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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돼지를 아십니까,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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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1-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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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소박한 염원이 담긴 다산성의 상징… 솔밭집 ‘도드람 삼겹살’의 절묘한 맛

사진/ 돌판 위에서 포기김치와 함께 굽는 솔밭집의 도드람 삼겹살.
일상의 삶 속에서 자주 마주치는 특별한 글과 그림이 있다. 대중목욕탕의 사우나 선전 설명문이나 이발소의 그림들이 그것들인데, 나는 그것들을 볼 때마다 참 신기하다는 느낌이 든다. 전국의 대중목욕탕과 이발관 주인들이 한날 한시 한곳에 모여 결의라도 한 듯 비슷한 분위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지방 소도시거나 서울과 같은 대도시거나, 또는 허름한 동네 목욕탕이거나 휘황찬란한 특급 호텔의 사우나거나 탕이나 사우나 독에 들어가 뜨거움을 참으며 가만히 그 집의 ‘만병통치’ 사우나 효능을 설명하는 아크릴판을 읽어보면, 어느 도시 어느 등급의 목욕탕에서도 맞춤법은 물론 문장이 제대로 된 설명문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또 전국의 어느 이발관에 들어가보더라도 그곳에는 대개 딴 데서 본 ‘이발소 그림’들이 걸려 있다.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계곡에 물레방아가 돌고 있고, 상단 여백에는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써넣은 그림이거나, 어미 돼지와 어미 돼지의 젖을 빠는 7∼8마리의 새끼 돼지가 있고, 그 여백에는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푸슈킨의 시구를 적은 그림이 이발소들의 단골 소장품인 것이다.

이렇게 이발소 그림들이 통시적으로, 또 전국적으로 비슷한 소재를 보여주는 것은 한편으로는 문화예술에 대한 이발소 주인들의 ‘민중적 취향’이라는 면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돼지 그림의 경우 돼지의 왕성한 식성과 다산에서 유추되는 풍요와 번영, 재산과 부의 증식에 대한 서민들의 소박한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돼지는 생후 8∼10개월부터 시작하여 10여년간 임신이 가능하다. 임신기간 114일이 지나 새끼를 낸 뒤 한달께 젖을 떼일 쯤 되면 다시 발정을 하므로 한해에 두번 이상 번식시킬 수 있다. 또 자궁각이 길어 한 배에 6∼12마리까지 새끼를 밸 수 있으므로 한 마리의 암퇘지와 그 새끼들이 각각 별탈 없이 10여년간 계속 번식한다면 그 수는 문자 그대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돼지의 이러한 다산성 때문에 돼지꿈·돼지저금통 등 돼지와 관련된 상징들은 모두 좋은 것으로 풀이되지만, 사람들은 막상 돼지 자체에 대해서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 첫째가 돼지는 더러운 곳을 좋아한다는 오해인데, 절대 그렇지 않다. 돼지는 땀샘이 발달하지 않아 체내의 모든 수분을 오줌으로 배출하지만, 후각이 발달하여 배설하는 곳을 따로 만들어주면 냄새를 맡고 그곳에서만 배설하며 누울 곳은 깨끗하게 유지한다.

또 돼지는 왕성한 식욕으로 인해 우둔하고 욕심이 많은 동물로 여긴다. 그것도 틀린 이야기다. 돼지는 여러 마리를 같이 길러도 다른 동물과는 달리 먹이를 갖고 다투지 않는다. 또 우리의 선조들은 어미돼지와 새끼돼지들을 한 우리에 넣어 기르지 않았는데, 그것은 어미돼지가 새끼돼지에게 먹이를 양보하여 살이 찌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즈음 대규모 돼지 농장들은 사료 개발과 과학적 관리로 돼지고기의 품질을 높이고 있다. 과거 우리 선조들도 살을 찌게 하고 육질을 좋게 하기 위해 특수 사료들을 먹였다. 옛 자료를 보면 ①느릅나무잎과 스무나무잎 ②해조류와 마치라는 풀 ③삼씨와 소금 ④오동나무꽃 빻은 것 ⑤상수리 열매 등을 각각 넣어 쌀겨나 보릿겨죽을 쑤어 먹였다고 한다.

솔밭집(031-264-0715, 주인 김청자)은 10여년 전부터 수지·분당 지역에서 설렁탕과 해장국이 맛있기로 유명한 집이다. 나는 이 집의 설렁탕·해장국보다는 ‘도드람 삼겹살’을 더 좋아한다. 돌로 된 고기판을 가스레인지 위에 비스듬히 올려놓고 달군 뒤 잘 익은 포기김치와 길쭉하게 썬 삼겹살을 척 펼쳐놓으면 자연스레 김치국물이 고기에 배면서 맛있게 익는다.

그 쫄깃쫄깃한 맛에 돼지고기가 별로인 사람들도 쉽게 1인분 이상을 해치울 수 있다. 그렇다고 고기만으로 배를 채우지는 마시라. 대충 먹고 난 뒤 바로 그 돌판 위에서 남은 고기랑 김치, 파절이 등을 잘게 썰어 기름이 자르르하게 비빈 볶음밥을 맛보지 못한다면 어렵사리 솔밭집에 찾아와 순서 기다리며 자리잡은 본전을 반밖에 뽑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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