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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금녀의 땅 ‘지방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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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0-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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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경연미
오늘도 그랬다. 그곳에 여성은 우리뿐….

영광군의회 제2차 임시회의 본회의장엔 새까만 양복무리의 남성들뿐, 여성은 모니터 온 서너명의 여성 회원들밖에 없다. 그래서 우린 까마귀 무리 속의 백로(?)라며 씁쓸해한다.

지방의회의 역사가 10년을 넘고 민선 3기에 이르는 동안 지역정치에서 여성을 밀어내는 벽은 두꺼워진 듯하다.

5급 이상의 공무원으로 채워진 집행부석도, 맞은편의 읍·면장 속에도 여성은 한명도 없다.

어쩌다 의원이나 집행부들의 물잔을 채우기 위해 본회의장을 누비는 하위직 여성 공무원만 있을 뿐….

방청석까지 남성 공무원들로 가득하고 조금 늦을라치면 의정 모니터 회원들은 구석에 구겨져 있어야 한다. 그나마 의회에서 여성을 많이 만날 수 있는 날은 보건소 행정사무감사 때 지원 나온 실무 담당자들이 한무리로 온 날이다.

6급(계장)의 여성 공무원 6명도 보건·복지·민원 파트 등에 배치돼 있어 의사결정에 여성의 참여가 이뤄지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지방의회에 여성이 진출하기란 백로가 까마귀 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인 듯하다.

특히 올 6월에 치른 지방선거판에서 돈줄이나 연줄 없는 여성이 명함을 내미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많은 후보자 가운데 여성은 한명도 없거니와 권하는 분위기도 못 되고 여성들은 그저 여성표 관리를 위해 뛰고 후보 부인 대동해 선거운동 다니는 운동원일 뿐이었다.

비례대표로 도의회에 입성한 선배언니도 고향에서 기초의원으로 나섰다가 쓰겁게 떨어지고 말았다. 의회에선 일 잘한다는 입방아에 올랐어도 지역으로 오면 어느 학교 출신이냐, 집안이 어디냐가 먼저고, ‘여자가 나서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농어촌 인구에서 여성이 절반 이상이다. 우리 지역은 인구의 50.1%가 여성이다. “여성 의원 하나 나서 봄직하지 않은가” 싶어도 아무도 엄두를 못 낸다.

지난 지방의회에서 활동한 전남 기초의원 가운데 2명의 여성의원 모두 남편의 명예회복을 위해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경우라고 한다. 남편의 그늘을 드리우지 않고는 어렵다는 얘기다.

생활정치의 장을 만들어나가야 할 지방의회에 시커먼 남성들만 들어차 있다는 것은 왠지 불균형해보인다. 결국 절반의 문제인 여성문제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여성은 사회복지나 보건의 일부거나 농정에 두어줄을 차지할 뿐이다.

여성들이 지방의회를 지켜본 지 1년여가 돼간다. 그동안 여성 자치학교나, 모니터 교육도 하고 천주교·원불교 여성들과 연대모임도 만들어 군단위 여성 정책 모니터를 진행하며 여성의 정치의식을 북돋웠지만, 군단위 정치환경은 오히려 여성을 호되게 내밀어버리는 것 같다.

더 이상 지방의회가 금녀의 땅이 되지 않도록 여성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 마음이 급해진다.

이태옥 ㅣ 영광 여성의전화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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