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여자여, 날자꾸나!

432
등록 : 2002-10-31 00:00 수정 :

크게 작게

10년 만에 무대에 오르는 모노드라마 <자기만의 방>의 이영란씨가 말하는 ‘오늘의 성과 사회’

사진/ <자기만의 방>에서 다채로운 신분으로 우리사회 여성의 현실을 가감없이 들려주는 이영란씨.
장선우 감독은 영화마다 실감나는 강간 신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에선 여대생이 창녀가 됩니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서는 한 지체부자유 여성이 자신을 강간하려 한 범죄자에게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아무리 예술지상주의면 뭐합니까 세계적인 거장 감독이 탄생하면 뭐합니까 남성들의 강간신화에서 한 발짝도 못 벗어나고 있는 충무로,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이영란(48)씨의 모노드라마 <자기만의 방>(10월28~11월3일 서울 대학로 인켈아트홀, 02-708-4097)이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면서 새로 추가한 ‘공격 대상’은 ‘잘 나가는’ 영화감독들이다.

잘 나가는 감독들 공격 대상 목록에 올라


“김기덕 감독은 ‘여자는 창녀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걸 전제로 깔고 영화를 만들잖아요. 창녀를 비하하는 게 아니라, 정서적 교류 없이 몸을 섞을 수 있는 여성을 빌려 여성에 대한 판타지를 드러내는 것인데, 기껏 그 정도밖에 안 되나 싶은 거지요.”

김기덕 감독의 작품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매번 여성에 대한 왜곡과 비하 문제로 논란을 빚어왔다. 그런데 예술지상주의가 아닌 사회파 감독으로 분류될 법한 장선우·이창동 감독을 등장시킨 건 뜻밖이다. 이영란씨는 장선우 감독과 <꽃잎>에서 함께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강제징집당한 아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자 정연(이정현)의 어머니(이영란)는 딸을 집에 떼어놓고 금남로로 나선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피묻은 광주와 함께 스러져간다. 이씨는 순간적으로 빙긋 웃더니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반론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대답이 다를 텐데, 너무 당연스레 받아들이는 것들이 여성의 시각에선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구나 하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겁니다. 본인들도 의식 못했던 여성관·섹스관이 있을 수 있잖아요. 자신들의 주장이 늘 객관적인 건 아닐 수도 있구나 하는 지각이 가능할 수도 있고. 물론 100% 모두 동의해달라는 건 아니에요. 이미 이 작품의 밑바닥에는 남녀의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냈어요.”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의 원작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10년 전인 92년, 오랜 유학 끝에 14년 만에 무대에 선 이영란씨는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독자적 공간확보가 왜 절대적으로 필요한지, 당시 주변의 표현을 빌리면, ‘히스테릭’하게 외쳐댔다. 애초 한달을 예정했던 공연은 열광적인 반응으로 연장을 거듭한 끝에 8개월간 5만여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뉴욕에서 친하게 지낸 유학 동료 류숙렬씨와 어느 날 갑자기 맘이 통해 만든 작품이었다. 류씨가 각본을 썼고, 이씨는 단 2주 만에 그 긴 ‘사설’을 몸에 익혀 홀로 무대에 섰다. 흥미로운 건, 긴 시간이 흘러 다시 무대에 올리면서 내용이 달라진 게 거의 없다는 점이다. 새로 덧붙여진 건 세 감독에 대한 이야기 정도다.

10년이 흘렀건만 아직도 여성은…

사진/ 10년 전 관객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었던 모습.
“선배로서의 의무이기도 한 건데, 그때 거의 생짜로 대책 없이 터뜨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점검해보자는 거죠. 뭐가 달라졌는지, 변한 게 없다면 왜 그런 건지 등등.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데 놀랍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내용에 진부한 건 없는지 살펴서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고도 했으나 그럴 게 없더라고요. 그때 썼던 용어나 개념이 텔레비전 드라마나 대학의 총여학생회에서 많이 쓰기는 해도, 여성의 취업문이 조금 넓어졌을지는 몰라도 남성들의 인식이나 태도는 달라진 게 없어요. 그래서 그냥 가기로 했어요.”

<자기만의 방>은 여성이 예술을, 또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문을 연다.

왜 나는 여기서 여자와 일, 여자와 돈의 얘기를 할까요 일이란 곧 돈을 낳고, 그 돈은 경제적인 힘을 낳고, 경제적인 힘은 또 자신감을 낳고, 그것은 곧 정치적인 힘을 낳습니다. …집안일은 끝없는 반복이고 끝없는 소모입니다. 집안일은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집안일은 공허합니다. 집안일은 사표를 낼 수 없습니다.

사진/ 새로운 여성의 공적을 찾아 '공격'하는 2002년의 <자기만의 방>.
결혼을 ‘여성의 모든 문제 해결책’으로 삼는 풍조는 여전해서 여자의 일이란 집안일이란 ‘상식’도 달라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부터 마손톱(마광수), 김동양(김용옥), 김생명(김지하)의 언술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정체성은 여성이 아닌 남성들이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연극은 그것부터 거부한다. 남자들은 너무 많은 말을 해왔고, 여자들은 듣는 일만 해왔다는 것이다.

<여자란 무엇인가>라는 야심만만한 제목으로 동양학의 선풍을 일으킨 김동양 교수, 이번에는 공자왈 맹자왈 하며 공자를 살리자고 야단입니다. 스킨헤드처럼 박박 밀어버린 살벌한 헤어스타일로 도포자락 휘날리면서. 지금 이 마당에 공자 살려서 뭐하게요 우리 싫습니다. 공자를 살리든지 맹자를 살리든지 남자들끼리 잘 살려보십시오. 다만 볼륨을 좀 낮추십시오. 우리 여자들 이제 소음공해 거부합니다.

역사의 부재로 처리됐으나 당당했던 여성의 발자취를 좇던 그는 갑자기 ‘귀곡성’을 듣는다.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는 말이 공허할 수밖에 없는, 생계에 쫓긴 한 어머니의 울부짖음이다. 악착떨면서 공장 다닌 지 한달 만에 두 아이를 사고로 잃은 어머니의 통곡이다. 자아실현은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갑자기 억장이 무너져내린 이씨가 내놓는 답은 무얼까 두세명의 실제 이야기를 섞어 내놓는 또 다른 고백이 무거운 메아리로 돌아온다.

이제 여성들의 울타리를 뛰어넘자

이씨는 극에서 다채로운 신분으로 등장하지만, ‘이 교수’가 본분이다. 실제로도 교수(경희대 예술디자인 학부)다. 자칫 이미 다 가진 여자의 사치스런 불평으로 들리는 건 아닐까 그런데 그도 지치긴 마찬가지였다.

“일이 무서운 줄 모르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살다 보니 내 방을 갖기는 했어요. 그런데 여전히 힘들고 더 지치네요. 여자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어려워져요. 남자들끼리는 누군가 잘 나가면 자기보다 세다는 거 인정하고 꿇잖아요. 그런데 잘 나가는 여자한테는 그렇지 않아요. 꼭 자기가 허락해줘야 된다는 것처럼, 잘 나가는 여자 꼴은 못 보겠다는 투예요.”

이씨는 <자기만의 방>이 종합선물세트 같은 여성학 개론서이고, 목적극이고 계몽극임을 감추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마음 졸인다. 예전처럼 신랄하게 화내는 젊은 여자가 아니라 아울러 가는 매너로 다가갈 것이라고 한다. 극의 결론

위대한 마음이란 양성적인 것입니다. 남성도 자기 두뇌의 여성적인 부분을 사용해야 하며, 여성 또한 자기 내면의 남성적인 부분과 교류를 가져야 합니다. 여성들은 남성을 맹렬히 비난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여성들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일이 남았습니다.

여기에 이의가 있을 수 있다. 이씨는 매회 공연이 끝날 때마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글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