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클래식에 날개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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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1-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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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DVD 출시로 주목받고 있는 신생 제작사들… 거장의 생생한 공연 실황이 안방에 몰려온다

사진/ 베토벤, 바이올린: 안네 조피무터, DG
CD와 비디오 테이프, 하드 디스크 등 모든 종류의 저장 매체들을 한꺼번에 대체하기 위해 개발한 DVD는 디지털 세기를 대표하는 하나의 트렌드이자, 심각한 경기 침체 속에서 이례적으로 해마다 300% 이상의 급성장을 보이는 현재 가장 각광받는 산업분야다.

하지만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어나가는 영화보다 DVD 시장 진출이 상대적으로 늦은 클래식 영상 DVD는 2001년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출시·수입되기 시작했다.

DVD의 전신인 LD 시절에 클래식 영상 시장을 주도한 유니버셜과 소니뮤직의 DVD들은 과거에 LD로 발매된 영상물들의 재탕 수준에 머물고, 퀄러티도 4 : 3 영상에 돌비 서라운드 수준의 음질만으로 출시됨으로써 애호가들을 실망시켰다. DVD라는 매체의 특성을 제대로 살린 클래식 DVD에 대한 열망을 채워주는 타이틀은 메이저 음반사들이 아니라 DVD 시대에 들어와 새롭게 출발한 신생 레이블들을 통해 발표되기 시작했다.

제작비 절감 효과도


사진/ (1) 바흐, 첼로:요요마, Sony (2)모차르트, 지휘: 가디너, Archiv (3)로스트로포비치, 알라냐 외 BBC (4)블롬슈테트, 뮬로바 외, Arthous (5)바그너, 지휘: 제임스 레바인, DG (6)바이올린: 오이스트라흐, EMI.
2000년 하반기부터 수입되기 시작한 아트하우스의 DVD들은 16 : 9 비율의 아나몰픽(anamorphic) 와이드 화면과 DTS(Digital Theater System)나 돌비 디지털 5.1 채널 사운드 등 DVD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우수한 화질과 음질로 애호가들을 놀라게 했다. 저명한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 발레단들이 밀집된 유럽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를 비롯한 여러 TV 방송사들이 중요한 콘서트나 공연들을 공동으로 기획·촬영해 위성을 통해 전 세계에 중계했다. 방송사들은 이런 공연을 대부분 16 : 9 비율의 HD 방송용 카메라로 촬영했는데, HD 위성방송을 염두에 두고 HD급으로 제작한 이 마스터들은 DVD 제작을 위한 소스로 고스란히 활용해 최상급의 화질과 음질을 보여준다.

이처럼 유럽 방송사들의 방송용 HD 마스터를 사용한 아트하우스나 TDK, 유로 아츠 등의 제작사들의 DVD는 뛰어난 화질과 음질뿐만 아니라 유럽 현지에서 이뤄지는 중요한 공연들을 신속하게 볼 수 있도록 해주는데, 빈 필의 신년 음악회나 베를린 필의 유러피언 콘서트·질베스터 콘서트 같은 해마다 가장 비중 있는 공연과 CD로 발매된 콘서트의 실황 영상 등이 이들 레이블을 통해 속속 DVD로 출시되고 있다.

신생 제작사의 활발한 DVD 출시와 높은 품질은 기존 메이저 음반사들에도 자극을 주어 유니버셜은 최근 자사에서 만드는 모든 DVD들을 돌비 디지털보다 음질이 좋은 DTS 사양으로 발매하고 있으며, 새로운 타이틀 제작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메이저 음반사들은 발표된 지 20년이 지나 기술적 효용이 떨어지고, 만연된 불법복제로 인해 채산성이 극도로 악화된 현재의 CD 포맷을 차세대 음성 저장매체인 SACD(Super Audio CD)나 DVD-Audio로 대체해나갈 계획을 세우면서, 오페라나 발레처럼 영상 비중이 높은 장르는 CD 대신 DVD로 발매한다는 방침을 거의 확정한 상태다. 보통 CD 2∼3장에 걸쳐 수록되는 오페라 작품들을 DVD에서는 영상을 동반해도 1장 속에 모두 수록할 수 있고, 두꺼운 대본집도 DVD의 서브타이틀과 서플먼트(부가자료)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제작비와 판매가가 모두 낮춰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DVD에는 대본이나 연주자들의 프로필 같은 기본적 자료들 이외에도 연주자와의 인터뷰, 리허설 광경, 악보 등의 자료들을 서플먼트 형식으로 풍부하게 수록할 수 있기 때문에, 연주자와 감상자 사이의 벽을 낮추고 해석과 감상 사이의 거리를 더욱 가깝게 하는 한 단계 진보한 음악 감상 행위를 가능하게 해준다.

국내 DVD 제작사들의 무지

클래식 음악 감상자들 가운데 일부만이 즐긴 LD 때와는 달리 DVD는 현재 국내에 100만대에 이르는 플레이어들이 보급돼 있고, 매월 60 타이틀 이상의 DVD들이 출시될 정도로 빠르게 대중적인 보급이 이뤄짐에 따라 클래식 DVD 수요와 공급이 크게 확대됐다. 이러한 수요의 증가에 힘입어 영상은 있지만 LD 시절에는 시장의 규모가 작아 상업적 타산이 맞지 않아 출시할 수 없던 희귀한 영상물들이 DVD로 발매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EMI에서 11월 말부터 수입·배포할 예정인 ‘클래식 아카이브’ 시리즈인데, 이 DVD들에는 로스트로포비치와 리히터의 <베토벤 - 첼로 소나타 전집>을 비롯해 오이스트라흐와 코간, 길렐스, 하이페츠, 루빈스타인 등 20세기 음악계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실제 연주 모습을 볼 수 있는 흑백 영상들이 수록돼 있다.

또한 최근의 젊은 연주자들은 DVD를 홍보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 사라 브라이트먼과 샤롯 처치, 보첼리 등은 자신의 콘서트 실황이나 뮤직 비디오 형식으로 촬영한 영상을 수록한 DVD를 음반과 동시에 발매하며, 본드 사중주단은 DVD를 가장 잘 활용해 성공을 거둔 케이스로 손꼽힌다.

하지만 이처럼 활발하게 출시되는 클래식 DVD들과 이에 대한 애호가들의 적극적 관심에 비해 음악 잡지나 제작사의 대응은 미흡한 수준이어서 애호가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음악 잡지들에서 DVD를 리뷰하는 음반 평론가들 가운데 대부분은 DVD 화질이나 음질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스템조차 갖추지 않고 컴퓨터의 DVD-롬과 PC용 스피커로 DVD를 보고 연주에만 치중한 평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내 DVD 제작사들 역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전문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최근 라이선스로 발매된 <바흐-요한 수난곡 John Passion>에서는 John을 바흐의 이름 첫 글자로, Passion을 ‘수난곡’이 아니라 ‘열정’으로 잘못 해석해 <바하의 열정>이라는 기상천외한 제목으로 출시했으며, 두 제작사에서 나란히 출시한 실내악단인 일 지오르다노 아르모니코의 DVD에서는 두 제작사에서 모두 악단의 이름을 틀리게 읽어 애호가들을 한숨 짓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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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진/ AV·클래식 음반 평론가 hajin@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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