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닮은 생체모방 로봇들 ‘뚜벅뚜벅’… 생물체의 운동성 밝혀 기계적으로 구현
도마뱀은 순식간에 벽을 기어오른다. 마치 첨단 접착제를 분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특별한 생화학적 분비물 없이 기하학적인 운동을 통해 자유롭게 이동한다. 도마뱀은 아무리 부드러운 표면이라도 8천분의 1초 이내에 발톱을 표면에 찔러 넣는다. 다시 4천분의 1초 만에 빼내면서 벽과 천장을 기어다닌다. 이때 도마뱀들은 수백만 가닥에 이르는 발바닥 털의 축과 표면의 각도를 미세하게 조절해 반창고를 떼는 듯한 동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런 생물의 신비를 공학적으로 실현한다면 로봇이 위험한 고층 유리창 청소를 도맡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오랫동안 진화를 거듭한 동물들의 신비를 재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생물학자들이 로봇공학의 영감 제공
최근 생체기능을 모방하는 로봇들이 각광받으면서 생물학자의 활동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미국 UC버클리대학 폴리페달랩의 생물학자 로버트 풀은 동물의 운동의 원리를 연구한다. 그는 날마다 다양한 종류의 생물체들을 촬영하고 시험하고 해부한다. 그런 관찰을 통해 다리가 달린 생명체는 모두 스프링 질량계처럼 작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리를 압축하고 복원하면서 에너지를 돌려가며 일정한 패턴의 힘을 산출한다는 것이다. 또한 노래기가 움직일 때 다리를 들었다 놓으면서 에너지를 저장하고 소비하는 과정이 매우 섬세하게 이뤄지고, 지네는 40여개의 다리 중에서 6개를 이용해 교대로 움직이는 세쌍의 그룹으로 나누어 그룹별로 발들의 끝을 함께 모으면서 움직인다는 등의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사실은 로봇 디자인에 생물학적인 영감을 제공해 로봇 공학에 획기적으로 기여했다. 이미 아이로봇사는 풀의 연구를 모방해 도마뱀의 일종인 게코처럼 벽이나 천정을 기어다닐 수 있는 로봇 ‘메코 게코’(Mecho-Gecko)를 개발했다. 13cm 길이에 100g인 메코 게코는 짧은 시간 동안 어설프게 벽에 붙어 있을 수 있는 끈적끈적한 발을 가지고 있다. 맥길대학의 로봇 연구자 마틴 부엘러도 풀의 바퀴벌레에 매료돼 끊임없이 넘어지고 장애물에 부딪히면서도 탁월한 이동성을 자랑하는 바퀴벌레를 닮은 로봇을 만들었다. 스탠퍼드대학의 공학자 마크 커코스키는 곤충의 뼈와 근육을 재현한 금속 플라스틱 대신 바퀴벌레의 운동성을 모방해 로봇들의 발들이 표면에 닿자마자 스치듯 앞으로 나아가도록 했다.
로봇공학은 생체모방을 통해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로봇에 사용되는 톱니바퀴와 강철 등의 쓰임새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다. 대신 실제적인 근육과 아킬레스건, 형상변형 재료를 전달하는 신경계 등을 로봇에 적용하려고 한다. 만일 그런 로봇이 현실화되면 딱딱한 기계적 느낌의 로봇들이 더욱 자연스럽고 비구조화된 환경 속에서 견고하게 작동될 것으로 기대된다. 일상적인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생체형 로봇을 제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인공근육이 로봇에 삽입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예컨대 바퀴벌레의 다리가 밧줄에 매인 상태로 고정밀 측정 시스템을 이용해 운동 방식을 측정하면, 거기에서 곧바로 로봇에 적용 가능한 방식을 추출할 수도 있다.
현재 가장 기대를 모으는 생체모방 로봇은 위험지역 탐사나 군사 정탐용 등 다목적 활용이 가능한 ‘비행 로봇’이다. 지난 7월 UC버클리대 비행로봇 개발팀은 초소형 헬리콥터 시제품을 내놓았다. 이 로봇은 30cm에 450g으로 파리의 날개처럼 생긴 얇은 천을 이용해 높이 치솟았다. 문제는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여 실제 파리처럼 자신의 무게를 들어올려 전투기보다 빠르게 선회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실파리는 공중 부양을 위해 1초에 200회나 날개를 펄럭거리며 선회하며 공중에서 U자 선회도 한다. 이것을 곤충 로봇에 적용하려면 날개를 상하로 움직이는 ‘플래핑’(flapping)이 효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공중에서 계속 비행할 수 있을 정도로 플래핑이 자유롭지 않다. 기껏해야 3, 4회 정도의 날갯짓을 한 뒤 땅바닥에 곤두박질치고 만다.
로보 사피엔스, 그 새로운 종의 진화
영국 북부의 사우스요크셔에서는 지난 3월 수십 마리의 육식성 로봇과 채식성 로봇이 방목되었다. 로봇들은 생존을 위한 본능만을 갖추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초식성 로봇들은 전등으로 만든 나무 밑에서 배터리를 충전시키는 것으로 풀을 뜯어먹는 행위를 대신하며, 육식성 로봇들은 초식성 로봇을 사냥해 에너지를 빼앗아 배터리를 충전시킨다. 이들이 공학자들의 기대대로 적자생존의 논리를 익히게 될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무시무시한 송곳니와 발톱으로 무장한 지능형 로봇들이 자기들만의 문명을 건설하기 위해 생존 경쟁의 투쟁을 벌이게 될지도 모른다. 생체모방 로봇들이 비약적으로 진화를 거듭한다면 ‘로보 사피엔스’가 새로운 종으로 나타나 ‘로봇 생태계’의 지배자로 등극할 수 있을까. 그 실마리를 <로보 사피엔스>(김영사 펴냄)에서 엿볼 수 있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사진/ 장갑을 끼고 문에 매달린 게코를 떼어내려는 생물학자 로버트 풀. <로보 사피엔스>

사진/ 아이로봇사가 게코의 운동성을 모방해 만든 생체모방 로봇 '메코 게코' <로보 사피엔스>
이런 사실은 로봇 디자인에 생물학적인 영감을 제공해 로봇 공학에 획기적으로 기여했다. 이미 아이로봇사는 풀의 연구를 모방해 도마뱀의 일종인 게코처럼 벽이나 천정을 기어다닐 수 있는 로봇 ‘메코 게코’(Mecho-Gecko)를 개발했다. 13cm 길이에 100g인 메코 게코는 짧은 시간 동안 어설프게 벽에 붙어 있을 수 있는 끈적끈적한 발을 가지고 있다. 맥길대학의 로봇 연구자 마틴 부엘러도 풀의 바퀴벌레에 매료돼 끊임없이 넘어지고 장애물에 부딪히면서도 탁월한 이동성을 자랑하는 바퀴벌레를 닮은 로봇을 만들었다. 스탠퍼드대학의 공학자 마크 커코스키는 곤충의 뼈와 근육을 재현한 금속 플라스틱 대신 바퀴벌레의 운동성을 모방해 로봇들의 발들이 표면에 닿자마자 스치듯 앞으로 나아가도록 했다.

진/ '렉스'는 바퀴벌레 처럼 발걸음을 예측해 장애물을 넘어 이동한다. <로보 사피엔스>

사진/ 생물학자들은 동물의 운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있다. 바퀴벌레에 전기 충격을 가해 근육의 변화를 측정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로보 사피엔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