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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동물의 사고는 하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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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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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세계를 자각하는 의식적 활동 영위… 정신적 능력은 여러 잣대로 판단해야

(사진/동물들도 각각의 방식으로 주위세계를 자각한다.수화로 인간과 의사소통을 하는 침팬지)
동물도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우리와 비슷한 사고능력을 가졌을까?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는가? 우리는 이따금씩 이런 의문에 빠지지만 명확한 답을 얻기는 힘들다. 어떤 과학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은 동물도 영혼이 있다고 믿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반대로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이 주제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단순히 동물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고 인간의 정체성, 인지능력의 본질 등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를 비추어보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해왔다. 가령 근대적 사고체계를 수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데카르트는 인간에게만 정신적 요소를 인정하고 동물을 비롯한 나머지 자연은 물질적 측면만을 갖는다고 이해했다. 데카르트의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인간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대가로 동물은 일종의 움직이는 기계로 파악되었다. 최근 그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인지철학 분야에서도 동물의 인지는 인지현상 자체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사례를 제공해주고 있다.

지난달에 발간된 생물학자 마크 하우저의 저서 <야생의 정신>(Wild Minds)은 이론적인 측면에서 동물의 정신과 자기인식 능력이라는 문제에 접근한다. 동물이 정신을 가지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바로미터는 자신과 타자를 구분하는 능력에 있다는 것이 하우저의 입장이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하우저는 동물에게 자신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가령 리서스 원숭이에게 거울을 주고 그 행동을 관찰하면 거울 속에 비친 동물이 비슷한 동료가 아니라 자신임을 깨닫고 있다는 증거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스스로를 인식하는 동물들 의외로 많아


(사진/동물의 세계에서 '탈주기술자'로 통하는 오랑우탄)
그는 영장류 이외에도 상당수의 동물들이 대상, 숫자, 공간 등에 대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의 집합인 일종의 ‘도구상자’(tool kit)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그 도구상자는 사람의 경우처럼 명확하고 다양한 형태를 띠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사자, 새, 도마뱀과 같은 동물들이 사용하는 도구상자들이 우리 것과 비슷하지 않고, 그 표현양식이 불분명하다고 해서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 <앵무새의 탄식>이라는 저서를 내놓은 유진 린든 역시 경험적인 접근방식을 통해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전세계의 동물원을 돌아다니면서 사육사들의 체험담을 수집하는 방식으로 동물의 사고능력과 의식(consciousness)에 대한 증거를 확보했다. 그는 동물들의 도구제작과 사용능력, 언어능력, 속임수, 협동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동물에게 의식이 있는가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침팬지와 같은 유인원들이 수화(手話)를 통해 인간과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일부 동물들이 초보적인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랑우탄을 비롯한 일부 동물들이 도구 제작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전세계의 동물원에서 신창원을 무색하게 하는 ‘탈주 기술자’(escape artist)로 악명이 높은 오랑우탄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탈주를 위한 도구를 제작한다. 전설적인 오랑우탄 푸 만추는 철사토막을 잘라서 입 속에 숨기고 있다가 기회가 주어지면 문의 자물쇠를 열고 우리를 빠져나가는 놀라운 기술을 발휘해서 미국자물쇠공협회의 명예회원이 되기도 했다.

또한 린든은 동물들이 타자(他者)의 정신상태를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실험도 소개한다. 가령 심리학자 대니얼 포비넬리가 고안한 한 검사에서 침팬지들은 두 사람 중 어느 쪽이 숨겨진 먹이를 찾는 데 도움이 될지 선택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 침팬지들은 먹이가 숨겨져 있는 곳을 볼 수 없었지만, 먹이가 숨겨지는 동안 두 사람 중 한명이 그 전체 과정을 모두 보았다는 것은 볼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침팬지들에게 먹이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사람을 선택하라는 요구가 주어진다. 그들은 압도적으로, 실제로 전 과정을 목격한 사람을 지목했다. 그것은 침팬지들이 다른 한 사람은 먹이가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알지 못하며, 따라서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했음을 시사한다.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사진/박쥐가 행동하는 방식을 그들의 처지에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주파 음향반사를 이용해 외부세계를 인식하는 박쥐들)
이런 실험들은 모두 언어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의식이나 정신적 능력의 존재를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그것은 의식과 정신능력이 언어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는 인간중심적 사고를 극복하려는 시도, 또는 언어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라는 좁은 범주로 국한시키는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의식의 중요한 특성인 주변 세계의 추상화에는 여러 가지 경로(path)가 있을 수 있으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그 중 하나의 경로에 불과하다는 인식이다. 그리고 우리의 의식이나 정신능력이라는 잣대를 다른 동물들에게 들이미는 것은 동물의 의식이라는 주제를 왜곡시킬 수 있다.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은 오래 전에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What is it like to be a bat?)라는 유명한 물음을 제기했다. 가령 우리가 박쥐처럼 팔에 날개 비슷한 막이 달려서 황혼과 새벽녘에 벌레를 잡아먹기 위해 날아다니거나, 또는 고주파 음향반사 체계에 의존해서 외부세계를 지각하는 모습 등을 아무리 상상하려 애써도 그것은 결국 박쥐가 행동하는 것처럼 내가 행동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상상하는 것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기준에서 이해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의 상상력은 내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소재들에 의해 제약되고, 그 소재들은 나의 경험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박쥐의 경험이 어떤 것인지 완벽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는 자칫 불가지론으로 비쳐질지도 모르지만, 좀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인식하고 주위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은 유일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의식이나 정신적 능력에도 여러 가지 버전(version)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가, 별반 근거도 없고 옹졸한, 특권적 태도를 버리고 동물의 정신에 대해 열린 자세를 취할 때에만 우리 자신의 정신이 갖는 특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동광/ 과학평론가·과학세대 대표kwahak@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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