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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과학언론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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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1-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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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정책 결정 사안도 무관심으로 일관… 사회적 논쟁 회피하고 심각한 편향 드러내

오늘날 과학기술과 연관된 주제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도 다양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의식하든 무의식적으로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우리는 거의 일상적으로 과학기술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내린다. 휴대폰의 기종을 결정할 때, 시장에서 환경친화적 세제와 일반 세제 중 어느 한쪽을 고를 때,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쓰레기 소각장이 건설될 예정이라는 발표가 났을 때, 그리고 신문이나 방송에서 배아복제의 규제에 대한 입법문제에 대한 논란을 들었을 때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 판단은 개인이나 지역의 것이든, 또는 국가 전체의 차원이든 간에 매우 소중하다. 시장에서 내려지는 “살 것인가 말 것인가”, 또는 “어느 것을 살 것인가”의 작은 선택이 모여서 결국 그 기술의 발전이나 생존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역이나 국가 차원에서 내려지는 과학기술적 결정은 그 시대나 해당 지역을 넘어 후손들과 생태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과학기술의 사회적 기능에 무감각


사진/ 언론은 과학 기술보도의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함에도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한 생명고학연구소의 실험실. (한겨레21)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러한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어디에서 얻을까 상식적으로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TV·라디오·신문·잡지와 같은 언론매체를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삼고 있다. 많은 연구와 조사 결과는 70% 이상이 과학기술과 연관된 의사결정에서 언론매체의 보도내용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과학기술이 다른 분야와는 달리 전문적인 영역이라는 보편적인 인식이 깔려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가 날로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앞지르고 있다는 사실도 한몫한다. 따라서 언론매체에서 다루어지는 과학기술과 연관된 보도는 다른 어느 분야보다 영향력이 높으며, 일반인들의 정보 의존도도 상대적으로 높은 셈이다.

이처럼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과학언론은 오늘날 여러 가지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우선 과학언론의 핵심적인 역할은 공론화다. 사회 구성원들의 생활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주제, 현 세대와 미래 세대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과학기술적 주제를 시의적절하게 제기해서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하고 사회적인 논의를 촉발시키는 것은 과학언론이 담당하는 핵심적인 기능이다.

또한 과학언론은 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장이다. 즉 과학활동을 둘러싼 여러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주된 통로이자 창문인 셈이다. 그 이해당사자에는 정부, 연구자, 기업, 종교단체, 시민단체, 일반 대중 등이 모두 포함된다. 오늘날 과학기술과 연관된 전문적 지식은 단일하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 사안에 대해 복수의 전문적 견해가 제출될 수 있고, 이런 견해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사진/ 유전자 조작 식물을 반대하는 1인 시위. (한겨레 김정효 기자)
이때 언론은 이런 견해들 사이의 경합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핵심 쟁점을 부각시켜서 다양한 사회계층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쟁의 멍석을 깔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논쟁은 여러 가지로 득이 된다. 우선 그동안 자신의 분야에 한정되었던 연구자들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문제제기를 받을 수 있다. 내가 하는 연구가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동시에 어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반 시민들은 지면이나 화면으로 소개되는 논쟁을 통해 자연스레 해당 과학기술적 주제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관점을 습득하게 된다. 굳이 비싼 돈 들여 외국 학자들 불러서 강연회를 여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학습과 대중화가 가능한 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기능은 사회적 합의와 공익성의 담보다. 오늘날 거대과학화된 정보기술과 생명공학기술은 자본의 논리와 떼려야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 더 이상 국가도 공익성의 보루가 되지 못한다. 중요한 과학기술적 사안에 대해 후손 세대에 이르는 장기적 전망과 특정집단의 이익이 아닌 공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에 의한 사회 전체의 합의 도출이다.

최근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 입법 예고를 둘러싼 보도는 우리의 과학언론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먼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신문의 과학란은 다른 분야에 비해 지나치게 홀대받고 있다. 최소한 여러 차례의 특집으로 다루어져서 다양한 관점들이 소개되어야 할 내용이 짧은 보도성 기사로 그치고 말았다. 물론 몇 안 되는 과학전문 기자나 전담 부서의 부재와 같은 열악한 상황을 모르지는 않지만, 우리의 과학보도는 질적으로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여기에서 몇 가지만 지적하자. 먼저 얼마 전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은 5년 전부터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진지한 토론과 논의를 거쳐 이미 그 골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왔다. 지난해 5월에는 과학자, 종교시민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된 과학기술부 산하의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6개월 동안의 치열한 논쟁을 통해 이번 법안과 거의 비슷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어느 보도에서도 이러한 역사와 과정이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고, 이미 수많은 토론을 거친 쟁점들을 마치 처음 다루어지는 것인 양 소개했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의 흐름을 거스르고 사회적 합의를 저해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큰 사회적 손실을 야기한다.

우리는 과학정책을 알고 있는가

정보원의 협소성과 편향도 심각한 문제다. 유명인사가 된 일부 과학자들의 견해나 발언에 과도하게 의존하면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관점을 드러내는 데 실패했고, 결과적으로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소개하는 데 그쳤다. 보통 사람들의 견해를 이끌어내서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하는 데 실패한 것은 물론, 복수의 전문적 견해를 제시하는 형평성마저도 제대로 견지하지 못했다.

이번 논쟁에 가담한 여러 집단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밝혀내지 못한 것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공익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상이한 주장을 펴는 집단들의 이해관계나 종교적·윤리적 가치관이 드러나야 한다. 생명윤리법안 제정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부서 간의 갈등, 배아복제 기술을 확보하려는 불임클리닉이나 일부 연구자들의 이해관계, 배아복제와 연구를 인정할 수 없는 종교단체의 윤리적 입장, 배아 연구가 여성에 미치는 피해를 고려하는 여성단체들의 입장 등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다. 고작해야 과학자와 시민단체의 입장이 한두줄로 요약되었을 뿐이다. 공익성에 대한 판단은 정부나 전문가, 또는 언론이 일방적으로 내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만 구성될 수 있다. 그리고 과학언론의 역할은 그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다.

김동광/ 과학저술가·과학세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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