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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우리는 시간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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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0-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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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 시간에 따라 시간 늘어남 체험… 과거로 가는 웜홀 타임머신도 제작 기대

사진/ 우주 공간에 있는 거대한 입자가속기는 시간이동에 사용되는 웜홀을 만든다. 미래 화가가 그린 웜홀 발생기의 상상도. (사이언스 올제)
허버트 조지 웰스가 1895년에 발표한 <타임머신>은 공상과학소설의 대표작이다. 그의 <타임머신>은 과학적 상상력의 집대성이라 일컬을 만했다. 그것을 영화로 구현한 사람은 조지 펄 감독이었다. 1960년에 처음으로 영화화된 <타임머신>에서는 전쟁에 염증을 느낀 한 발명가가 평화를 염원하며 미래를 찾아갔다. 그리고 다시 40여년이 지난 뒤 공교롭게도 허버트 조지 웰스의 증손자인 사이먼 웰스 감독이 현대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통해 빅토리아식 타임머신을 선보여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고 무려 80만년 뒤의 세계까지 찾아갔다. ‘시간여행’을 이끄는 타임머신은 지구의 수호자로(<스타트렉IV>), 번갯불에서 에너지를 얻는(<백투더퓨쳐>) 모습 등으로 대중에게 다가오기도 했다.

현존하는 시간은 환상… 다양한 영향 받아

이렇듯 시간여행은 100여년에 걸쳐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비단 영화가 아니라 해도 누구나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여행을 꿈꾸게 마련이다. 요즘의 복잡다단한 현실은 미래로 훌쩍 떠나고픈 욕망을 자극하기도 한다. 사실 시간여행이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학문적 관심을 모은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과학의 힘으로 못할 것이 없어 보이는 첨단과학 시대에 살면서도 100년 전의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것은 여전히 유쾌한 상상거리에 가깝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물리학의 근간을 이루는 원인이 결과에 시간적으로 앞선다는 ‘인과율’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만일 시간여행이 이론적으로라도 가능하다면 시간에 관한 통합 이론은 일대 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현재 시간에 관한 생각은 너무나 단순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과거는 경험에서 이미 지나간 것이고, 미래는 어둠에 싸여 아직 세부적인 것이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미래는 금방 지나가버리는 현재의 사실로 바뀐 뒤 과거로 흘러간다. 이런 절대적인 개념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관찰자와 관찰 대상 사이의 상대적인 운동에 의해 결정된다. 예컨대 관찰자에 대해 광속의 절반으로 움직이는 시계가 있다면, 그 시계는 관찰자에 대해 정지한 시계에 비해 1.15배의 시간을 기록한다. 이런 현상은 ‘시간 늘어남’(time dilation)이라 불리며 두 관찰자가 서로를 향해 상대적으로 이동할 때 생긴다. 빛의 속도에 가까이 가거나 강한 중력장에 있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을 아주 느리게 느끼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우주적 시간을 받아들인다면 시간여행은 상상 속의 일이 아니다. 미래로의 시간여행은 시간 늘어남을 통해 간단히 체험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경험하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느끼지 못할 뿐이다. 시간 늘어남은 빛의 속도로 이동할 때만 생기지만 그에 버금갈 때도 미세하게 나타난다. 장거리 비행에도 시간 늘어남이 생긴다. 그것은 겨우 10억분의 1초 정도로 나노(nano)초에 지나지 않는다. 보통 시계로는 확인 불가능한 시간 늘어남이다. 하지만 ‘원자 시계’로는 측정이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속도를 통해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 시간여행은 중력을 통해서도 이뤄진다. 중력이 시간을 느리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계는 지구의 중심에 가까워지면 중력장의 영향을 많이 받기에 건물의 옥상에 있을 때보다 지하에서 조금 느리게 움직인다.

빛의 속도로 가는 우주선, 과거 회귀 불가능

이렇게 미래로의 시간여행은 시간 늘어남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제한적인 일방통행의 시간여행만을 예고할 뿐이다. 만일 과학자들이 새로운 동력원과 비행사를 보호할 방법을 발견해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우주선을 만들더라도 우주비행사들이 지구에 돌아오는 것은 수천년 뒤에나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블랙홀 근처에 떨어진다면 우주 속에서 영원에 가까운 시간에 흘러가게 된다. 그런 시간여행을 체험하기 위해 우주로 나갈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설령 시간여행자가 시간을 거슬러 돌아온다 해도 현실과 무관한 낯선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가 만일 현실감을 느끼려 한다면 다시 과거로 여행을 떠나야 한다. 과거로의 여행은 미래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해 이론적 가능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사진/ 타임머신이 안정적인 웜홈을 통과하면 시간을 넘나들 수 있다.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하다는 가설을 내세운 사람은 쿠르트 괴델이다. 그에 따르면 우주 자체가 회전을 하며 빛의 속도를 초과하지 않아도 시간의 닫힌 경로를 따라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이론은 우주 전체가 회전한다는 증거가 없기에 ‘수학적 가설’ 수준에 머물고 있다. 1974년 툴레인대학 프랭크 티플러도 우주비행사가 자신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무한하게 넓고 긴 원통이 빛의 속도로 회전할 때 원통 주위의 빛을 회전 경로 안으로 끌어들이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1991년에는 프린스턴대학의 리처드 고트가 ‘우주끈’(cosmic string)이라는 개념을 통해 시간을 따라잡는 운동을 증명했다. 우주끈은 우주 초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끈 모양의 에너지 덩어리로 빛보다 빠른 입자가 없어도 실현될 수 있다.

시간여행의 이론적 가능성이 현실에 적용되려면 타임머신을 만들어야 한다. 최근 타임머신에 관한 연구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웜홀’(wormhole)이다. 웜홀은 말 그대로 일종의 ‘벌레구멍‘으로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터널이다. 우주의 한 지점에서 순간적으로 다른 지점으로 나가게 된다. 구불구불한 산비탈 도로 대신 최단거리의 터널을 이용하는 셈이다. 웜홀의 구조를 물리학 법칙에 따라 제시한 사람은 캘리포니아기술연구소의 킵 손이다. 그는 웜홀을 출구가 있는 블랙홀로 여겨 반중력 상태의 음에너지를 이용해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음에너지 상태의 특이물질은 지금까지 구현되지 않았다. 설령 양자론에 따라 현실화해도 웜홀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킬 만큼 충분한 반중력 상태를 만들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그렇다면 웜홀 타임머신은 개발이 가능할까. 이를 위해서는 우선 웜홀이 있어야 한다. 일부에서는 빅뱅의 결과로 우주가 커지면서 웜홀도 같이 커져 자연스럽게 존재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에너지 펄스를 이용해 작은 크기의 웜홀을 안정화한 다음 사용 가능한 크기로 팽창시킬 수도 있다. 또한 블랙홀이 웜홀로 변신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웜홀이 존재한다고 해서 타임머신이 실현 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웜홀 주위의 물질에너지의 영향으로 타임머신이 생성되기 전에 뭉개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타이머신은 자연현상에서 성립하는 가장 일반적이며 중요한 에너지보존원리를 위배하는 것도 걸림돌이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논리적 역설을 낳기도 한다. 가령 시간여행자가 과거로 돌아가 그의 할아버지가 될 소년을 죽였다고 하면 살인을 할 수 있는 미래의 여행자는 태어날 수조차 없다.

시간 방향성은 일정하지 않을 수도

영화 속에서 시간여행은 과거가 바뀌는 순간마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는 대체 우주모델로 등장하기도 한다. 웜홀이 공간이동 장소로 묘사돼 멀리 떨이진 우주 공간을 짧은 시간에 여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수많은 우주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지금으로선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양자역학과 중력의 통합을 통해 밝혀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주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혁신적인 추진기술이 개발돼 성간 여행이 가능하다 해도 양자 순간이동이나 웜홀 등은 상상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시간여행이 영원한 불가사의로 남아 있지는 않을 전망이다. 물리학에 대한 새로운 대안 모델을 통해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운 생각들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 어딘가에는 시간 방향성을 갖지 못하는 세계 혹은 시간이 거꾸로 가는 곳이 있을지 모른다.

[참고 인용 자료]

<공상과학 영화로 배우는 과학-멋진항해>( 두벡·모쉬어·보스 지음, 한승 펴냄)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성 이론>(배리 파커 지음, 이충환 옮김, 양문 펴냄)

<사이언스 올제>(2002년 10월호, 폴 데이비스 지음)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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