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 장애인 복지 세미나’ 연 영국대사관 이등서기관 에이드리언의 외교전략
얼마 전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한-영 장애인 복지 세미나’가 열렸다. 한국과 영국의 장애인 관련단체 전문가들이 모여 서로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주고받는 자리였다. 어느 나라든 장애인에 대한 차별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못한 게 현실인지라 한국이든 영국이든 참석한 인물들은 할 얘기가 많았다. 처음엔 언어와 문화가 다른 두 나라 간 얘기로 들리다가 어느덧 장애인에 대한 평등과 복지라는 점에서 나라 간 구별이 없어지는 듯했다. 턱시도 차림의 멋진 외교관들이나 드나들 것 같아 높게만 느껴진 대사관의 문턱이 낮아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처럼 보기 드문 행사를 준비한 이가 에이드리언 채프먼(31) 이등서기관. 그는 주한 영국대사관에 근무한 지 1년 반 되는 영국의 외무성 직원이다.
서울시내 풍경이 이상한 이유
“제가 처음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문득 서울 거리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 점이 저를 무척 놀라게 했습니다. 사실 저희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며 느낀 점이지요.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릴 적마다 아내와 제가 유모차를 들고 내리며 애를 좀 먹었어요.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어른 두 사람이서 유모차 하나 건사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휠체어 탄 장애인은 과연 어떨까 하면서 주위를 살피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는 영국도 장애인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을 전제로 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런던에서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길에서 많이 볼 수 있거든요.” 그는 한국의 장애인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면서 더욱 놀랐다. 대부분 장애인들이 문 밖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국과 영국 간 장애인 복지에 대한 형편을 서로 알게 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에이드리언은 이날 세미나의 진행을 맡았다. 영국 장애인인권위원회와 장애와 재활을 위한 왕립협회에서 온 두명의 전문가, 그리고 한국재활복지대학과 호서대학에서 온 두명의 교수가 각각 발제를 했다.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영국쪽은 자신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11번이나 좌절한 전력이 있다며 한국 장애인 단체는 아직 실망할 단계가 아니라고 격려해주었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각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걸어가야 할 길은 너무나 멀고 멀다는 말도 덧붙였다. 세계 인구 가운데 6억명이 장애인이고, 그 가운데 4억명이 아시아 지역에 몰려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대사관에서 장애인 복지문제를 얘기하다 보니 문득 장애인 문제가 외교가에서 다룰 사안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들이 겪는 차별이나 불편의 문제는 한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예컨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인천 공항에서 겪는 어려움을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똑같이 겪게 마련이다. 물론 나라마다 장애인에 대한 편의시설 제공이나 배려에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차별은 상존한다. 에이드리언은 이 점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책상물림 외교는 싫다 “저는 한국 다음에 또 다른 나라로 가서 일을 하게 되겠지요. 그러나 제가 앞으로 어느 나라에 가든 이런 문제는 항상 있을 것입니다. 서울에서의 이번 경험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나라에서도 필요한 것이 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사실 이제까지 ‘외교’는 상당히 먼 곳에서 벌어지는 일로 느꼈다. 나라 간 이해관계는 얼마나 복잡한 것이며 그것을 표현하는 ‘외교적 어법’은 또 얼마나 어렵게 보이던가. 외교가에서는 가장 화가 많이 났을 때라도 고작 할 수 있는 말이란 “참으로 유감스럽다”이다. 외교적 매너를 익히지 않은 일반인들은 어지간해서는 견디기 힘들다. “사실 외교상 업무가 대부분 일반인들과는 너무 달라서 외따로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인식한 외무성에서는 직원들에게 대사관의 책상에 앉아 있기보다는 더 활동적으로 일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발상의 전환이지요. 사무실에 앉아서 그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본국으로 보고하는 일만 할 게 아니지요. 한국 사회, 그리고 이곳에 나와 있는 다른 나라 대사관들과 더 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 경험을 나누는 일이 중요합니다. 국제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일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 세계는 전보다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나의 공동체가 돼간다는 느낌입니다. 이번 프로그램만 하더라도 앞으로 영국 장애인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영국의 장애인 관련단체들이 한국의 유관단체들과 더 긴밀하게 정보를 주고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가 외교가에 입문한 지는 꽤 오래됐다. 1988년부터다. 어릴 적 그의 꿈이 외교관이었나 “아니오. 사실 어느 날 갑자기 된 거죠. 저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사실 뭘해야 할지 몰랐어요.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여행을 하고 싶다는 거였죠.”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여행을 하며 세상 견문을 익혔다. 그럼 대학은 언제 갔나요 뭘 전공했죠 “저는 대학을 가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 국어·정치·지리학쪽에 관심이 많긴 했지요.” 인간은 실수를 통해서 배우는 존재라고 했는데 난 틀려먹었나 보다. 몇년 전 세계환경사진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사진가와 인터뷰하며 대학 운운했다가 에이드리언이 한 대답과 똑같은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왜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은 모두 대학을 나왔을 거라고 단정짓는가 “여행을 하며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외무성에 들어가 일하기로 마음먹은 거지요. 응시자가 많았는데, 다행히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벨기에와 파키스탄에 이어 한국에서 근무 중이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새로운 문화를 가진 사회에서 일해야 하는 자신의 직업을 매우 좋아한다. 일이 즐겁다. “언제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기분으로 일합니다. 때로는 아주 새로운 분야의 일을 익히며 스스로의 능력을 시험하는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영국 최첨단 보안시스템 개발에 대한 서울 홍보를 위한 행사가 있었어요. 생전 처음 보는 단어를 익히느라 애 좀 먹었지요.” ‘에이즈 세미나’도 열어 그는 매사 긍정적인 면을 더 많이 생각한다. 그것이 외교관에게 필요한 성품이냐고 물었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삶에는 진정한 열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열정은 긍정적인 자세가 우선 돼야 가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늘 새로운 문화를 접할 때 그것에 대한 배움의 열정을 위해서라도 긍정적이어야지요.” 에이드리언은 의외로 한국의 추운 겨울 날씨를 좋아한다. 지난해 겨울은 별로 춥지 않아 다소 실망했을 정도. “날씨는 춥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하늘이 푸르잖아요. 햇살은 얼마나 밝고 맑은데요. 영국처럼 날씨가 습하지 않아 아주 좋아요.” 두살배기 딸인 조지아가 무럭무럭 자라고, 교사인 그의 부인은 지금 서울에 있는 영국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얘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동료인 크리스 심스 서기관을 만났다. 에이드리언은 그가 이번 세미나에 앞서 ‘에이즈에 관한 세미나’를 진행했다고 소개해주었다. 외교를 복지관련 세미나로 풀어가는 ‘젊은 세대’ 외교관들이 풋풋하게 보였다. 새롭고 참신한 그들의 ‘외교전략’이 언젠가 지구촌을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자유기고가

사진/ 주한 영구대사관에서 한국과 영국의 장애인 관련단체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연 '한-영 장애인복지 세미나'. 에이드리언은 이날 세미나의 진행을 맡았다.

사진/ 에이드리언 채프먼 이등서기관. 1988년 외교가에 입문한 그는 여행을 하면서 세상 견문을 익혔다. (박승화 기자)
물론 그는 영국도 장애인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을 전제로 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런던에서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길에서 많이 볼 수 있거든요.” 그는 한국의 장애인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면서 더욱 놀랐다. 대부분 장애인들이 문 밖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국과 영국 간 장애인 복지에 대한 형편을 서로 알게 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에이드리언은 이날 세미나의 진행을 맡았다. 영국 장애인인권위원회와 장애와 재활을 위한 왕립협회에서 온 두명의 전문가, 그리고 한국재활복지대학과 호서대학에서 온 두명의 교수가 각각 발제를 했다.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영국쪽은 자신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11번이나 좌절한 전력이 있다며 한국 장애인 단체는 아직 실망할 단계가 아니라고 격려해주었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각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걸어가야 할 길은 너무나 멀고 멀다는 말도 덧붙였다. 세계 인구 가운데 6억명이 장애인이고, 그 가운데 4억명이 아시아 지역에 몰려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대사관에서 장애인 복지문제를 얘기하다 보니 문득 장애인 문제가 외교가에서 다룰 사안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들이 겪는 차별이나 불편의 문제는 한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예컨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인천 공항에서 겪는 어려움을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똑같이 겪게 마련이다. 물론 나라마다 장애인에 대한 편의시설 제공이나 배려에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차별은 상존한다. 에이드리언은 이 점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책상물림 외교는 싫다 “저는 한국 다음에 또 다른 나라로 가서 일을 하게 되겠지요. 그러나 제가 앞으로 어느 나라에 가든 이런 문제는 항상 있을 것입니다. 서울에서의 이번 경험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나라에서도 필요한 것이 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사실 이제까지 ‘외교’는 상당히 먼 곳에서 벌어지는 일로 느꼈다. 나라 간 이해관계는 얼마나 복잡한 것이며 그것을 표현하는 ‘외교적 어법’은 또 얼마나 어렵게 보이던가. 외교가에서는 가장 화가 많이 났을 때라도 고작 할 수 있는 말이란 “참으로 유감스럽다”이다. 외교적 매너를 익히지 않은 일반인들은 어지간해서는 견디기 힘들다. “사실 외교상 업무가 대부분 일반인들과는 너무 달라서 외따로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인식한 외무성에서는 직원들에게 대사관의 책상에 앉아 있기보다는 더 활동적으로 일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발상의 전환이지요. 사무실에 앉아서 그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본국으로 보고하는 일만 할 게 아니지요. 한국 사회, 그리고 이곳에 나와 있는 다른 나라 대사관들과 더 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 경험을 나누는 일이 중요합니다. 국제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일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 세계는 전보다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나의 공동체가 돼간다는 느낌입니다. 이번 프로그램만 하더라도 앞으로 영국 장애인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영국의 장애인 관련단체들이 한국의 유관단체들과 더 긴밀하게 정보를 주고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가 외교가에 입문한 지는 꽤 오래됐다. 1988년부터다. 어릴 적 그의 꿈이 외교관이었나 “아니오. 사실 어느 날 갑자기 된 거죠. 저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사실 뭘해야 할지 몰랐어요.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여행을 하고 싶다는 거였죠.”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여행을 하며 세상 견문을 익혔다. 그럼 대학은 언제 갔나요 뭘 전공했죠 “저는 대학을 가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 국어·정치·지리학쪽에 관심이 많긴 했지요.” 인간은 실수를 통해서 배우는 존재라고 했는데 난 틀려먹었나 보다. 몇년 전 세계환경사진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사진가와 인터뷰하며 대학 운운했다가 에이드리언이 한 대답과 똑같은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왜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은 모두 대학을 나왔을 거라고 단정짓는가 “여행을 하며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외무성에 들어가 일하기로 마음먹은 거지요. 응시자가 많았는데, 다행히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벨기에와 파키스탄에 이어 한국에서 근무 중이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새로운 문화를 가진 사회에서 일해야 하는 자신의 직업을 매우 좋아한다. 일이 즐겁다. “언제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기분으로 일합니다. 때로는 아주 새로운 분야의 일을 익히며 스스로의 능력을 시험하는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영국 최첨단 보안시스템 개발에 대한 서울 홍보를 위한 행사가 있었어요. 생전 처음 보는 단어를 익히느라 애 좀 먹었지요.” ‘에이즈 세미나’도 열어 그는 매사 긍정적인 면을 더 많이 생각한다. 그것이 외교관에게 필요한 성품이냐고 물었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삶에는 진정한 열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열정은 긍정적인 자세가 우선 돼야 가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늘 새로운 문화를 접할 때 그것에 대한 배움의 열정을 위해서라도 긍정적이어야지요.” 에이드리언은 의외로 한국의 추운 겨울 날씨를 좋아한다. 지난해 겨울은 별로 춥지 않아 다소 실망했을 정도. “날씨는 춥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하늘이 푸르잖아요. 햇살은 얼마나 밝고 맑은데요. 영국처럼 날씨가 습하지 않아 아주 좋아요.” 두살배기 딸인 조지아가 무럭무럭 자라고, 교사인 그의 부인은 지금 서울에 있는 영국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얘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동료인 크리스 심스 서기관을 만났다. 에이드리언은 그가 이번 세미나에 앞서 ‘에이즈에 관한 세미나’를 진행했다고 소개해주었다. 외교를 복지관련 세미나로 풀어가는 ‘젊은 세대’ 외교관들이 풋풋하게 보였다. 새롭고 참신한 그들의 ‘외교전략’이 언젠가 지구촌을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자유기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